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casting/우물쭈물 사는 이야기

날 웃음짓게 했던 순수한 욕망

파란선인장 2013. 3. 17.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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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오후였다. 이어폰을 꽂은 채 나의 갈 길만을 묵묵히 한눈팔지 않고 빠르게 걷고 있었다. 그렇게 공원에 들어설 때쯤이었다. 초등학교 1~2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내가 걸어오는 쪽을 향해 입을 뻥긋뻥긋거리고 있었다. 저맘때 애들이야 워낙 자기세상이 강해서 어른의 눈으로 봤을 때엔 이상하다 싶은 행동들도 많이 하니까, 한참 그럴 때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려고 했으나, 이윽고 그 아이의 눈이 정확하게 나를 쳐다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노랫소리가 생각보다 컸던 건지, 이 싸구려 이어폰이 의외로 방음이 잘 됐던 건지 그 아이가 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 이어폰을 빼야 했다.

  언제부턴가 늘 그랬다. 그다지 무서운 인상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나를 경계했다. 아니 나만이 아니라 항상 서로가 서로를 경계했다. 나에게 말을 거는 이 낯선 사람이 함께 ‘도’를 닦자며 귀찮게 굴지는 않을지, 어제 봤던 사건사고가 나에게, 혹은 내 아이에게 일어나지 않을까 경계하고 주의하는 행동과 시선들에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사람과 사람들. 특히나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도시에서는 어쩌면 필수불가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 역시도 어떤 때는 경계하는 자세로, 또 가끔은 잠재적인 범죄자로서의 경계의 눈빛을 받는 것에 익숙해진 채로 살아왔던 것이다.

  평소라면 이런 꼬마가, 그것도 여자아이가, 그것도 홀로 나에게 말을 걸 일 따위는 아예 발생가능성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 꼬마아이의 행동에 꽤나 당황했던 것 같다. 평화롭게 제 갈 길을 가던 나에게 일어난 이 돌발 상황에 꽤나 긴장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성인이 아닌가. 내 허리까지도 자라지 않은 이 꼬마 앞에서 긴장한 티를 내어서는 안 된다. 나는 차분히 이어폰을 빼며 담대하게 응답한다.

  “ㄴ..나?”

  이...이런.

  “이것 좀 까주세요”

  라며 꼬마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나 팔 법한 얄궂은 캐러멜스틱(?)같은 것을 내밀었다. 아, 고작 이걸 까먹기 위해서 바쁘게 걸어가던 이 어른을 멈춰 세운 것이냐. 하지만 난 군말 없이 그것을 고이 까서 다시 건네주었다. 그 아이가 고맙단 인사를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도 않는다. 정말 당황했던 건가. 아니, 아니야. 그 아이는 그런 인사를 할 겨를이 없었다. 포장지 사이로 나온 그 캐러멜을 입 속으로 가져가기 바빴어. 이건 내가 호구 잡힌게 '절대로' 아니야.

  생각해보면 그 ‘통통한’ 아이는 그 나름대로 초조했던 것 같다. 문방구에서 좋다고 샀는데 깔 수가 없으니 얼마나 다급했을까.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을 앞에 두고 터덜터덜 집으로 가고 있을 때 운명처럼 저쪽에서 걸어오는, 게다가 만만해 보이는 성인 한 명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온전히 입 속으로 가져갈 수 있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말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그 순수한 식욕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심지어 그 아이의 건강을 염려하기도 했다. 호구 잡힌 거면 어떠냐. 이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날 이용하렴. 어른은 그러라고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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