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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질 뻔
영덕 해맞이 공원에 도착했을 때부터 우리 머리위로는 거대한 바람개비 하나가 산 너머로 보이고 있었다. 이상하게 설레었다. 영덕 해맞이 공원에서는 가까이에 있었지만, 얼른 보고 싶은 마음에 가는 길이 길게 느껴졌다. 산길을 가는 중에 '사진 찍는 곳'이 있었고, 거기서 몇 명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거기엔 발전기 한 기만 서있었다. 설마 이게 다란 말인가. 그냥 여기서 사진 찍고 가면 끝이란 말인가. 실망스러웠지만, 희망을 버리진 않았다. 아니겠지, 아닐꺼야 하면서 우린 좀 더 가보기로 했다.
좀 더 가보니 눈 앞에 커다란 바람개비들이 능선 곳곳에 서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길의 끝에 건물들이 있고, 많은 차와 사람들이 보였다. 역시, 그걸로 끝이 아니었어. 건물 근처에는 많은 차들이 길가에 주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건물앞에 너른 주차장이 있었고, 도로보다 훨씬 적은 수의 차들이 있었다. 주차장 옆으론 축구장도 있었다. 이런 고지대에 축구장이 있다니. 여기서 축구하다간 폐가 타버리진 않을까, 혹시라도 공이 경기장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그 공을 주워와야 할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잠시 했다. 카메라를 챙기고 차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촉각과 청각이 반응한다. 산 꼭대기인 만큼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리고 발전기의 날개가 돌아가는 소리가 마치 비행기가 날아갈때 나는 소리마냥 웅웅거리며 커다랗게 들려왔다.
관광객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공원같은 곳으로 올라갔다. 이번엔 시각이 반응했다. 장관이었다. 그 공원꼭대기에 발전기 하나가 설치되어 있어서 거기서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리고 능선 여기저기 박혀있는 바람개비들을 한눈에 다 볼 수도 있었다. 발전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아파트 한채 정도되는 높이였다. 날개도 무지 커서 돌아가는 소리도 예상 밖이었다. 난 그저 소리없이 돌아가는 약간은 아담한 바람개비를 상상했었던 것 같다. 역시나 전기를 생산해내는 곳이 조용하고 아담할 리 없었는데 말이다. 바다에 바로 인접한 높은 산 꼭대기라 바람도 무지하게 불었다. 바람을 이용하기에는 좋은 장소일지 모르지만, 서있기에는 힘들었다. 나의 무거운 몸이 팔만 펼쳐도 바람에 등을 기댈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미처 모자따위를 쓰지 못한 여성들의 머리카락은 쉴 새 없이 이리저리 휘날려서 나중에는 차라리 바람이 부는게 더 나을 정도의 모습이 되기까지 했다.
만약에 돈키호테가 이곳에 왔다면 과연 이 바람개비들을 상대로 싸울 생각이나 했을까. 하긴, 풍차보고 달려들었는데, 좀 더 크고 소리난다고 못하리란 법은 없겠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누군가 사진을 찍자고 했다. 우린 발전기 앞에서 최대한 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었다. 발전기까지 찍는다고 각을 낮게 해서 올려다보며 찍었는데, 앵글과 배경덕에 우리가 여태껏 찍어댔던 사진들 보다는 멋지게 나왔다. 각자 독사진을 한 번씩 찍었지만, 원이 이 배경과 앵글에 흠뻑 빠졌는지, 찬을 모델로 계속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결과물에 만족했고, 그 각도로 자신을 찍어달라고 했다. 찬이 찍어 줬지만, 원은 자신이 찍은 찬의 사진을 더 만족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모델이 중요하지, 라며 생각하면서 나는 풍경사진을 찍었고, 헌은 담배를 피웠다.
돈키호테가 덤비기엔 좀 큰 풍차인 듯.ㅎ
발전기 위에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공간같은 곳이 있는 것 같았다.(올라가보지 못해서 확실하게 말을 못하겠다.) 흡사 긴 막대위에 커다란 스크류를 단 우주선(?)과 같았다. 만약에 그곳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다면 어떨까. 외로울 수도 황홀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침이면 동해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고, 저녁이면 서쪽대지로 저물어가는 해를 볼 수 있을테니. 어린왕자와 비슷한 상황이려나. 혼자서 외롭지 않으려면 장미꽃도 있어야겠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차로 돌아왔다.
배가 고팠다. 우린 포항으로 가서 밥을 먹기로 하고 출발을 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7번 국도를 타야 했지만, 영덕으로 내려 가는 길로 빠지고 말았다. 시간이 많이 늦어질 듯 했지만, 가는 길에 영덕 강구항도 구경하고 거기서 7번 국도로 빠지기로 했다. 주말이라 강구항엔 차와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린 치열한 호객꾼들 사이를 느릿느릿 빠져나갔다. 우리가 후포항에서 먹은 대게와 값을 비교하려고 가격을 보니 조금 더 비싼 것 같았다. 주말이라 가격이 올랐을 수도 있지만, 우린 꽤나 흐뭇해졌다. 혼잡한 강구항을 빠져서 마침내 7번 국도를 타게 되었다. 다음 목적지인 구룡포항에 가면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을거란 기대에 피곤함도 가시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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