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가라는 것이다!
모두가 어디론가로 떠나는 5월의 황금연휴. 나도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동시에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단 하루라도 어딜 다녀오면 이 지루하고 엉망인 현실의 흐름을 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떠나는 것 자체가 귀찮은 마음도 있었다. 이런 귀찮음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어디라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막상 떠나려면 뭔가 내키지 않았다. 이렇게 아이러니한 악순환이 우울함을 더 깊게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한 번 우울해지면 아는 것과 생각하는 것과 움직이는 것은 영원히 일치되지 못하는 상태가 되기에 자력으로 탈출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게는, 다행히도, 적절할 때 친구가 나서줘서 어쨌든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애초엔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평일 위주로 일정을 잡으려 했으나, 막상 연휴가 올 때까지도 아무런 준비도 안하고 있었고, 같이 갈 친구 찬이도 2일에 휴가를 못 쓰게 되어서, 이래저래 흐지부지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떠난다 해도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못 정하고 있었다. 제주도에 가고 싶었지만, 이미 표는 매진에 인터넷으로 예약이 가능한 숙소도 없었다. 뭐, 일단 가면 어떻게든 될 것도 같았지만, 거기서 막상 잘못되면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포기했다. 그 밖에 언급된 목적지로 나는 통영-거제를 둘러보고 철쭉으로 유명한 황매산에 가는 일정과 남해에 가거나, 여수에 가보는 것을 추천했고, 찬이는 남원과 담양을 여행지로 추천했다. 하지만 당장 내일 떠나는 여행이어서 이미 표도 없었고, 숙소 예약도 쉽지 않았다. 급하게 추친함으로써 이런 상황에 닥치자 여행 의욕도 급감하기 시작해서 여행지들의 매력도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접을까 싶었는데 찬이가 순천행 기차표 두 장을 예매했다. 여수로 가는 방법을 알아보다가 순천행 기차에 두 자리가 예매 가능한 것을 보고, 이건 가라는 의미라고 바로 예매했다고 했다. 순천에서 여수가는 방법은 버스도 있고 기차도 있어서 일단 순천에 간 다음에 여수로 가는 방편을 구하기로 했다. 당장 내일 떠나야 하는데, 순천까지 가는 기차표만 예매해놓고, 가서 대충 렌트하기로 해놓고, 너무 피곤해서 내일 가면서 뭘 하든 하자 하고 자버렸다. 일단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내가 자는 사이 자기도 피곤했을텐데, 찬이가 이것저것 알아봐 놔서 그나마 순탄한 여행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지금 유비쿼터스 세상
순천까지는 대략 두 시간 반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순천행 기차 안에서야 여행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조사로 여수에 어떤 곳들이 있는지 알아봤고, 대략적인 동선을 짜보기도 했다. 일단 차를 렌트해서 다니기로 하니까, 딱히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울 필요는 없어 보였다. 찬이 말로는 금호렌터카는 이미 예약이 끝나서 안 될 것 같다고 했지만, 인터넷에서 찾아 본 바에 의하면 여수 엑스포역 근처에 렌터카 업체가 있었기에, 역시나 일단 도착해서 빌리기로 했다. 혹시라도 렌트를 못한다면 어쩌나 싶기도 했지만, 설마 여수에 있는 모든 렌터카가 다 대여되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렌트에 실패한다면? 그건 그 때 가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지금이라도 전화로 예약할 수도 있었지만, 가격도 모르고, 뭔가 보지도 않고 예약을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대책 없는 나와는 달리 그래도 찬이는 이것저것 여러 가지 정보들을 찾아 보았다. 그러다 시티투어 버스를 발견해서 대안을 삼을까 했지만, 이것도 미리 예약을 해야되는 것 같았다. 사람이 없으면 그냥 태워줄 것 같기도 했지만, 불확실한 건 배제하기로 했다. 대신에 투어 버스의 코스를 우리의 이동 계획에 반영할 수 있겠다는 점이 수확이라면 수확. 정말 그럴리 없겠지만, 만약에 여수 시내에 있는 모든 렌터카가 예약이 되어서 렌트에 실패를 한다면 정말 어쩌나? 라는 물음이 다시 튀어나왔다. 정말 그렇다면, 뭐, 걷고 또 버스타고 해야지. 1
