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떠나보니 나를 알겠더라 - 4.성류굴

2009.02.23 23:34

   죽어야 산다

 급하게 성류굴 매표소에 전화를 했다. 월송정에서 너무 오래있어서, 자칫 오늘안에 성류굴 관광은 힘들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입장이 가능한지 물어봤다. 다행히도 5시까지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도착하기까진 충분했다. 우린 언제나처럼 60Km 정속으로 달리는 친환경 경제 드라이빙으로 성류굴로 향했다.

 비수기라 그런지 관광지는 늘 한산했다. 겨울이라 풍광이 아름답진 않지만, 사람이 한산하다는 것은 좀 더 온전하게 그곳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니까. 아릅답진 않아도 나름 분위기있는 경치였기에 기분은 좋았다. 게다가 동굴탐사. 티비에서는 종종 볼 수 있었지만, 실제로 동굴에 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화면속의 종유석들은 정말 아름답고 신비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동굴탐사는 남자들의 로망! 남자라면 누구나 어릴 때부터 미지의 동굴을 탐험하는 모험을 하길 꿈꾸지 않았던가. 신비롭고도 흥미진진한 동굴탐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보고 움찔한 우리.



 3000원씩의 입장료를 내고 표를 샀다. 입장은 5시까지이고, 나오는 시간은 딱히 제한이 없단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시간에 쫓겨서 부랴부랴 동굴탐험을 끝내지 않아도 되니까. 동굴입구에 검표소가 있었다. 한 쪽 벽에 헬멧도 있었다. 동굴 입구에 서니 설레였다. 한편으론 군대있을 때 가봤던 제2땅굴 생각도 났다. 

가슴떨리는 동굴탐험 시작!



 순간적으로 좀 어두웠으나 이내 동굴속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미끌거리고 반짝일거라 생각했던 예상과는 달리 종유석은 거칠고 메말라있었다. 하긴 그냥 돌이니까. 어쩌면 전국적인 가뭄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곳곳에 조명을 밝혀서 동굴내부는 그리 어둡진 않았지만, 로모카메라로 정상적인 사진을 찍을 정도의 밝기는 아니었다. 기괴하게 생긴 종유석들이 높디높은 천장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그 뾰족한 끝을 겨누고 있었다. 습하고 약간 더워서 마치 목욕탕에 들어온 것 같았다. 

 입구에서 조금 걸어가니 다리가 나왔다. 다리 아래로는 물이 고여있었다. 그 물을 쳐다보고는 오금이 저리고 말았다. 물 속으로 수십미터나 아래에 있을 바닥에서 종유석이 솟아오른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동안 그 모습에 놀랐지만, 이내 살펴보니 동굴 천장이 비친 모습이었다. 나만 놀란 건 아니었다. 놀란 가슴은 쓸어내렸지만, 나올 때 다시봐도 여전했다. 그 깊고 검은 물.

동굴 입구 즈음에서. 노출이 적어서 로모로 사진을 찍기엔 내 몸이 너무 흥분되어있었다. 널따란 아량을.



 하지만 우린 신이 났다. 안전은 보장되어 있고, 통로엔 난간과 조명도 있었지만, 우린 정말 모험을 하는 듯 약간 들떠 있었다. 여기저기서 기념촬영을 해댔고, 때론 계단을 오르고, 때론 앉아서 통과하면서 우린 모험을 즐겼다. 마치 해처리에 들어온 저글링 마냥 끽끽끽 거리며 돌아다녔다. 불현듯 얼마전에 봤던 절친노트가 생각이 났다.

 "야, 여기 절친노트에 나왔던 곳 아니가?"
 "원더걸스 나왔을 때?"
 "엇, 그런가?"
 "우왕!"
 "그럼 우리가 지금 소희랑 유빈의 체취가 남아있는 곳을 지나고 있는거란 말이가!"


