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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casting 161

[습작] 외할머니의 '情'

젖은 낙엽같이 몸 고이 누이시고 십 년이나 이십 년이나 오신 걸음 그대로 되걸어가시어 일곱살 손자에게 주신 정 하나. 시간을 넘겨 받은 그것에는 그 시간으로도 채울 수 없는 따뜻함 같은 것이 있었다. 이제는 늙지 않을 고운 따뜻함이었다. - 영원히 기억속에서 살아계실 외할머니께. 2010년 12월에 다시 쓰다. 2011년 1월에 부분수정

Blogcasting/詩發 2010.12.29

「무소유」를 무소유하다

'무소유'는 몇 년 동안 구매 목록에서 올려놓고 있던 책이다. 구입 시기를 미루다 미루다 이제는 살 수 없게 되어서야 '왜 진작 사지 못했나'하는 미련한 후회를 하고 있다. 이제는 사고 싶어도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책을 절판하라는 스님의 유언이 발표되고 난 후에 서점의 '무소유'는 동이 나고, 절판된 이후로는 경매에 나온 책들이 백여만 원에 팔리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법인에서 '올해말까지는 출판하겠다'라는 발표를 했고, 이 뉴스를 접하고 여유를 가지고 서점을 누비던 나는 이미 늦었음을 알게 되었다. 시내의 각 서점뿐 아니라 인터넷 서점에도 '절판'이라는 알림문만 있을 뿐 책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지막 물량 한정 판매'..

진 경기는 바로 털자.

계속 되는 강행군 모드에 몸이 피곤에 쩔어서 눈은 안 떠지고 입에서는 신음소리 비슷한 비명만 겨우 나오는 몸상태가 계속 되는 나날들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날 깨우는 소리를 들었지만 꿈적도 못하고 비명만 지르고 있는 상태였다. '아놔, 일어나야 되는데, 몸이 안 움직이네ㅜㅜ 근데 오늘 아르헨티나전이 있군.' 하고 생각하는 순간 머리 속에 스코어가 떠올랐는데, 4대 2로 우리가 진 것이었다. 꿈도 아니고 깬 것도 아닌 상태에서(가사 상태?;;) '응? 이건 뭐?' 하는 순간, '염기훈'이라는 이름도 떠올랐는데, 이성적으로 4대2는 심한 것 같아 3대2로 타협을 봤고(누구랑?) '오늘 염기훈이 뭔가 보여주겠군.' 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스코어가 생생해서 토토나 할까 했는데... 결과는 4대1로 아쉽..

월드컵은 뽐뿌.

축구는 뽐뿌야. 얼마전 '남자의 자격'에서 경규옹이 하신 말씀. 개인적으로는 '축구'보단 '월드컵'이 뽐뿌라고 생각해서 제목을 저렇게 적어 봤다.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 특수를 노리기 위해 모든 이익단체들이 열심히 뽐뿌질을 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의연하게 자신의 할 일만을 해 오던 나도 개막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니까 심장이 벌렁거리는 건 숨길 수 없는 듯하다. 역시나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대한민국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느냐 하는 문제. 2002년에 이미 4강까지 가는 기적을 겪었으나 말그대로 기적과 같은 일이라, 이제는 마치 꿈인양 몽롱해지기만 한 기억이고, 토고를 꺾으며 제대로 뽐뿌질 되었던 2006년의 아픈 기억도 치유할 겸, 이제는 뭔가 확실하게 원정에서도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투표해요.

이틀 후면 투표일이다. 고대의 그리스에서 자국 남성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투표권이 오늘날과 같은 보통선거제, 즉 모두에게 동등한 투표권을 주기까지는 수천년이 걸린 셈인데, 물론 그 과정에서의 투쟁과 혁명, 거기서 흘린 땀과 피가 거름이 되었음을 잊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짧은 근현대사 속에서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기에 우리가 가진 한 표가 소중한 것이며, 우리는 우리의 이 신성한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역량은 무슨. 공식 선거기간이 시작된 이후로 울려대는 확성기 소리가 이제 이틀 후면 사라진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다. 알아듣지도 못할 괴성으로 꽥꽥되질 않나, 주구장창 노래만 틀지를 않나. 관심을 가지고 어떤 내용인지 들어 보면 그냥 '무조건 ㅇㅇㅇ당이야~♬' 혹은 '아들아~..

오늘은 5·18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고, 알았는데 깜빡한 사람도 있고, 알지만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도 있을텐데, 어쨌든 오늘은 5월 18일, 5·18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날이다. 올해로 30년. 나처럼 젊은 세대는 그 때의 기억이 없기 때문에 약간은 비현실적으로 느낄수도 있고, 우리 윗 세대라 할 지라도 당시에는 언론 보도도 안 되었고, 광주 또한 통제된 상태로 국내인의 접촉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저 그런 일이 있었더랬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이는 이 사건을 그저 광주라는 지역에 국한시켜 해석하기도 하던데, 당시의 불법적인 군사정권에 대한 반대 의식은 전국적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광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 제발 좌빨 빨갱이들이 벌인 짓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수많은 피가..

어버이날 선물

어버이날 이브(?)를 맞이해서 피곤에 찌들은 몸뚱이를 이끌고 효도 한번 해 볼거라고 홈플러스에 입점해 있는 옷가게를 돌아다녔다. 예쁜 옷들이 많지만 능력부족으로 못 사는 현실에 서글펐고, 부모님 사이즈를 모른다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이 좀 부끄러워 많이 반성한 하루였다. 오랜 고민과 아우와의 열띤 토론 과정을 거친 후, 요즘 유행이라는 너무 똑같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커플룩으로 맞춰 입었구나 싶은 반팔 티셔츠를 착한 가격에 구입했다. 혹시나 백수 아들이 없는 돈에 싸구려 샀다고 생각하실까봐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는 악어상표의 옷가게에서 사는 정성을 보여드렸다. 집으로 돌아오니 12시였는데 다들 바빠서 지금 아니면 안되겠다 싶어 주무시는 분들을 깨워서 선물을 전달해드리고 선물 착용 행사도 해보았다. ..

컴퓨터 포맷한 이야기

그러니까 일주일 전이었다. 지금 쓰는 컴퓨터 외에 못 쓰는 게 하나 더 있었는데, 동생이 갑자기 그 컴퓨터에 있는 하드디스크를 떼서 지금 쓰는 컴퓨터에 붙이자고 했다. 평소에 메인 컴퓨터 하드의 용량부족을 불평하곤 했는데, 거기에 동생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생각한 것이 일단 재활용을 하자는 것이었고, 갑작스레 비는 시간을 이용해서 급하게 일을 벌였던 것이다. 나는 메인 컴퓨터를 뜯어서 여기저기 쌓인 먼지를 털어내었고, 동생은 옛 컴퓨터에서 하드를 뜯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린 평화로운 주말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적은 용량이나마 늘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우리의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조립이 거의 마무리가 되었을 때, 약속이 있는 동생은 외출을 하였고, 집이 편한 형은 조립을 마친 컴퓨터를 제..

영락공원에서

흐린 하늘에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바람이 귓가에 와 윙윙거렸다. 버스를 기다리는 노인들의 입에서는 오지 않는 버스와 언젠가는 올 것에 대한 기다림이 바람이 되어 밀도 높은 대기속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젖은 듯 메마른 눈동자속에서는 나무들이 무거운 대기를 휘젓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빛과 그림자처럼 각자의 반대편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것 같다고, 그림자도 생기지 않은 흐릿한 공간속에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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