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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떠나보니 나를 알겠더라 - 10.구룡포와 호미곶해맞이공원

파란선인장 2009. 3. 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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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어과메기보다는 꽁치과메기가 더 고소하다는 큰 깨달음


 7번 국도를 타고 포항으로 향했다. 영덕에서 포항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다른 차들처럼 갔다면 훨씬 더 일찍 포항에 도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에코드라이빙, 경제적인 운전, 안전 운전을 지향했기에, 약간씩 늦고 있었다. 아니, 우린 정상적인 시간을 소요했고 다른 차들이 좀 더 빨랐을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해는 늬엿늬엿 저물어 가고 있었다. 유독 뿌연 하늘에 해는 이미 빛을 많이 잃어가고 있었다. 포항에 다와가던 그 국도위에서 수상한 안내판을 보았다. 



 "저건 뭐지?"
 "이 근처인가 보네?"
 "제기랄, 우리 잠시 들릴까?"
 "뭐 할라고?"
 "똥이나 싸고 가게."

 내 말에 모두들 웃었지만, 그 웃음은 쓰디썼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안내판의 문구도 조금은 쓴웃음을 짓게 했다. '고향마을'이라. 하긴 '생가'는 아니겠지. 그건 안내판을 설치하라고 지시 내린 사람도 거기엔 '생가(태어난 집)'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건가.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고향'이란 말도 태어나서 자란 곳을 의미하니까 '고향마을'이라기 보다는 '유년시절을 보낸 마을'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지 않나. 하긴 내가 이렇게 말꼬리 잡을 것도 없다. 그곳이 '고향마을'이든 '유년시절을 보낸 마을'이든 의미없긴 매 한가지니까.

 포항으로 빠져들어가는 길에서 약간 실수가 있었다. 빠져야 할 부분에서 못 빠져나가서 7번 국도위를 몇 번 왔다갔다 한 뒤에야 포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린 이번 여행의 또 하나의 목적이자, 여행이 시작된 계기가 된 '과메기'를 먹기 위해 구룡포로 향했다. 그리고 호미곶에 있는 '손모가지 공원'에도 들르기로 했다. 이 공원은 예전에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 나왔던 그곳인데, 대표적인 조형물인 '상생의 손'이 있는 곳이다. 정식명칭은 호미곶 해맞이 광장이지만 우린 구룡포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 명칭을 몰랐으므로 그냥 '손모가지 공원'이라고 불렀다. 일단 구룡포에 가서 과메기와 함께 식사를 하고 집에 가져갈 과메기를 좀 산 후에 손모가기 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포항은 그야말로 공업도시 였다. 시내에 들어서고 어떤 다리를 건너니 그야말로 거대한 공업단지가 계속 되었다. 거의 대부분이 포항제철이었고, 간혹 다른 제철회사 공장단지도 보였다. 지는 해와 공업단지의 높다란 굴뚝과 네모난 건물은 뭔가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이를 테면 한편의 도시적 이미지를 묘사한 시의 배경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포항에는 처음이었고, 그런 엄청난 공업단지를 본 것도 처음이었다. 내 눈에는 도시가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중에 가장 경이로운 광경처럼 보였다. 그리고 해병대 주둔지도 봤다. 아, 이게 월송정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던 그 해병대구나. 북한 특공대놈들이 이 해병대를 공격하려고 남하하였다가 멍청하게 울진을 포항으로 알고 상륙해 엄한 민간인들만 죽였다는 그 이야기속 해병대. 이제는 마치 전설속의 한 증거물인양 그곳에 있었다.
 

지는 해. 달리는 차안에서 급하게 찍었다. 왠지 도시적인 외로움이 느껴진다...라고 하면 좀 오바인가.ㅎㅎ



 6시쯤이었던 것 같다. 우린 구룡포에 도착했다. 과메기를 구입하기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녀봤지만, 과메기를 파는 곳은 거의 없고 죄다 대게를 파는 곳뿐이었다. 원이 대게를 산다고 해서 수산물 협동조합 같은 곳에 들어가봤다. 거기에서 파는 대게도 역시 가격이 좀 비쌌고, 이미 저녁이라 그런지 양도 별로 없었다. 싸게 파는 것도 있긴 했는데, 다리가 몇 개씩 떨어져 나간 것들 뿐이었다. 원은 사지 않았다.

 우린 저녁으로 과메기를 먹고자 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하지만 과메기를 파는 곳은 있었지만 식사로 제공하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우린 과메기는 사서 들고 가는 것으로 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적당한 식당을 찾았다. 하지만 구룡포항 근처에 있는 식당은 거의다 우리에겐 부담스런 가격의 음식만을 팔았다. 처음엔 회비빔밥을 먹을까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부산에선 5000원이면 먹을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거의다 만원이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연재글을 다 읽어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린 아침에 라면을 먹은 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냥 먹을까 했지만, 조금만 더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가기에 적당한 곳은 없었다. 그렇게 우린 계속 시간을 지체했고, 또 지쳐갔다. 그냥 중국집에서 먹으려는 찰나에 감자탕 체인점을 발견하고는 거기로 들어갔다. 아마도 구룡포항에는 소문난 맛집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굶주림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있을까. 우린 말도 없이 저녁을 먹었다. 뜨끈한 국물과 뼈다귀에 붙은 고기가 식도를 넘어가자 살아있음을 느꼈다. 배불리 먹으니 다시 힘이 났다. 과메기를 구입하기 위해 다시 돌아다녔다. 아니면 우리가 너무 늦게 와서 그런 것일수도 있지만, 구룡포항엔 은근히 과메기 파는 곳이 적었다. '할매과메기'라는 곳밖에 찾을 수 없어서 그곳에서 과메기를 구입하기로 했다.

