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떠나보니 나를 알겠더라 - 6.망양정

2009.03.03 00:06

 天을 못내 보와 望의 올은말이...


일어나 보니 이미 해는 중천. 거기다 날씨까지 흐리다.



 원래 계획은 9시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민박집을 떠나는 것이었다. 내가 가장 먼저 일어났는데,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9시였다. 나머지 셋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추측해보니 새벽 4시쯤에야 다들 입다물고 잤던 것 같다. 5시간 밖에 못 잔거니 우리의 평소 성향으로 봤을 땐, 내가 이상한 거 였다. 내가 먼저 씻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찼더니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일어난 원이 씻고 둘이서 설거지를 하러 부엌으로 갔다. 어제 고스톱에서 진 결과에 승복하기 위해. 그런데 생각보다 설거지 양이 많지 않았다. 원이 한사람에게 몰아주자고 가위바위보를 제안했다. 상처뿐인 3관왕을 한 나에게. '넌 다른 것들도 해야하니 설거지는 내가 할게'따위의 배려는 없었다. 하긴 승부는 냉정한 것이니. 그래서 가위바위보를 했고, 난 잠시 쉴 수 있었다. 쉬는 동안, 나와 라면을 끓여야 할 찬을 깨우기로 했다. 헌도 일어나서 씻고 있었는데, 찬은 여전히 이불을 칭칭 감고 '우웅'거리고 있었다. 



 한참을 깨우다 그냥 내가 끓이기로 하고 부엌으로 갔다. 다 끓일 때쯤 되니까 찬이 나타나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를 올리고 있었다. 어제 먹다 남은 밥과 함께 라면을 먹었다. 원의 말대로 순한맛 라면이 아침에 먹기가 좋았다. 다 먹고 설거지까지 다하고 나니 헌이 와서 내게 말했다. 참고로 헌은 어제 친 고스톱에서 세 판 다 1,2등을 했기 때문에 아침에 해야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설거지는 도와줄려고 했는데, 다 해버렸네."

 언제나 타이밍이 문제다. 다하고 난 뒤엔 그런 선심마저 의미없는 것이다. 그래도 헌은 오늘 하루도 운전을 해야할테니까, 이정도쯤은 그냥 넘기기로 했다. 잊어버린거 없나 확인 후 방을 나왔다. 아주머니께 화투를 돌려드리려 했는데 안 계신듯 했다. 민박집 마당에서 사열한 후, 인원점검과 장비점검을 마치고 망양정으로 향했다. 망양정은 민박집에서 차로 1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는 언덕 위에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언덕을 올랐다. 사실 어제 저녁에 올라서 달을 보기로 했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버려 보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해돋이를 보자는 의견이 나왔었지만, 의견을 낸 사람까지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주 어중간한 시간에 망양정에 올랐다.

우리가 묵은 민박. 나름 신식 건물이라 불편한 점은 없었다.



 올라가보니 망양정이 아니라 울진대종이 있었다. 확실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거기가 무슨 해맞이 광장쯤 되는 곳이었던 것 같다. 울진대종과 함께 배의 돛을 형상화한 것 같은 현대적인 조형물도 있었다. 울진대종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우린 또 둘씩 나뉘어져 서로의 포즈를 과시했다. 글로 쓰기도 부끄러운 포즈를 잡고 찍으며 서로 좋아했다. 그 후 망양정으로 향했다. 한 10분쯤 숲도 아닌 어중강한 길을 걸어가니 망양정이 있었다. 한창 공사중이어서 가는 길의 풍경은 그리 좋지 못했다. 망양정을 둘러싼 솔숲을 벗어나자 망양정의 모습이 보였다.
 

해맞이 공원 같은 곳에 있었던 울진대종. 저기서 우린 서로 더 병맛사진을 찍기위해 경쟁했다.




