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도량에 간 총각들
망양정에서 불영사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다. 역시나 졸음이 쏟아졌다. 그렇다고 잘 수는 없었다. 그냥 자기에는 헌에게 좀 미안했다. 그는 운전때문에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 반, 생명을 유지하고픈 맘 반으로 힘겹게 졸음과 싸웠다.
"원은 자네."
"안 잔다."
분명히 졸고 있는 것 같았는데, 원은 끝내 부인했다. 원의 머리엔 무안하게 까치집이 지어져 있었다. 헌은 우리보고 잠오면 자라고 속에도 없는 말을 했다. 우린 잠들지 않기 위해 뭔가 이야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어젯밤 이미 웬만한 이야기들은 다 했고, 또 너무 많이 웃고 떠든 바람에 목상태도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난 목을 쥐어짜냈다. 그야말로 투혼의 수다. 헌은 운전하기에 바빴고, 원과 찬은 그저 듣다가 맞장구만 쳐주고 있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정신을 잡고 있으니, 어느덧 우리는 한적한 산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꼬불꼬불한 산길은 헌을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차의 속력은 더 느려졌고, 뒤에 바싹 붙어 오는 차들에 신경쓴다고 헌은 더 초조해했다. 갓길에 잠시 섰다가 다시 출발하기를 수차례 거듭했다. 몇 번 그러고 나니 차는 더이상 오지 않았고, 우린, 아니 헌은 다시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불영계곡이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그러던데."
찬이 말했다. 그랜드캐니언? 그렇게 칭하기엔 거긴 너무 평범한 계곡이었다.
"무슨 그랜드캐니언이 이렇게 소박..."
이라며 비아냥 거릴려는 그 찰나, 눈 앞에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 펼쳐졌다.
"우와!"
"흠 좀 짱."
"그랜드캐니언이라고 할 만하네."
그랬다.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들 사이로 맑은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 산과 절벽들은 바위로 이루어져 그 형상도 여러가지로, 온갖 기괴한 모양이었다. 바위틈에서 자란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었다. 그 소나무 위에 학이 앉아있었다면 더 운치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긴 했다. 운전하는 헌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마음껏 그 경치를 즐겼다. 울진지역을 고생대 지층이라고 배웠다는 내 기억에 의존한다면, 그만큼 오래 되었으니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부를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도로를 따라 가다보니 도로 중간중간에 정자가 지어져 있었다. 헌도 좀 보고 우리도 느긋하게 풍경을 즐길 겸 정자에서 잠시 보고 가기로 했다. '선유정'이라는 정자에서 우리는 입을 딱 벌리고, 쉴 새 없이 감탄하며 기암절벽이 이루는 장관을 구경했다. 진짜 신선이 노닐고 갈 만한(仙遊) 곳이었다. 다만 절벽위에 위치한 관계로 우리는 심각하게 불어오는 바람속에서 사진을 찍고 서둘러 다시 차에 탔다.
거기서부터 좀 더 가니까 마을이 나오고 민박촌이 나왔다. 사실 더이상 인가는 못 보겠지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마을이 나오니 좀 놀래기도 했다. 나름 유명한 관광지인지, 민박집과 식당이 꽤 있었다. 그런 내 생각을 말하자 헌이 이곳은 나름 유명한 관광지라고 말했다. 여름에는 주차할 장소도 여의치 않을 정도라고. 하긴 이렇게 경치가 좋고 물이 맑은 곳에 사람이 안 찾아올리 없지. 마을을 벗어나서 조금 더 가니 불영사 주차장이 나왔다. 12시가 되기전에 도착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주차장은 한산했다. 우리가 도착하자 어디선가 아주머니가 나타나서 매표소 안으로 들어가셨다. 입장료를 내고 불영사로 향했다.
천축산불영사. 산태극수태극 이라는 곳이라 경치도 좋고 기운도 좋고 다 좋다는 설명이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공기 맑고 물 맑은 곳.
금방 도착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안내문과 지도를 보니 주차장에서도 꽤 걸어가야 불영사가 있었다. 울창한 숲 속을 걸으니 기분은 좋았다. 시간이 안돼서 못 갔지만, 나는 울진에 있는 금강송 군락지도 가보고 싶었는데, 대신에 그에 못지 않을 숲 길을 걸을 수 있어서 괜찮았다. 공기도 상쾌했다. 우리 넷은 참새같이 재잘거리며 불영사로 향했다.
