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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여행?-2

파란선인장 2011. 12. 19.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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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망대에서의 일몰

그날의 일몰 시각은 17 22. 처음에 했던 걱정과 달리 우리는 30분 정도 일찍 전망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에 다시 일몰을 보러 가게 된다면 일몰시각에서 30분 이른 시각을 목표시각으로 잡고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제때에 도착했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서쪽 하늘에서 해지는 주변부터 서서히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하늘이 온전히 걷힌 건 아니었지만, 일몰을 감상하기에는 무리 없을 정도는 되었다. 오히려 완전히 맑은 하늘에서보다 구름이 좀 있으므로 해서 더 멋진 일몰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의 간절한 바램이 닿은 것일까. 이제까지 걱정했던 마음은 햇빛에 타들어 가듯이 사라졌고, 아름다운 경치 앞에서 한없이 기쁘고 신나고 감동스럽고 감개무량하고, 그랬다.

  북서쪽으로 남도의 산들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었고, 남쪽으로 남해의 바다가 푸르게 펼쳐져 있었다. 완만한 능선 뒤로 지는 해와 그 빛에 염색되듯이 붉어가는 하늘과 섬을 이루고 있는 갈대밭.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곳이 왜 평일에도 적지 않은 관광객이 찾는 곳인지 알 만했다.


구름이 없는건 아니지만 많이 걷혔다.구름이 있어서 더 아름다웠다고 합리화.


  전망대는 2층으로 되어있는데, 처음 도착하는 곳이 2층이고 계단으로 1층으로 내려갈 수 있다. 1층은 2층에 비해 시야가 좁지만 좀더 가까이에서 경치를 보는 느낌을 주었다. 2층에 비해 1층이 좋은 점은 갈대밭과 새들을 관찰할 수 있도록 설치된 쌍안경에 있다. 내가 이 쌍안경에 감동을 받은 것은 무려 500원을 넣지 않아도 된다는 것. 우리는 그 동안 많은 관광지에서 500원을 넣어야만 보이는 쌍안경에 얼마나 많이 고민을 해 왔던가. 막상 보면 볼 것이 없음에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가. 여기서는 그런 부담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쌍안경을 설치해 놔 보는 이들로 하여금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만 1댄가 2대밖에 없어 사람이 많으면 오히려 보기 힘들 것 같았다. 우리는 평일에 와서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다. 물가에서 쉬고 있는 무려 천연기념물이라는 흑두루미도 봤고, 주둥이가 긴 이름 모를 새도 보았다. 일몰과 주변 경관을 충분히 즐긴 후, 고픈 배를 찬의 바나나로 달래고 하산했다
.

해는 정확히 17 22분에 졌고, 그 때서야 몇몇 젊은이들이 헐떡이며 전망대에 도착하고 있었다.

 

갈대밭이 산호섬 같다.


 

아름다웠던 일몰.

 

 

저녁 식사

용산에서 내려와 다시 갈대밭에 도착했을 때는 상당히 어두워져 있었다. 밝을 때에 비해 새들의 소리가 더욱 많이 들렸다. 지나갈 때마다 자동으로 켜지는 가로등을 신기해하며 그곳을 나왔다. 자연생태관을 구경할 수도 있었지만, 딱히 흥미롭지 않았고 배가 고픈 게 더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바로 번화가로 나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순천대학교가 있길래 대학교 앞에 가면 먹을 만한 곳이 많지 않을까 싶어 그리로 가려고 했으나, 스마트 폰을 사용한 검색결과 중앙시장 쪽이 더 번화가라고 해서 거기로 이동하기로 했다.

중앙시장에 도착해서 근처의 맛집을 검색해 보았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그냥 그 중에서 조금이라도 추천수가 많은 곳을 가기로 했고, 순천시청 근처에 있는 금빈회관이라는 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 동안 매체의 영향으로 전라도 하면 음식이요, 또 그 푸짐함이 대단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있었다. 역시나 대략 20가지의 기본 반찬이 나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메뉴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한우 떡갈비 정식이었고, 나머지가 돼지 떡갈비 정식이었다. 한우가 20000, 돼지가 12000원이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움츠러들려는 몸을 붙들며 여기까지 와서 이 정도는 먹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서 돼지 떡갈비 정식 2인분을 주문했다. 다시 나가서 다른 가게 찾는 것도 의미 없을 것 같았다. 떡갈비는 2인분을 합쳐서 한 덩어리로 나오는데, 처음에 볼 때와는 다르게 먹고 나면 배부를 정도는 되었다. 게다가 밑반찬도 많았고, 우리는 이미 충분히 허기져 있어서 맛있게 먹었다. 12000원이 아깝지 않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 가격만큼의 맛은 있었다

사실 엄청 맛있게 먹었다.



 
일단 배가 부르니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오늘 하루는 뭔가 잘 풀렸었다. 비도 오지 않았고, 그래도 구름이 조금 걷혀 아름다운 일몰도 볼 수 있었다. 저녁도 맛있게 잘 먹었다. 이 정도면 꽤 성공적인 하루였다. 그래 그랬었다. 딱 그때까지는 행복했고 그때까진모든 게 잘 풀렸었다.