 "청어로 만든 과메기는 없나요?"
 "요새는 청어로 과메기 안 만듭니다."
 "원래는 청어로 만들었다고 그러던데. TV에서 올해 청어가 풍년이라고 청어로 만든 과메기 먹는 거 보고 왔는데."
 "옛날에는 청어로 만들었는데, 요새는 있어도 안 만듭니다. 청어는 비려서 잘 먹지도 않고. 우리도 청어보단 꽁치로 만든게 더 맛있어서 청어는 잘 안 먹습니다."

 우리는 그렇군, 하고 10000원짜리를 샀다. 종이로 싸서 포장을 했지만 양은 많았다. 포장이 잘 된 것은 좀 더 비쌌는데, 우린 어차피 우리가 먹을 거였기 때문에 싸고 양많은 것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마지막 목적지인 호미곶해맞이공원으로 향했다. 지도를 보니 13Km정도 되었다. 우린 다시 북쪽을 향했다. 

역시나 다 먹고 나서 사진을 찍었다는;; 다 필요없고 시장이 반찬이다.



 조용한 밤길을 우린 음악을 들으며 가고 있었다. 근데 헌의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뒤에 차가 계속 헤드라이트를 위아래로 깜빡인다."
 
 우린 동시에 뒤를 봤다. 흰색 레조가 우리 뒤를 따라 오고 있었다. 도로는 1차선 도로였다. 반대쪽에선 오는 차량이 없었다.

 "바쁘면 지가 앞질러 가겠지."

 사실 그동안 많은 차들이 우릴 앞질러 갔다. 지금처럼 1차선 도로에서도 반대쪽 차선에서 오는 차가 없으면 그들은 우릴 지나쳐 갔다. 이번에도 그냥 그러겠지 싶었다.

 "그래서 깜빡이켰는데도(나름 먼저가라는 신호였다.) 안가네."
 "뭐, 신경쓰지 마라.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런데 신경쓰인다."

 우린 그래서 길옆에 있는 슈퍼에서 껌도 살겸해서 차를 한 쪽에 대었고, 레조는 우리를 지나갔다. 해맞이 공원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아까 그 레조가 깜빡이를 켠 채로 약간 주춤주춤 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우린 이제껏 맛보지 못한 다이내믹하면서도 스포틱한 드라이빙을 경험했다. 헌이 빠른 속도로 그들을 추월한 것이다. 아마도 헌이 순간적으로 흥분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우리가 더 흥분을 해버렸다. 아까 그 레조가 우물쭈물하던 곳에서 우회전을 해서 가야 해맞이 공원이었던 것이다. 우리도 곧 주춤거리며 해맞이 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밤바다는 역시 추웠다. 바람이 거셌다. 그래도 나름 야간의 멋은 있었다. 제일 먼저 등대의 불빛이 끊이없이 돌아가면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해맞이 공원 옆에 있는 등대박물관에 있는 것이었다. 공원 중앙 통로는 가로등 불빛으로 밝았다. 그리고 상생의 손을 비추는 조명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으며 논 후(이곳에서도 우리의 예술사진은 멈출 줄 몰랐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었다. 차로 돌아가다가 찬이 화장실에 간다고 했다. 헌은 먼저 차로 가기로 했고, 나와 원이 밖에서 찬을 기다리기로 했다. 찬이 화장실로 들어가자 원과 나는 신속하고도 조용하게 화장실 건물 근처로 움직였다.

 "찬이 나오면 뒤에 가서 놀래키자."
 "우리 없는거 보고 우는 거 아니가."

 찬이 나왔다. 우린 최대한 숨을 죽였고, 찬은 눈치채지 못했다. 찬이 어느정도 걸어가자 우리도 뒤따라 갔다. 빠르지만 조용히.
 "웍!!"
 "어↘."

 찬은 놀라지 않았다. 우리가 없는 것을 보고는 어느 정도 장난칠 꺼란 기분이 들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서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최근에 살이 많이 찐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다시 한번 살을 빼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놀래키는 타이밍이 약간 늦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오자 마자 바로 했어야 했는데. 근데 이렇게 장난쳤다고 적는 지금 왜 이렇게 부끄러운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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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미곶에서 다시 포항으로 나오는 길을 꼬불거리는 산길이어서, 초보운전자인 헌에게는 아주 난코스였다. 한번은 꽤나 빠르게 커브를 돌아서 가슴이 철렁하던 순간도 있었다. 기름이 간당거려 주유소를 고를 때는 헌과 원의 때아닌 토론도 있었다. 헌은 어쨌든 가장 싼 곳에 가려 했고, 원은 그래봤자 20원차이고 가득채운다고 해도 1000원 차이도 안 난다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가장 먼저 나온 주유소가 가장 쌌고, 결국에는 대충 적당한 가격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고, 그 후에 더 싼 주유소를 목격하게 되었다.

 그렇게 기름을 가득채운 채 몇시간을 달린 후 우린 무사히 부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끝 -



※ 짧은 여행에 대한 긴 글은 여기서 끝입니다. 잘하면 '에필로그'가 있겠지만, 본격적인 여행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모든 분께 사랑과 행복만이 가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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