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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여수 봄바다 - 3. 빅오쇼(Big-O show)

파란선인장 2014. 5. 1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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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 오 쇼는 온라인 예매가 가능하지만, 급하게 이번 여행을 온 우리는 현장 구매를 해야 했다. 현장 구매는 15시부터 매표소에서 직접 구매해야 한다. 오동도로 가는 길에 동선이 잘 맞아서, 현장 구매를 하기 위해 선 줄을 발견할 수 있었다. 15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었지만, 이미 대기 줄이 꽤 길었다. 온라인 예매는 이렇게 기다리지 않아도 되어서 좋고, 현장 구매는 아쿠아 플라넷 입장권을 보여주면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점이 좋다. 우리는 기다리는 대신 할인을 받았다. 생각보다 오래 기다린 끝에 표를 구매할 수 있었다. 빅 오 쇼 좌석은 지정석과 자유석 두 가지인데, 자유석이 저렴하긴 하지만 좋은 자리에 앉아서 보려면 일찍 와서 줄을 서야 할 것 같아 일정에 여유를 주기 위해 지정석으로 구입했다. 오후 일정을 마치고 빅 오 쇼를 보기 전에 잠깐 숙소에 들렀다. 무덥다고 느껴지던 날씨가 해가 지자 쌀쌀해져 옷을 좀 챙겨 입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숙소에서 조금 쉰 다음에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와 과자를 사 들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빅 오 쇼는 19시부터 입장이 가능하고 본 공연은 19시 50분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19시 30분 정도에 입장했다. 바람이 불면 빅 오나 분수대의 물이 관람석까지 날린 다는 정보와 그래서 입장 시 비옷을 나눠준다는 정보가 있었지만, 그날에는 바람이 그렇게 많이 불지 않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이 날리지는 않았고, 그래서 비옷을 나눠주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별 걱정 없이 쇼를 즐길 수 있었다.

허벌나게 허벌나는 빅 오 쇼

  빅 오 쇼는 '해상 분수쇼'와 '하나쇼', '뭉키쇼'로 이뤄져 있었다. 먼저 해상 분수쇼로 시작했다. 피아노 연주곡이나 팝페라 음악, 퓨전 음악 등에 맞춰서 분수의 물기둥들이 다채로운 모습을 연출했다. 사실 분수쇼에는 별 기대를 안 했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감동을 받았다. 발레리나가 춤을 추는 듯한 작은 분수들과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왔다 갔다 하는 분수의 조화가 아름다운 장관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음악에 맞춰 대포 같은 물줄기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를 때는 가슴이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해상 분수쇼는 6곡을 선보이고 끝이 났다. 아직 '빅 오'는 쓰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의 감동이라니. 생각보다 괜찮았던 분수쇼에 뒤이어 공연하는 하나쇼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

화려했던 해상 분수쇼

대포소리를 내며 하늘 높이 치솟을 때는 정말 가슴이 후련했다.

야간에 휴대폰 카메라에는 그 장관을 제대로 담을 수 없어 아쉬웠다. 게다가 동영상 촬영 중 캡쳐라 더 선명하지 못한 것 같다.

  하나쇼부터 본격적으로 모든 장비들이 사용되었다. 빅 오에서도 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휘황찬란한 레이저를 비추기 시작했으며, 빅 오 뒤편에 있는 건물의 외벽에도 영상이 나타났다. 분수쇼도 좋았었지만, 하나쇼에 비하면 애피타이저 수준이었다. 거대한 분수가 막을 형성하여 거기에 영상이 비춰지고 화려한 레이저들이 만들어내는 영상들은 나의 시신경에 태어나 처음 느끼는 신선한 자극을 전해주었다. 하나쇼는 해양오염에 대한 경각심과 바다 환경의 보존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물론 좋은 내용이긴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시각적인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옳은 말이고 한데, 메시지 자체에서 오는 감동은 적은 편이었다. 어린 관람객의 수준에 맞게 제작되었다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바다는 소중하니까, 오염시키는 일들을 줄여 나가도록 각자가 노력 할 필요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바다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하나쇼. 화려한 레이저와 영상이 압권이다.

