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casting/우물쭈물 사는 이야기

「무소유」를 무소유하다

파란선인장 2010. 6. 2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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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소유'는 몇 년 동안 구매 목록에서 올려놓고 있던 책이다. 구입 시기를 미루다 미루다 이제는 살 수 없게 되어서야 '왜 진작 사지 못했나'하는 미련한 후회를 하고 있다. 이제는 사고 싶어도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책을 절판하라는 스님의 유언이 발표되고 난 후에 서점의 '무소유'는 동이 나고, 절판된 이후로는 경매에 나온 책들이 백여만 원에 팔리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법인에서 '올해말까지는 출판하겠다'라는 발표를 했고, 이 뉴스를 접하고 여유를 가지고 서점을 누비던 나는 이미 늦었음을 알게 되었다. 시내의 각 서점뿐 아니라 인터넷 서점에도 '절판'이라는 알림문만 있을 뿐 책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각주:1]

  그러다 며칠 전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지막 물량 한정 판매' 비슷한 문구를 걸어 놓고 '무소유'를 판매하는 걸 봤는데, '무소유'의 출판사인 범우사에서 쇼핑몰을 통해 직접 판매하는 것 같았다. 가격은 20000원이었는데, 다른 곳에서 파는 가격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기도 했다.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결제를 누르려는 순간에 멈칫하게 되었다. 버튼 위에 커서를 올려 놓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창을 꺼버리고 말았다. 왠지 모르게 자꾸만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8000원하는 책을 150%나 비싸진 가격에 구입하는게 억울해서도 아니었다. 20000만원이면 내가 사 보는 문제집보다도 싼 편이다. 자꾸만 망설인 이유는 아마도 책의 제목이 '무소유'이기 때문이 아닐까.

  법정 스님의 다른 책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라는 책에 무소유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하는 구절이 나온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구절을 읽고 또 읽은 끝에 이 '무소유'를 무소유 하기로 결단을 내린 것이다.[각주:2]

  물론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가 '불필요한 것'이라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욕심 많은 나에게 '불필요한 것'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인 방황을 겪고 있는 인생에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기에 더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런 식으로 구입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산마루 위에 서있는  한 그루 나무 같은 스님의 가르침을 몇 발짝이라도 더 다가가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혹한 이는 몇 발 더 다가가더라도 어차피 멀리서 보기만 할 수 있을뿐 만질 수 없기에 '불필요한 것'이 아닐까. 배가 넘는 가격으로 직접 판매하는 출판사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무소유'관련 서적들을 보면서, 스님의 마지막 말씀 속에 담긴 '절판'의 의미를 되새겨 헤아려 보는 것이 어쩌면 그 나무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달래본다.





  1.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아직 간직하고 있다. [본문으로]
  2. 난을 포기했던 스님의 마음이 이랬을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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