그렇게 대충 동선을 짜고 이동 계획을 세운 다음, 여수세계박람회장(이하 박람회장)에서 하는 '빅-오 쇼(Big-O Show)'를 볼지 말지 의논을 했다. 가격이 좀 됐기에 조금 고민이 됐지만, 이왕 온 거 안 보고 갈 수는 없어서 보는 걸로 했다. 이왕 보는 김에 아쿠아플라넷도 가 보고, 유람선도 타 보기로 했다. 빅-오 쇼는 사실 조금 망설여졌지만, 아쿠아플라넷에 있는 흰 고래가 너무 보고 싶었고, 유람선 타고 여수 밤바다의 야경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빅-오 쇼는 인터넷 예매가 가능하지만, 휴대전화로는 안 돼서, 15시부터 시작하는 현장 판매를 통해 티켓을 구입하기로 하고, 일정이 어떻게 될 지 몰라 유람선도 상황 봐서 표를 끊기로 했다. 아쿠아플라넷 입장권은 소셜커머스를 뒤진 끝에 현장 판매보다 30% 가량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게다가 빅-오 쇼 입장시 아쿠아플라넷 입장권을 제시하면 입장권 가격을 20%할인 해준다고 해서, 이왕 볼 거 같이 보는 게 괜찮을 것 같았다. 여행지로 가는 기차 안에서 관광지에 대한 정보를 찾고, 음식점을 알아보고, 쇼가 재미있는지 없는지 후기들을 읽고, 표를 예매해서 결제하고 보니, 말로만 듣던 '유비쿼터스 세상'이 도래했구나 싶어서 새삼 격세지감을 느끼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제 기능을 하는 스마트폰을 보자니, 참 흐뭇한데, 왜 자꾸 눈물이 흐르려는지……. 2
여수 관광 대호황!!
여수행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순천에서 간단히 라면과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여수에 도착했을 때까지 이 여행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여행기간 동안 우리의 발이 되어줄 차량을 얼마나 '싸게' 빌릴 수 있을 것인지, 남성 2인이 묵을 수 있는 숙소를 어디에서 구할 것인지만 해결되면 나머지는 우리가 짠 동선대로 움직이며 여수를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사실 숙소도 박람회장 근처에 워낙 숙소가 많이 검색되어서 별 걱정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렌터카였다. 차량을 빌리는 데 1일을 기준으로 요금을 메길는지 24시간으로 메길는지, 그렇게 해서 얼마에 할는지가 중요했다. 설마 여수 시내의 모든 렌터카가 동이 났을까 했다. 다음 지도에 표시된 엑스포역 근처 렌트업체가 전화를 안 받았지만, 뭐, 점심시간이라 그런가 했다.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렌트업체 명함에 적힌 번호로 건 전화가 연결이 안 될 때도, 뭐, 아직 업체는 많으니까, 했다. 다음 지도에 표시된 렌트업체가 있어야 할 곳에 없다는 사실을, 아니 엑스포역 근처에는 차량 렌트 업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야 뭔가 잘못되고 있구나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여수시에 있는 모든 렌터카가 예약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아, 우리가 이때까지 세웠던 계획이 다 헛짓거리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무작정 도착한 여수엑스포역.
어쩔 수 없는 일에 부딪혔을 때 깔끔히 포기하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쉽긴 했지만, 이렇게 된 거 가까운 데는 걷고 먼 데는 버스를 타고 다니면 되겠지 하고, 숙소를 정하기로 했다. 렌트를 못해서 굳은 비용으로 ―왜 그때 아낄 생각은 못 했을까 싶지만― 더 맛있는 것 먹고, 더 좋은 것을 보겠다 했다. 박람회장 안에 얼마 전에 새로 단장한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고 해서 가봤다. 1인 2만원으로 가격은 저렴했고, 시설도 깔끔했지만, 남아 있는 방이 11인실인가밖에 없어서 좀더 둘러보고 마땅한 곳이 없으면 다시 오기로 하고 나왔다. 안 그래도 불면증으로 잘 못 자는데, 분명 누군가 심하게 코를 골아댈 이 방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싶진 않았다. 두 번의 시도에, 박람회장 정문 근처에서 조금 허름하지만 2인에 3만원짜리 방으로 구할 수 있었다. 욕실이 딸려 있는 방인데다, 가격도 괜찮아서 일단 그렇게 숙소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다.
우선 가까운 오동도에 가봤다가 점심으로 서대회를 먹고, 저녁에 빅-오 쇼를 보고 야경을 보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여수를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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