  하나쇼가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마지막인 뭉키쇼는 조금 더 대상 연령층이 높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30대의 젊은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듯, 나오는 음악들이 록음악에서 클럽음악 같은 종류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몽환적인 음악이 나올 때, 내 뒷자리에 앉아있던 꼬마아이가 무섭다고 징징대던 것을 보면 너무 어린 애들에게는 안 맞을 수도 있겠다. 물론 나는 하나쇼보다 훨씬 좋았다. 쇼 자체의 효과들도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다만, 이 쇼를 진행하는 '뭉키'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나와 찬이 약간 혼란스러운 점은 있었다. 처음에 이름만 들었을 때는 원숭이 캐릭터가 나와서 하는 건가 했는데, 나중에 캐릭터를 보니 문어여서, 왜 문어 캐릭터에 '뭉키'라는 이름을 붙인 건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공연 시작 전 소개에서 그 캐릭터가 문어가 아닌 주꾸미 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아 그렇구나' 했지만, 그것이 여수의 특산물인 주꾸미를 모티브로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급하게 오느라 충분한 사전 준비 및 조사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지만, 여수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특산물인 주꾸미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라던가 하는 것을, 아니 주꾸미의 주도 못 봤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수 관광 안내 팸플릿에도 주꾸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공연을 보면서 팔다리가 많은 동물이 필요했던 건가 싶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렇다면 그런 것이므로 그러려니 하면서 봤다. 그리고 뭉키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연예인의 목소리여서, 심지어 그 연예인의 특유의 톤과 억양과 유행어까지 그대로 나와서, 친숙한 점은 좋았지만 캐릭터 자체에 대한 집중이나 호감이 생기지는 않았다.

가장 화려하고 신났던 뭉키쇼. 감동의 크기를 비교하자면 '사진<영상<<<<<비교불가<<<<<실제'

불도 나오는 빅 오. 조금은 쌀쌀했던 밤에 저 불이 따스한 온기가 돼 주어서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이 사진만 봐도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빅 오 쇼는 분수의 직선과 빅 오의 원을 통해 물과 불과 빛을 사용해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하고도 황홀한 쇼를 보여 주었다.

이것은 4D여!

   기대를 안 하고 봐서인지 빅 오 쇼가 주는 감동은 대단했다. 입장권으로 지불한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자리도 중앙의 좋은 곳에 앉아서 쇼의 온전한 효과를 다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쇼의 감동과는 별개로 나에게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내 뒷자리에 한창 혈기 왕성한 7살 정도 되는 남자 꼬마아이가 앉은 것이었다. 이 아이는 자리에 앉자마자 내 의자를 차고 내 어깨에 발을 갖다 대기[각주:1] 시작했다. 뭘 보러 왔는데 뒤에 아이가 앉아서 의자를 차면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아는 사람을 알 것이다. 하지만 거기다 대고 화를 내 봤자 내 기분만 상하고, 어차피 애이기 때문에 뭐라 한다고 해서 쉽게 해결되기도 힘든 문제라, 본격적으로 쇼가 시작되기 전에 나름 카리스마 있게[각주:2] 발 조심하라고 한 마디 했고, 그걸 옆에 있는 부모가 들어서 아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부모가 단단히 주의를 주길래 나름 안심했는데, 이놈의 자식이 이 아이가 자기 부모 말을 더럽게 지독하게 안 듣는 것이 문제였다. 거기다 떠들기는 어찌나 떠들고 말은 또 얼마나 많은지. 주말 연휴를 맞아 멀리까지 놀러 온 이 화목해 보이는 가정의 추억의 한 페이지가 나의 분노로 얼룩지는 것을 막기 위해 참고 참았다. 어린 아이니까 오래 앉아있기 힘들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끈질기게 꾸준히 내 의자를 찬 덕에 감동적인 쇼 중간 중간에 흐름이 끊어져서 어쩔 수 없이 짜증은 나더라. 음악의 박자에 맞게 차주었다면 4D체험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건만. 아이는 꾸준하게 의자를 차고 부모도 꾸준하게 주의를 줬지만,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아이 때문에 쇼 자체를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부모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하긴 자식을 낳는 순간 자신의 기쁨이나 만족은 대부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일 테니까. 불현듯 곧 애 아빠가 되는 친구가 떠올라 마음 한 편이 짠해지는 것도 있었다. 그 아이 덕분에 한 시간 가량 공연을 보면서 인생의 희노애락애오욕을 다 느낀 듯 했다.