스마트하지 못한 스마트함

송광사로 이동해 근처에서 숙소를 잡아 오늘 밤을 지내는 것이 우리의 다음 계획이었다. 정류장에서 송광사를 간다는 111번 버스를 기다렸다. 혹시나 차가 끊기지 않았을까 해서 인터넷으로 어떻게 해서 순천 시내 버스 시간표를 찾아서 봤다. 뭔가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막차가 22시 넘게까지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때 시각이 20시 조금 넘었을 때여서 우리는 별 걱정없이 어서 111번이 와서 이 추운 곳에서 얼른 벗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다림의 끝에 드디어 버스는 도착했고, 찬이 먼저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르며 찬이 확인 차 기사아저씨께 송광사 가는 거 맞냐고 물었고 아저씨는 단호히 아니라고 하셨다. 송광사행 버스는 7 15분 차가 막차라고.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우리는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송광사로 가서 방을 잡아 하룻밤 자고 아침에 근처에서 산채정식 먹고, 송광사 구경하고 조계산 산행하고, 보리밥집에서 점심 먹고, 선암사에 도착해서 선암사 구경하고, 시간 맞춰 기차 타고 귀가하기. 이것이 남은 우리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송광사에 가는 버스가 끊긴 것이다. 순천 시내에서 숙박을 하고 아침에 송광사로 이동할 것인지, 선암사로 이동해서 선암사에서 하루 묵고 내일 아침에 송광사로 이동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을 했다. 시내에서 자는 건 모텔에서 자야 한다는 점과, 아침에 과연 우리가 부지런히 송광사로 갈 것인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아서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선암사행을 좀더 원했는데, 순천역에서 받은 관광안내서에서 선암사 주변의 숙박시설 중에 한옥 체험관을 있는 것을 보고 거기서 자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도 그러한 마음을 더 강하게 하는 이유였다.

그래서 선암사행 버스를 기다려보고 선암사 가는 버스도 끊긴 거면 그냥 시내에서 자기로 했다. 우리는 추웠고, 피곤했다. 야자를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온 여고생들의 걸쭉한 대화를 듣고 있어야 했다. 우리는 이렇게 기다리면서 뭔가를 했어야 했다. 내가 자고 싶어한 그 한옥 체험관에 전화를 걸어서 방은 있는지, 위치가 어디쯤인지 등을 물어봤어야 했다.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대충 검색해보고 아 뭐 선암사에만 가면 뭐 있겠지, 선암사 앞에 숙박시설 많다는데 설마 우리가 잘 방 한 칸 없을까하는 심정으로 그냥 버스만 기다렸던 것이다.

다행인지 선암사 가는 버스는 아직 남아있었고 얼마 후 우리는 선암사 주차장에 조난당한 것처럼 우두커니 서있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


  선암사에 도착했을 때가 9시쯤. 우리는 시간 개념을 너무 우리의 주관적으로 생각했었다. 9시면 이른 시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잠들 정도로 늦은 시간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선암사 주변의 숙박업소에서는 그런 시간이었던 가 보다. 캄캄한 공간에 대책없이 떨궈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공간을 물소리 메우고 있었다. 그제서야 전화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어이없어 했다. 미리 전화나 해 볼 껄. 춥고 잠와서 그냥 왔더니 조난 당하게 생겼다. 스마트 폰으로 검색은 할 줄 알았지만, 정작 본연의 기능을 간과해버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불빛을 찾아 날아드는 나방처럼 우리는 딱 한군데 불이 켜진 여관을 발견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런데 그 여관의 마당에 들어서던 순간 어디선가 흰 개 한 마리가 부스스 일어나더니 우리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개를 무서워하지 않는 편이라 처음엔 아무렇지 않았다. 특히 저렇게 풀어놓고 기르는 개라면 웬만하면 물지 않는 걸 아니까. 하지만 개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렇게 어두운 밤에 인적없는 이 곳에 낯선 성인 남성 두 명이 자신의 주인의 영역에 다가오는 것은 웬만한 상황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안심하기에는 애매했던 것이, 이 개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면서 우리쪽을 바라보며 짖고 있었다는 것이다. 개가 또 컸다. 어떻게 하다보니 찬과 나 사이에 거리가 생겼고[각주:1], 개는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여전히 짖고 있었고, 나는 섣불리 움질일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자 찬은 개가 우리를 보고 짖는 게 아닌 것 같다고, 뒤에 산을 보고 짖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시선이 나에게서 약간 벗어나 있었다. 다가와도 나에게는 어떤 경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개가 또 착하게 생겼다. 그랬구나, 우릴 보고 꼬리를 흔든 것이고, 우리 뒤의 어떤 것을 보고 짖고 있었던 것이구나. 뒤를 봤지만 어두워서 인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더 무서워...

  어쨌든 우리는 숙소를 잡았고 씻고 잠을 잘 수 있었다. 유스호스텔 같은 곳이였는데 그것보다는 훨씬 허름했다. 그래도 나름 보일러도 들어와 뜨거운 물에 씻고 따뜻한 바닥에서 뜨시게 잘 수는 있었다. 물론 뜨거운 물이란 것이 완전 뜨거운 건 아니었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중간중간에 찬물이 나오는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물이었다. 신기하게 미지근한 물이 나오질 않고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섞이지 않고 빠른 속도로 번갈아나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외풍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어서 자다보니 등에선 땀이 나는데 콧구멍으로 찬 공기가 드나들고 있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우리는 첫날밤을 보내게 되었다.


로모로 찍은 순천만 일몰.

  1. 사실 움직이면 물까봐 엉거주춤하는 사이 찬은 저만치 걸어가 버렸던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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