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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떠나보니 나를 알겠더라 - 8.영덕해맞이공원

파란선인장 2009. 3. 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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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바다와 예술 혼


 국도를 따라 달리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곳에서 지방도로 빠졌다. 우리는 울진을 떠나 영덕에 들어와 있었다. 목적지는 영덕 해맞이 공원이었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준 도로는 공사때문인지 막혀있었다. 헌과 우리는 당황했지만 일단 비슷한 방향으로 난 길로 가기로 했다. 경로는 곧 재설정되었고, 우리는 무사히 해맞이 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전에는 뿌옇게 흐렸던 하늘이 점심이 지나자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2월 초라고 하기엔 화창한 날씨에 주말이기까지해서 사람이 꽤 많았다. 해맞이 공원에 딱히 주차장이 마련되어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도로 양 옆으로 빈 자리 하나없이 빼곡히 주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린 해맞이 공원을 지나치고 꽤 갔음에도 자리가 없어 차를 돌려 다시 해맞이 공원을 지나치고 나서야 차를 댈 수 있었다. 날씨가 좋으니 한결 들뜨기 시작했다. 멀리 해맞이 공원의 마스코트인 등대가 보였다. 영덕도 '대게'특산지임을 자처하는 곳이어서 그런지, 등대에 집게발이 붙어 있었다. 약간은 민망하면서도 특색있는 등대였다. 등대아래로 비탈진 경사에 공원을 마련해 놓은 것 같았다. 멀찍이 차를 댄 덕에 등대가 잘 나오는 전망좋은 자리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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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대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사진을 찍고자 하는 젊은 남녀이거나,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남자끼리 온 친구들은 우리가 거의 유일했다. 거기다 우리는 들떠버려 소란스럽기까지 했다. 지금에 와서 다른 사람들이 우릴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생각해보면 눈가가 젖어든다. 당시 우리는 그런 것도 신경쓰지 않을 만큼 신나있었다. 이번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을때마다 우린 남다른 예술감각으로 부끄러운 사진들을 찍어댔다. 등대 앞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등대를 휘감은 집게발을 마치 내 손인양 사진을 찍기위해 우리는 손을 소매속으로 숨긴채 집게발과 팔의 각도를 맞춰 원시적인 합성사진을 찍으려 했던 것이다. 네 명이서 돌아가며 찍어댔지만, 건질만한 사진은 없었다.

 "병맛이네."
 "각이 없네."

 원의 말에 무안해진 나는 이렇게 둘러대버렸다. 사실 좀 병맛이긴 했지만, 그래서 더 신이 나기도 했다. 일단 웃기긴 했으니. 언제부터인가 아무리 노력해도 멋있게 나올 얼굴이 아니란 걸 알아버린 후로는, 차라리 웃긴 사진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원이 한 연인의 남자에게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기를 부탁했다. 그는 흔쾌히 찍어주었지만, 결과물을 보니 걱정이 되었다. 이런 실력으로 애인을 찍은들 잘 찍힐리가 없었다. 등대 아래로 해맞이 공원으로 가는 길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대게의 집게발을 청동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있었다. 여기서 또 예술 사진을 촬영하고자 했으나, 아까부터 우리와 같은 행보를 하고 있는 커플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곳에 등대 전망대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어 일단 전망대로 오르기로 했다.

 "야, 10명이상 올라가지 마라는데?"
 "우리만 해도 4명인데."
 "근데 계단 미치겠다."
 "어지러 죽겠네."

 우린 과연 전망대가 안전할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미친듯이 빙글거리는 계단덕에 어지러움증도 느끼고 있었다. 전망대에는 이미 몇 커플들이 있었다. 우린 그들 사이에서 맑고 푸른 동해를 구경했다. 한 커플의 남성이 원에게 다가와 사진을 부탁했다. 원은 흔쾌히 수락했고, 그들에게 우리의 사진도 부탁했다. 결과물을 보니 꽤 만족스러웠다. 나는 그들이 영원히 사랑하기를 잠시나마 바랬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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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청동 집게발상으로 오니 아까 그 커플은 사라졌고, 아무도 거기서 사진을 찍고 있지 않았다. 다시 예술혼이 끓어 올랐다. 우린 그 집게발 사이로 머리를 집어놓고 최대한 고통스런 표정을 짓기로 했다.

 "좀 더 집어 넣어!"
 "아냐, 그 표정이 아니야!"
 "그래, 좋아, 좀 더 고통스럽게, 오케이!

 우린 그렇게 남부끄러운 줄 모르고 낯부끄러운 사진을 찍었다.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사진을 찍을때다. 모델로는 헌이 수고를 해주었다.



 해맞이 공원으로 내려가니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바다도 정말 맑아서 수면아래에 있는 바위가 한참 위에서도 보였다. 다만 평지가 없어서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힘들었고, 군데군데 위험한 곳도 있어서 자칫 다칠 위험도 있어 보였다. 우린 바닷가 바위까지 내려갔다. 헌은 언제나 앞장섰었다. 성류굴에 갔을 때도 한참 구경하고 있노라면 저만치 앞서가서 괜히 초조하게 뒤따라 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헌에게는 언제나 맨 뒤에서 오라고 했지만, 또 다시 맨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바닷가 갯바위에서 우리는 둘씩 짝을 지어 바위 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와 헌이 먼저 찍고 원과 찬이 찍었는데, 원의 과도한 포즈 연구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었고, 그러다보니 그 작은 갯바위 위에는 그 둘외에 한 아주머니께서도 사진을 찍기 위해 앉아 있었다. 그렇게 오래 연구한 포즈를 취한 그들 뒤에는 낯선 아주머니 한 분이 V자와 함께 웃고 계셨다.

 좀 더 깊은 바다에 있는 갯바위에는 낚시꾼들이 있었다. 우리도 가보자고, 운 좋게 맘씨 좋은 아저씨를 만나면 이야기하다가 회 한점 얻어 먹을 수 있지 않겠냐고 아이들을 꼬셨다. 물론 나의 꼬임에 넘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일단 그 곳으로 향했다. 헌이 또 앞장섰는데, 헌이 가는 모습을 보니 꽤나 위험해 보였다. 이내 나머지 셋은 합리화에 들어갔다. 나는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어서 가기 힘들겠다고 말했고, 나머지 둘도 바다 봤는데 뭐, 가서 뭐 하겠냐며 합리화에 성공했다. 먼저 가서 이미 도착한 헌만이 우리를 간절하게 부르고 있었다. 

먼저 갔지만 아무도 뒤쫓아 오지 않자 허망한 표정을 감출 길이 없는 헌.



 다시 차로 돌아와 다음 목적지인 풍력발전단지로 출발했다. 아까부터 산 넘어로 보이는 커다란 바람개비는 내 마음을 더 들뜨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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