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영화

인터스텔라 - 너를 향해 작용하는 중력

파란선인장 2014. 12. 2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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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다시 우주로

  미래의 지구는 더 이상 생명을 키우지 못하는 죽어가는 행성이다. 지독한 황사에 대부분의 작물들은 멸종되었고, 마지막 남은 옥수수마저 해가 갈수록 흉작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하늘을 쳐다보지 않으며, 흙바람이 일고 모태의 생명력을 읽어버린 땅(earth)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다. 식물마저 자라지 못하는 불모의 땅이 되어버린 지구에서 인간 역시 그리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막연한 희망으로 예고된 결말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딸 '머피'의 방에서 계속 일어나는 기이한 중력현상을 목격한 '쿠퍼'는 숨겨진 코드를 해독하여 지도의 어느 곳을 찾아가게 되고, 거기서 숨겨진 NASA 본부를 찾게 된다. 쿠퍼는 그곳에서 지구를 떠나 새로운 터전을 찾는 작업을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과거 유능한 조종사인 그가 그 과업에 참여해 줄 것을 부탁받는다. 사랑하는 딸과 가족의 곁을 떠나기는 싫지만, 자신의 딸의 세대가 지구에서의 인류의 마지막 세대일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 임무에 참여하기로 한다.

극장에서 놓쳤던 결정적 장면들

  영화를 보고 나온 직후의 느낌은 '아 영화가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였다. 그러니까 '만' 박사[각주:1]와 헤어진 후 마지막 남은 박사 ―'아멜리아' 박사의 연인이 있는 행성으로 향하는 부분까지는 그럭저럭 어떤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었는데, 블랙홀 이후부터는 나도 함께 블랙홀에 빨려 들어 간 듯 대략 멍해져 버렸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고 나서도 웜홀의 환상적인 모습과 빛이 주위를 감싸돌고 있던 블랙홀의 모습과 같은 우주의 미지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점 말고는 크게 인상적인 것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 집에 오는 길에 다시 찬찬히 영화를 되새겨봤다. 그러자 내가 놓쳐버린 이 영화의 결정적 장면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첫 번째 행성에서 임무에 실패한 후 다음 목적지를 정하는 장면이었다. 영화를 볼 때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던, 아니 오히려 아멜리에 박사의 말에 '우주 끝까지 가서 사랑타령이라니! 지금 인류의 생존과 미래가 달려 있는 막중한 임무 중에 자신의 연인이 있는 곳으로 가자는, 그런 사사로운 감정을 막중한 임무에 이용하려 하다니! 저런 정신나간…'이라고 비난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때 아멜리에 박사의 말에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너무나 확실하게도 결정적인 장면이었지만 이처럼 수준 높은 우주과학의 이론을 다룬 '과학적인' 영화에 나온 너무나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한 장면이어서 '엥?' 하면서 봤던 블랙홀 장면이었다. 이 영화의 과학적 측면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영화 자체의 상상력 측면에 대해 가볍게 여긴 것이다.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 중력

  중력은 행성, 항성, 블랙홀 등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이 가지는 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뉴턴 이후로 아인슈타인과 양자역학까지 이 중력이 물리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어 진다고 한다. 그리고 항상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그 존재의 이유나 원리에 대해 명확하게 아는 것이 없다고 한다. 바로 이 중력이 이 영화 전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블랙홀 시퀀스에서 쿠퍼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 딸 머피에게 중요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도 중력을 이용해 만든 4차원의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인류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중력을 사용하여 공간을 뛰어넘고 시간을 물리적 재료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블랙홀 속으로 뛰어든 쿠퍼의 행동 덕분이었다. 그리고 쿠퍼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 원인이 바로 딸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것들이 모두 중력을 가지고 있다면, 사람 역시도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이렇게 이 영화는 우주의 중력으로 사람 사이의 중력, 즉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중력처럼 사랑 역시도 시공간을 뛰어넘어 서로를 끌어당기는 강력한 힘인 것이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아멜리에 박사의 사랑 타령이 실상 영화의 주제를 언급한 중요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장면을 한 여인의 개인적인 감정으로 치부하게끔 감독이 연출하기는 했지만, 사랑에 있어 옳고 그름이 없거늘,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숭고하고, 연인에 대한 사랑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너를 향하는 나에게 작용하는 중력

   중력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랑 역시도 무어라 정의할 수 없지만, 항상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존재와 존재의 관계를 맺어주는, 삶의 필수적인 것만은 틀림없다. 결국 '인터스텔라'는 우주의 많은 존재들이 중력의 영향 속에서 서로 끌어당기고 있듯이, 그리고 우리가 지구의 중력으로 인해 땅에 발 붙이고 살아가고 있듯이, 너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 역시도 우리라는 관계를 맺게 해주는 또 하나의 중력인 것을 전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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