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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여수 봄바다 - 4.향일암

파란선인장 2014. 5. 2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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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번 버스는 역전시장 정류장에 오지 않는다!

  휴대폰 알람에 맞춰 일어나서 씻고 9시를 조금 넘겨 숙소를 나왔다. 어제와 달리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다. 향일암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해가 뜨는 방향으로 지어진 암자이다. 그래서 원래는 일출을 봐야 하지 않겠나 했지만, 과연 우리가 일찍 일어나서 보러 갈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물음 앞에 일출은 됐고 경치나 구경하고 오자로 결론이 났던 것이다. 지도앱 검색 결과 향일암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했다. 아침을 먹고 갈까 하다가 향일암 가는 버스가 자주 있지 않아서 일단 버스를 타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아침은 향일암 근처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지도 상으로는 향일암 근처에 식당이 많았다.

  향일암에 가는 버스 노선은 세 가지였는데, 그 중에서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정류장에 오는 버스는 111번 버스였다. 어제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을 때 당한 것이 있어서 정류장을 꼼꼼하게 살펴보니 노선 안내도에 111번 버스가 있었다. 정류장에 우리 말고 아주머니와 할머니 한 분이 계셔서 이번에는 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이다 싶어 안심했다. 어제 시내에서 숙소로 돌아 오는 길에 탔던 버스는 우리가 내려야 할 곳보다 훨씬 멀리 가서야 멈췄었다. 숙소 근처 정류장에서 부저를 눌렀지만 여러 정류장을 지나치고 박람회장 위쪽에 있던 아파트 단지 입구 쯤에 다다라서야 멈추었기 때문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 오면서 가까운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렸지만, 버스 기사 아저씨는 이상한 손짓만 남긴 채 멈추지 않고 지나갔었다. 우리가 기다리던 정류장에는 버스가 서지 않는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숙소까지 또 걸어가야 했다. 박람회장 근처 정류소는 박람회장 기간 동안에만 운영하고 폐쇄된 것 같았다. 그러면 치우던가 하지. 지도 앱에 나타나는 정보도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크게 도움이 되지 못 했다. 지나가는 사람도 하나 없어 물어볼 수도 없었다. 여수가 버스가 일찍 끊겨서 불편하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거기다 정확하지 않은 지도 정보와 페이크 정류장까지 더해졌으니, 혹시라도 여수에 갈 사람들은 주의해야 할 것이다.

  어제 그런 일이 있어서 불안했었는데, 이번에는 어쨌든 페이크 정류장은 아닌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서 기다리고 계시던 할머니께 111번 버스 오는지 물어봤는데, 할머니는 모르신다고 하셨다. 그 때 더 의심해야 했는데, 정류소에 너무도 당연히 버스가 오는 것처럼 노선 안내도가 붙어 있어서 모르실 수도 있지 하고 한 30분은 더 기다렸던 것 같다. 이제는 습관처럼 보이는 찬이의 인터넷 검색결과,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역전시장 정류장에 111번 버스가 안 온다는 어느 블로거의 글을 찾았고, 근처에 문을 연 식당의 아주머니에게 문의한 결과, 역시 여기는 안 오고 좀 더 나가야 탈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여수에서 버스를 탈 때는 스마트 폰이고 정류장의 노선 안내도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여수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 최고다. 하긴 어느 여행지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아주머니가 알려 주신 정류장에는 실시간 정보가 뜨는 안내 화면까지 달려있어서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혹시나 싶어 정류장에 있던 아저씨께도 확인을 받았고, 마침내 향일암 행 버스가 도착하고서야 안심을 할 수가 있었다.

  돌산도 끝에 있는 향일암까지 가는 길은 역시나 꽤 멀었다. 그러나 일요일 오전이라 한산한 도로 상황에 이대로라면 버스는 한 시간 반보다는 훨씬 빨리 도착할 것 같았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할 것 같아서 일정에 여유가 생기면 무얼 해보나 하며 생각했던 계획은 향일암에 거의 다 왔을 때,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향일암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주차장에 차가 미어터지고 있었다. 그래서 왕복 1차선 외길 도로가 주차장에 들어가려고 대기하는 차들과 나오려는 차, 지나가려는 차들로 밀린 상태였다. 거기서 결국 예정 시간이었던 한 시간 반을 다 채우게 되었다. 결국 한 정거장 전에 강제 하차해서 다음 정거장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버스는 거기서 바로 돌아 나가려고 했다. 우리야 한 정거장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 않아서 걸어가도 크게 상관 없었지만, 다음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어쩌라는 것인지. 따로 알려 주겠지 싶었지만, 조금 찝찝하긴 했다.