 조선시대 뛰어난 문인이었던 송강 정철이 올랐었다는 망양정. 관동별곡의 마지막 장소인 망양정에서 송강은 술 한잔 마시고 신선을 만났다고 하면서 풍류를 즐겼다. 그때 그 망양정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관동팔경중 제2경이라는 망양정에 도착했다. 예전 망양정은 기성 망양이라고 하며, 지금은 흔적도 없이 어느 민박집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현재 망양정은 새로 지은 곳이라고 한다. 망양정에 올라 주위 풍광을 둘러봤지만, 날씨조차 흐려서 크게 감동스럽지는 않았다. 바닷가에는 포크레인이 모래사장에 흙을 퍼나르고 있었고, 하늘과 바다는 뿌옇게 흐려 그 경계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신라 사선이 노닐었고, 그로부터 몇 백년 후 조선의 사대부가 와서 그 사선들의 옛 흔적을 찾으며 자신을 신선이라 여기며 술을 마셨고, 그로부터 몇 백년 후 대한민국의 청년 네 명이 왔지만, 그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 옛날 관동 최고의 절경이라는 망양정은 이 망양정이 아니었다. 다만 정자에 송강이 지은 관동별곡의 일부가 나무판에 적힌 채 매달려 있었다.

망양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솔방울을 가지고 네 명이서 둘러서서 제기차듯 했다. 그러다 찬에게 와락 안겨버린 솔방울.



 월송정도 그렇고 망양정도 그렇고 나름 관동 제1,2경인 곳들이 실은 그 옛날 그곳이 아니고, 또 한창 공사중이었기에 우리는 크게 감탄할 수 없었다. 어수선하고 시끄럽고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했다. 망양정이나 월송정이나 차라리 달이 뜰 때쯤에 갔더라면 더 좋았을거란 생각도 했다. 그리고 낙산사를 태워 먹고, 숭례문을 태워 먹고도 문화재에 대한 저급한 인식이 만연한 것에 부끄러움도 느꼈다. 나도 만약 망양정에서 술 한 잔 마셔, 이제는 신선이 되었을 정철을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天텬根근을 못내 보와 望망洋양亭뎡의 올은말이,
 바다 밧근 하늘이니 하늘 밧근 므서신고.
 갓득 노한 고래 뉘라셔 놀내관대,
 블거니 쁨거니 어즈러이 구난디고.
 銀은山산을 것거 내여 六뉵合합의 나리난 듯,
 五오月월 長댱天텬의 白백雪셜은 므사 일고.
 
 ……(중략)

 英영雄웅은 어디 가며 四사仙션은 긔 뉘러니,
 아매나 맛나 보아 녯 긔별 뭇쟈 하니, 
 仙션山산 東동海해예 갈 길히 머도 멀샤.
                           <관동별곡 중 - 송강 정철>
 

겸재 정선이 그린 망양정. 당시의 망양정은 꽤나 아름다웠을 듯. 현재는 민박집이 되었다.



망양정
주소 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716-1
설명 관동팔경의 하나일 만큼 주위풍경과의 조화가 아름다운 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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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막 찍은 사진들이라 아름답지 않은 점, 양해바랍니다. 게다가 노출이 적어서 그런지 카메라가 오래되서 그런지 사진 질이 이상해서 보정하다가 더 망쳐 버렸네요;;

Comments

  1. 2009.03.02 23:54

    저런 사진은 좋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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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파란선인장 2009.03.03 00:16 신고

      ㅋㅋㅋㅋ
      '시옷 찬' 납셨군...ㅋㅋ

      어떤 사진 말인데? 지우라면 지우께ㅎㅎ
      저작권보다 초상권을 더 중시한다는...ㅋㅋㅋ

    • 데자뷰 2009.03.03 14:21

      첫째 사진에선 꼭 이불만 있는것 같다
      바닥과 한몸이 되었더군 ㅋㅋ

    • BlogIcon 파란선인장 2009.03.03 16:07 신고

      그러니까...ㅎㅎ

      그리고 찬이 싫어하는 것 같아서 좀 그런 사진은 빼버렸다.
      초상권 중시.ㅎ

  2. 2009.03.04 00:24

    그렇다고 뺄것까지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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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데자뷰 2009.03.04 12:15

    근데 가만보면 니 블로그 결국 우리 셋이서 노는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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