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casting/여행

나는 지금 여수 봄바다 - 2.오동도

파란선인장 2014. 5.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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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일찍 왔더라면

   박람회장 정문에서 새로 동선을 짠 후, 가장 가까운 오동도로 걸어갔다. 가까워 보였지만 제법 걸어 가야 했다. 두바이의 유명한 호텔과 비슷했던 호텔을 지나자 오동도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였다. 여수엑스포역에 도착 후 렌터카 찾는다고, 숙소 찾는다고 돌아다녀서 그런지 시작도 하기 전에 힘들어서 뭔가 탈 것을 이용하고 싶었다. 어디서 빌려서 타고 왔는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도저히 어디서 빌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각주:1] 입구에서부터 이어진 긴 방파제를 따라 들어가면 오동도에 도착하는데, 그 구간을 왕복으로 다니는 열차가 있었다. 가격도 저렴해서 타고 가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올 때 타기로 하고 오동도로 걸어 들어갔다.

오동도로 가는 방파제 길. 맑은 바닷물이 기억에 남는다.


   오동도는 부산의 동백섬 정도의 크기여서, 한 바퀴 도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한 바퀴 도는 코스가 있는데, 방파제 길이 끝나는 지점에 있던 곳을 시작해서 오동도의 숲으로 들어갔다. 오동도에 정작 오동나무는 없고 동백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어서 그 명칭에 의문이 생겼는데, 옛날에는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동도라고 불렸었다고 한다. 그러다 고려 말에 신돈이 오동도의 오동나무에 봉황새가 자주 드나든다는 말을 듣고 왕이 나올 불길한 징조라 여겨 오동나무를 다 베어서 현재는 섬에 오동나무가 없다고 한다. 대신에 산책로를 중심으로 커다란 동백나무들이 터널을 만들고 있어서, 동백이 피는 2월이나 3월 정도에 왔다면 정말 장관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는 동백이 다 떨어져서 그 광경을 상상으로만 느껴야 했던 점이 아쉬울 뿐이었다.

오동도에서 바라본 박람회장. 생각보다 많이 걸어 왔다.


스마트폰 배터리 같은 내 체력

   여행은 이제 막 시작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이 드는가. 여수라고 해서 그냥 평소에 신던 단화를 신고 와서 그런가. 내가 살짝 평발이어서 그런가. 아님 하체에 가해지는 하중이 많아서 그런가. 맑은 날씨는 고마웠지만, 걷다 보니 햇볕에 더워서 더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용굴이라는 곳을 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꽤나 내려가야 했다. 에휴, 이 계단을 어떻게 다시 올라오나 하면서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예전에 용이 살았던 동굴이라고 해서 용굴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용굴까지는 바위를 지나가야 하는데, 많은 관광객으로 혼잡해서 내심 불안했다. 최근에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져서 그런지, 자꾸 미끄러지는 신발도 불안하고, 매고 있는 백팩을 누가 지나가면서 확 쳐서 균형을 잃지는 않을까 내심 불안했다. 그런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무리없이 잘 다니긴 하더라. 쪼매난 꼬맹이들도 잘 다니는 길을 혼자서만 힘들게 도착한 용골은 그냥 동굴이었다. 용이 살고 있다면 좋았겠지만, 예전에 사람들이 이곳을 돌로 막아서 용이 다른 데로 옮겼다고 한다. 굴 속으로라도 들어갈 수 있었다면 더 나았겠지만, 내려가는 길이 없어서 용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 오동도의 등대로 향했다.


용이 살았다고.


   오동도의 등대는 생각보다 규모가 있었다. 관리인이 상주하고 있었고, 거대한 안테나도 같이 세워져 있었다. 등대를 올라가는 방법에는 계단을 이용하는 것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었다. 나의 헥헥거림은 체력저하보다는 더위로 인한 게 더 컸다고 생각해서 사람으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 보다는 쾌적한 계단을 선택했다. 계단은 전체적으로 어두웠는데, 심해의 색으로 칠해진 벽에는 여러 물고기들이 그려져 있어서 그것을 보면서 오르다 보니 어느새 나는 대부분의 체력을 잃게 되었다.

  나의 체력을 바쳐서 올라 온 등대는 창문이 밀폐형이어서 내부가 아주 후덥지근했다. 에어컨이 작동하고 있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창문도 흐려서 경치도 잘 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볼 것도 없고 덥고 해서 금방 내려왔다. 물론 내려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거시기라고 하기엔 거시기한 거시기

  등대에서 내려와서 해맞이 장소 같은 곳에 내려와서 쉰 덕분에 대부분의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완충 후 다시 이동하며 본 안내판에 따르면 조금만 가다 보면 '남근목'이라는 나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남근'이었다면 뭐 그러려니 했겠지만, 나무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니! 호기심이 동했다. 나무라면 응당 자라면서 하늘을 향해 가지를 펼치기 마련이라 그런 모양과는 비슷할 수가 없지 않나! 도대체 어떻게! 궁금증으로 이런저런 상상을 하던 내 앞에 드디어 그 거대한 남근목이! 두둥!

   기대와 다른 모습에 나는 매우 실망하고[각주:2], 실망하는 나의 푸념을 지나가던 어머니가 듣고는 다 큰 딸에게 '아니라는데?' 하며 키득거리며 지나가서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다. 나무 앞에는 친절하게 '남근목'이라는 팻말이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친절히 알려 주기 위해 'Penis Tree'라는 문구까지. 찬이는 설마 저게 학명이냐고 킬킬거렸고, 나는 잘못 알아듣고는 남근=Penis가 맞다고 하고 있고. 그거 때문에 찬이는 더 웃고. 물론 정식 학명은 따로 적혀 있긴 했지만, 그런 것이 기억에 남을 리가 없다. 차라리 'Testicle Tree'라고 명명했다면 훨씬 더 그럴싸 했을 텐데.


01


세계 4대 미항?

  오동도를 돌아 본 후, 나올 때 타려고 했던 열차는 오히려 아까보다 대기 인원이 더 많아져서 또다시 포기해야 했다. 다리가 힘 들어서 그렇지 걷는 것이 오히려 더 빨랐다. 오동도 입구에서 좀 걸어나와 버스 정류장에서 여수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중앙동에서 하차해서 우리가 인터넷에서 찾아 본 식당의 위치를 파악한 후, 일단 여수항 구경을 갔다. 세계 4대 미항이라는 여수항을 여기까지 와서 안 보고 갈 수는 없었다.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도착한 여수항은, 세계 4대 미항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걸까, 라는 의문을 나에게 안겨 주었다.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도 매력이 있는 곳을, 누가 '세계 4대 미항'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그 무게에 여수항의 경치가 짓눌리게 해 놓은 것일까. 미항이라는 것이 바다에서 바라보는 모습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 해도 조금은 과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다음날 돌산 공원에 올라가서 바라 본 바, 여수항은 '세계 4대 미항'이 아니라도 아름다운 항구였다.


여수항에서 바라본 전경


  여수항을 나와 아까 찾은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빅 오 쇼를 보기 위해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1. 여수 엑스포역 앞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는 것은 돌아가는 기차를 타러 왔을 때야 비로서 알 수 있었다. [본문으로]
  2. 그러니까 도대체 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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