너무나 아쉬웠던 향일암

  향일암은 임포라는 작은 어촌 마을에 있었는데, 향일암 덕분인지 주변에 식당이 즐비했다. 돌산도이니 만큼 갓김치 파는 곳도 많았다. 안내를 따라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매표소가 보인다. 향일암은 다도해상 국립공원에 속하기 때문에 입장료를 내야 한다. 따로 출입을 통제하는 입구가 있지는 않고 매표소 옆에서 한 아저씨가 오가는 사람들을 통제하며 표를 확인하고 있었다. 향일암으로 올라가는 길은 두 가지 인데, 가까운 길은 끝없는 계단을 올라야 하고, 먼 길은 보통의 오르막길이지만 더 돌아가야 한다. 사실 이건 나중에 안 것이고, 계단 위에 입구 같은 것이 보여서 가까운 길을 따라 향일암으로 갔다.

금오산향일암

  연휴를 맞아 정말 많은 사람들이 향일암을 찾아서 어떻게 구경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일단 계단을 따라 올라갈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러나 향일암 앞에 있는 바위 틈새로 난 길에서는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리고서야 지나갈 수 있었다. 바위 틈 새로 난 길이 어른 한 명 지나갈 정도로 좁은 대다가 거기서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 때문에 대기시간이 길어졌다. 기념 사진 찍는 사람들한테 불평을 터트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관광지에 와서 기념사진 찍는 걸 가지고 뭐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차마 기념사진 찍을 용기는 없어서 그 곳을 통과하는 나와 찬이를 동영상으로 기록했다.

지나가면서 후다닥 찍은 느낌을 최대한 살린 사진.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는 않지만 해탈길이라는 그 바위 틈새 길을 지나 향일암에 올라오니, 그래, 연휴에는 관광 명소 따위에 오는 것이 아니었어, 라는 깨달음을 얻을 만큼 사람들이 많았다. 언젠가 주말 명동거리를 걸었던 때가 불현듯 떠올랐다. 사람도 너무 많았고, 애초에 암자의 건물보다는 이 곳의 경치가 본 여정의 목적이었으므로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인파 속을 헤쳐 나갔다. 하지만 거기가 사람이 더 많았다. 더욱이 여전히 흐린 날씨에 하늘과 바다가 온통 회색 빛으로 물들어 있어서 크게 감흥도 없었다. 대충 구경하고 올라왔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통해 향일암을 떠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래도 향일암과 그 주변에 구경할 만한 것들이 많았었는데, 사람에 쫒겨 부랴부랴 내려온 것 많이 아쉬웠다.

최대한 다른 사람이 안 걸리게 찍은 다도해 모습. 하늘과 바다를 섬이 경계짓고 있다. 흐린 날씨가 슬펐던 날.

  향일암에서 나올 때는 다행스럽게도 버스가 마지막 정류소까지 와 있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여수로 가는 길에 돌산공원에 들러보기로 했다. 어제 본 여수항의 풍경이 아쉬워서 여수항 정면에 있는 돌산공원에서 다시 한 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겨우 앉았던 자리는 이윽고 탄 어르신에게 양보해드리고,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찬이를 도촬하면서 향일암을 뒤로 했다.

버스가, 버스가!

  이번에도 버스가 문제를 일으켰다.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에 예민해져 있었는데, 버스 기사 분이 운전하면서 휴대전화로 통화를 해서 나를 자꾸 불안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버스의 속도계는 고장이 나서 분명 60킬로가 넘는 속도인데도 한결같이 20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지만 위압감 있는 외모와 전라도 사투리의 조합은 슬프게도 그냥 나를 짜져있게 만들었다. 뭐 도로에 차도 많이 없고 자주 다니는 길이니 괜찮겠지 하며 슬퍼하는 스스로를 설득시켰던 것 같다. 얼마 후 우리가 내려야 할 돌산공원이 다음 정류장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고, 전날 일도 있고 해서 힘껏 부저를 누르고 환승체크까지 하고 당당히 뒷문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기사 아저씨는 그냥 쌩까고 다음 정거장에서 탑승객을 태우기 위해 정차했을 때가 돼서야 뒷문을 열어 주웠다. 당황해하는 우리의 불평에 옆에 있던 여수 아저씨도 왜 여기서 멈추는 건지 모르겠다며 당황해 했고, 우리를 태운 채 돌산 대교를 건너기 전에 버스에서 내린 후 한 정거장을 뒤로 걸어가서 돌산 공원에 올라 갔다. 돌산 공원에서 바라 본 여수항 경치는 세계4대 미항까지는 아니지만 훌륭했고, 밤이 되어 조명이 켜지면 더욱 아름다울 것 같았다. 다음에 기회가 되어 다시 온다면 그때는 야경을 보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버스로 불편했던 마음을 여수항의 경치가 달래주는 기분이었다.

돌산공원에서 바라 본 여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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