<그나마 건질만한 종유석 사진들>


 확인도 되지 않은 사실에 우린 원숭이처럼 오덕거리며 흥분했다. 이내 티비에서 본 장소와 다르다고 누군가 말했고, 이내 흥분은 사라졌다. 습자지 귀를 가진 우리. 흥분은 사라졌어도 신나긴 했다. 성류굴은 각각 이름이 붙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종유석중에 특이한 모양을 한 돌에는 그에 맞는 이름도 붙어져 있었다. 용도 있었고, 부처형상, 성모마리아형상, 커튼, 폭포, 둘리 등과 같은 모양을 본떠 지은 이름과 로마의 휴일과 같이 왜 그런 이름이 붙어있는지 알 수 없는 돌들도 있었다. 가끔은 어이없고 때론 재미있는 이름의 돌들을 보다가 종유석하나가 우리 눈에 띄었다. 환한 조명이 그 돌을 밝히고 있었지만, 이름은 없었다.

 "어, 이건 왜 이름이 안 붙어져있지?"
 "떨어졌나?"
 "이름 붙이기 난해했나?"
 "헛, 잠깐. 이...이것은....그것?!!"
 "히익!"

 각 구역의 이름이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저승길 테마였다. 이를테면 죽음과 재탄생을 동굴탐험에 대입시켜 이름을 붙여놨었다. 그래서 성류굴에 들어오면서 우린 죽음을 경험하고 그 끝에 이르러고나면 재탄생의 길로 들어서게 되어 있었다. 어쩌면 유치할 수도 있는 이 구성이 그래도 조금의 사색을 불러일으키긴 했다. 하긴 모든 것이 소멸되어서야 다시 태어날 수 있는게 아닐까. 태어남이 있으면 사라짐이 있고, 소멸되는 것이 있어야 다시 소생할 수 있을테니까. 너무나 당연한 역설. 끝나야 시작되고, 헤어져야 만나고, 죽어야 산다. 멀리 출구의 빛이 보였다. 이제 다시 태어날 때가 된건가.

출구. 저것이 환생의 빛?! - 생각보단 잘 나오지 못해 아쉬운 사진이다.



 "씨발."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게 다시 태어난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원이 혀를 찼다. 저새낀 나오자마자 욕하노. 사실 그냥 나가려다 돌아와 사진찍고 나와서 약간 뻘쭘한 것도 한가지 이유였다. 난 아직 그런게 부끄럽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해서 또 그랬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재탄생되어야 할 인간이고 지금이 딱 그럴 시기다. 어쩌면 '아자'라든지, '오예' 등의 긍정적인 감탄사를 내뱉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내뱉은 그 '씨발'은 엿같은 세상에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또 동시에 그런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가기 위한 구호로는 '아자'라든지 '오예' 등은 너무나 만화같아서 가장 적당한 말을 찾다보니 '씨발'이었다고 하면 너무 번지르르한 변명일까.


 동굴을 나와서 사진을 찍고 석양을 구경하고 강에 있는 오리 네 마리를 본 후, 숙소를 정하기 위해 차를 탔다.


여행의 첫 날이 끝나가고 있다.




성류굴
주소 경북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산 30
설명 선유산에 위치한 천연석회암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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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기록하다보니 욕설이 난무하는 포스팅이 되어버렸습니다. 부디 사실감과 현장감을 드높이기 위해 그랬다고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제가 이랬다고 리플에다가 욕설다는 분은 안계시길. 덧붙이는 글을 쓰자면 동굴을 다보고 나오니 무척 배가 고프더군요. 임진왜란때 왜놈들을 피해 성류굴로 피난한 마을 주민 500여명을 왜놈들이 입구를 돌로 막아서 굶어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내려 오더군요. 믿기 힘드시겠지만 그때 전, 원의 등에 붙어있는 굶주린 500여명을 봤습니다.ㅋㅋ

Comments

  1. 데자뷰 2009.02.24 14:50

    이상하게 배가 고프더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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