시방 나는 여수 밤바다

   빅 오 쇼를 본 후, 유람선을 타기 위해 박람회장 안에 있는 여객선 터미널로 향했다. 여객선을 타고 근처를 한 바퀴 돌면서 여수 밤바다의 야경을 만끽하고 싶었다. 쇼가 끝난 시간이 거의 9시여서 과연 배가 있을까 싶었지만, 일단 가 보고 없으면 바로 옆에 있는 스카이 타워에 올라가서 여수의 야경을 보는 것으로 했다. 멀리서 봐도 인적이 뜸한 것이 역시나 이미 유람선은 운항이 끝나 있었다. 할 수 없이 바로 스카이 타워로 향했는데, 빅 오 쇼를 보고 나온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움직여서 스카이 타워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스카이 타워는 시멘트 공장의 건물을 재활용해서 만든 곳으로, 건물 외벽에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어, 낮에 오면 매시 정각마다 하는 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입장료 2000x2원을 내고 곧장 전망대 겸 카페로 올라갔다. 코코아나 한 잔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풀까 했지만, 이미 주문이 밀려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는데, 10시면 문을 닫는다고 하고,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9시 20분 쯤이어서 그냥 야외 테라스에서 박람회장 주변의 야경을 구경하기로 했다. 코코아가 아쉬웠지만, 아름다웠던 여수 밤바다였다.

스카이타워 전망대.

언젠가 다시 가고픈 여수 밤바다.


 아쉬운 밤은 지나가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정산을 마치고 둘이서 TV오락프로를 봤다. 자야 할 때가 되었지만 뭔가 아쉬운 이 기분은 무엇인가. 친구라는 소중한 인연을 여행을 통해서 더욱 돈독하게 하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하지만 그만큼 여행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은 남자 둘이서 여행 오는 사람이 얼마나 희소한가 하는 것이었다. 1박 2일간 여수에 있으면서 남자 둘이 여행 온 사람은 우리를 제외하고는 2쌍밖에 보지 못했다. 거의 대부분이 연인끼리 왔든가 가족끼리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여성 둘이 짝을 지어 온 사람들도 많았다.[각주:3] 하지만 남자 둘은 희소했다. 나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남남커플에 비해 여여커플이 너무나 많았다. 우리가 조금만 용기가 있었다면 이 밤에 이렇게 숙소에서 둘이서 TV프로그램을 보며 희희덕거리진 않았을 텐데. 그러나 빅 오 쇼가 끝난 박람회장 주변은 인기척도 없고, 뭘 어떻게 해볼 장소-이를 테면 술집 같은 곳도 없었다. 아쉬웠지만 그냥 그렇게 잠들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날 택시 기사 아저씨의 가이드로 알게 된 여수 핫 플레이스를 미리 알았다면 어땠을까. 뭐 그래도 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을 것 같기는 하다. 슬프게도 밤 늦게까지 술 마시며 놀 체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1. 물론 신발을 신고 있었다. [본문으로]
  2. 있었다면 발로 안 찼겠지. [본문으로]
  3. 여성 관광객들은 대부분 둘이서 온 사람들이어서 솔직히 쫌 놀랬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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