불영사 가기 전에 다리가 하나있다. 거기서 본 계곡. 물이 진짜 너무 맑았다. 아직 겨울이어서 살얼음이 얼어있다.
"이거 도착하기 전에 퍼지겠다."
라고 말하니 불영사가 보였다. 비구니 도량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절도 아담해보였다. 숲 길을 걸을 때 우리 옆을 무수히 지나갔던 차들이 절 주차장에 빼곡히 있었다.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불영사는 연못에 돌이 비쳤는데 그것이 마치 부처와 같은 모습이라고 해서 불영사(佛影寺)라고 이름 붙여진 절이라고 한다. 절 입구에 그 연못이 있었다.
"어디에 그 돌이 비친다는 거지?"
"물 속에 비친 우리 모습이 부처아니가?"
찬의 입이 터졌다. 주지승이나 되는 사람이 슬그머니 던질 듯한 말을 했다. 우린 놀라며 찬을 한 번 쳐다봤다. 혹시 찬이 부처가 아닐까. 다시 두리번 거리며 그 돌을 찾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찬이 그 돌을 찾았다. 찬이 가리키는 곳은 산 꼭대기였는데, 그곳에 진짜 부처의 모습을 한 돌이 있었다. 관음상이나 미륵불처럼 서있는 부처 형상이었고, 그 앞에 마치 도를 얻으려 엎드려 있는 듯한 사람의 모습을 한 바위 형상도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본 전설의 증거는 신비로웠다. 신비감을 안고 절을 구경했다.
먼저 대웅전으로 향했다. 대웅전은 몇 번을 다시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영조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웅전안에 보면 탱화가 있는데 이것이 영조때 그려졌다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탱화는 국보이기도. 사진을 찍고 난 후, 온 김에 절이나 하자싶어 헌과 함께 절을 했다. 절은 아담하니 참 예뻤다. 조선시대에도 주로 궁궐의 여인들이 많이 와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남자도 몇 명 있기는 했지만, 여자가 절대 다수였을 만큼 현재도 여성이 많이 오는 것 같았다. 각 건물마다 모시고 있는 부처가 달랐다. 명부전이었던가. 그곳은 염라대왕을 모시는 곳 같았는데, 멀리서 봤을때는 아주 무섭게 생긴 염라대왕상이 가까이서 보니 약간 해학적이게 생긴게 인상적이었다. 산신전도 가보고, 응진전에서는 다시 기도를 했다. 밖에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어느 아주머니께서 응진전으로 들어가시더니 불전함에 돈을 넣고 석가모니상과 16나한상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이었다. 분위기를 살펴보니 아까 본 명부전은 저승에 간 사람들을 위해, 여기 응진전은 이승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같았다. 격동의 젊은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를 위해 총무 원이 회비에서 1000원을 빼들고는 불전함에 넣고 기도하라고 했다. 그렇게 하려다 같이 모은 회비니 넷이서 같이하자고 했다. 원은 석가모니상에게만 한번 했고, 나머지는 아주머니가 한대로 석가모니와 좌우 나한에게 세 번 절을 했다. 절을 하면서 간절히 빌고 빌었다. 이렇게 간절히 빌고 빌게 있다는게 어떤 의미로는 참 서글프면서도, 그래도 삶이란게 다 이렇지 않겠나했다.
아담하니 예쁜 불영사를 떠나 영덕으로 향했다. 졸지 않으려고 또 투혼의 수다를 떨었다. 그래도 맑은 공기를 마시고 나니 아까보단 정신이 맑아졌다. 울진을 빠져나와 한참을 가다 휴게소에 들러 간단히 요기를 했다. 휴게소 야외 테이블에 앉아 캔커피와 작은 도넛을 마치 F4인양 된장스럽게 먹고 나니 기력도 회복이 되었다. 헌이 군생활 할 때 휴가나오고 복귀할 때마다 이 휴게소에 들렀었다고. 세월은 빠르다. 그래서 인생은 짧은 것인지도.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던 군생활도 지나고보니 한낱 작은 추억의 한 조각이 되어 버렸다. 지금 방황하고 혼란스런 젊음도 어느 순간 기억의 어느 한 구석진 곳에서 간신히 찾을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어영부영 살지만 말자. 버나드 쇼처럼 죽고나서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한탄하지 않게.
칠보산 휴게소. 여기서 우린 바다를 보며 커피와 도넛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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