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책

『눈뜬 자들의 도시』- 눈뜬 시민들과 눈먼 정치인들의 이야기

파란선인장 2009. 1. 1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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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눈먼 자들의 도시』를 먼저 읽고 싶었다. 영화로 개봉이 된 탓인지, 현재 베스트셀러인 그 책은 빌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근데 반납된 책들 속에 『눈뜬 자들의 도시』가 있었고, 어차피 읽어 볼꺼다 싶어서 냉큼 빌려왔다. 빌려놓고 혹시나 대출 예약해놓은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을 수 있을까 기다린다고 대출해 놓은 책은 읽지 않고 있었다. 이내 헛된 기대라는 걸 깨닫고 반납일이 임박한 그 『눈뜬 자들의 도시』를 미친듯이 읽기 시작했다. 사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먼저 읽고 『눈뜬 자들의 도시』를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것 같다. 물론 다 읽고 난 지금은 뭐, 꼭 그럴필요까지야 없다고 생각하지만.(작가도 『눈뜬 자들의 도시』가 『눈먼 자들의 도시』의 후속편은 아니라고 했다.) 혹시나 나와같은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언급해본다.

눈뜬 자들의 도시-사진 출처:알라딘


 이야기는 모두가 눈이 멀었던 그때로부터 4년이 지난 후부터 시작이 된다.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 선거일에 사건이 터진다. 그 전국적인 투표에서 그 나라의 수도의 투표결과가 놀랄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기권이나 무효표는 한 표도 나오지 않은 그 선거에서 백지투표가 전체의 70%가 넘었기 때문이다. 이 백지투표 사건에 대해 정치인(정부 혹은 내각)들의 대응이 소설을 진행시킨다.

 첫 번째 선거에서 70%를 기록한 백지투표는 두 번째 선거에서 83%를 기록한다. 이를 두고 권력의 중심에 있는 정치인들(소설속에서는 총리를 비롯한 여러 장관들)은 국가체제를 무너뜨리는 전복행위이며, 신성한 대의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어떤 불순한 단체의 행위라고 생각하고 그 배후세력을 찾아내서 없애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이키려고 여러 방안을 내지만, 그 궁극적인 이유를 보려고 하지 않은체, 자신들의 권력과 위치를 유지시키려는 입장에서 낸 방안들은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대충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 소설에서 받은 첫 인상은 일단 문체가 특이하고 재미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만연체라고 할 수 있는 이 문체는 독자로 하여금 쉼표(혹은 반점',')와 마침표(혹은 온점'.')를 섬세하게 구별하도록 만든다. 어떻게 보면 참 편하게(타이핑이나 직접 손으로 쓰기에) 적었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예를 들자면 보통의 소설에서 '철수가 웃으며 말했다. "웃기고 있네." 그러고 곧 떠났다.'라고 표현을 한다면 이 소설에서는 '철수가 웃으며 말했다, 웃기고 있네, 이제 가야겠다, 내일보자, 내일은 웃겨라, 그러고는 떠났다.'라고 표현한다고 해야하나? 이해가 잘 안된다면 책을 읽어보시길. 나도 내가 답답하다.
 그리고 이런 특징외에 또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작가 혹은 서술자의 등장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마치 판소리 사설에서 처럼 이 서술자(혹은 작가)는 자주 자신의 존재를 나타낸다. 근데 이런 설정이 작품 몰입에 방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판소리에서 처럼 대상에 대한 풍자의 맛을 더 깊게 해준다. 물론 정서상의 어느 정도의 간격(외국 정서와 우리나라 정서)은 있지만, 크게 방해되거나 이해를 못할 정도는 아니다. 대충 책을 펼쳐서 나오는 부분중에서 이런 예시를 찾아 적어본다.

  이렇게 해서 내무부장관과 시당 대표 사이의 이런 계몽적이고 가시 돋힌 대화는 끝이 났다. 두 사람은 서로 관점, 논점,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이 때문에 아마 독자는 혼란을 느낄 것이다. 이제 독자는 이 두 대화자가 실제로 자신이 생각하던 대로 우익정당 소속인지 의심을 할 것이다. ……   물론 진실을 말해야 하니까, 설사 그런 고문이 자행되었다 해도 우리가 그것을 보지는 못했다는 점은 이야기해야겠다. 우리는 그 현장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큰 의미가 없는 말이다. 우리는 홍해가 갈라질 때도 그 자리에 없었지만 모두가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맹세를 하지 않는가.
 이처럼 작가 혹은 서술자는 작품밖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고(마치 판소리에서 소리꾼이 청중에게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직접 말하듯이) 독자의 존재를 작품속으로 끌어오고 있는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1922년 포르투갈 생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진짜 재밌었던 부분은 작품속의 상황이 이상하게도 현실적이었다는 것이다.(작가소개에는 작가가 환상적 리얼리즘을 보여준다고 했음에도!!) 
 
 먼저 정치인들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지적과 조롱이 일단 와닿는다. 작품속에서 정치인들은 회의를 할 때마다, 아니 대화를 할 때마다 '언어'에 유달리 집착을 한다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부분중에 대국민 발표에 '선구자'를 쓸 것인지 '선봉대'를 쓸 것인지 하는 것으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장면도 있었고, '수중에서 쏜 어뢰'가 현 상황을 적절하게 비유한것이냐 아니냐에 대한 회의도 한다. 즉 사건의 본질을 보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가르키는 언어에만 집착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려 하는 태도에 대해 작가는 적절한 썩소를 날려주고 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나. 정치인들이 하루가 다르게 티비에 나와 '아'다르고 '어'다르다는 식으로 똑같은 말들을 하거나, 사건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전혀 엉뚱한 말들을 내뱉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말이다.
 이것은 '백지투표'라는 (그들에 의하면 국가 전복세력이 국가체제에 발사한 어뢰인) 사상초유의 사건을 해결하려는 방법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진지한 반성없이, 오로지 그것을 무마시키고 원상복귀시키려고 회의를 하고 대책을 세워서 실현에 옮긴다. 평화적인 시민들을 폭도세력으로 규정해서 군과 경찰을 동원해서 제압하려하고 외부와 고립시킨다. 그리고 평화로운 '백색의 시위'도 언론을 동원해 폭력으로 점철된 시위로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백지투표를 지휘한 배후 세력, 그들의 말로는 촌충의 머리,을 찾기위해 혈안이 된다.
 이거 왠지 익숙하지 않나? 이 책이 2007년에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놀랄만치 우리가 작년 2008년에 겪었던 일들을 책속에서 만날 수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찌나 놀라고 신기했던지. 괜히 세계적인 작가가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재미도 있으면서 통쾌하지만 뭔가 씁쓸하기도 했다. 충격적인? 결말때문이기도 하지만 도저히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현실과의 일치가 더 찝찝한 기분을 만들었다. 소설속 모습과 다르지 않은 현실의 모습들, 특히나 정치인들의 모습. 머나먼 포르투칼의 작가가 어쩌면 이렇게 우리나라의 현실을 꼬집는 소설을 썼을까. 뭐 정치인들은 국적을 초월해서 다 거기서 거기구나 라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환상적 리얼리즘 소설이 아닌가.
 또 대의민주주의 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소설이다. 저번 대선때부터 개인적으로 이 대의민주주의제도에 약간의 회의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 소설이 통쾌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나를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꼴통분들은 안 계시길.) 뽑자니 다 똑같고, 안 뽑는 건 또 안되고... 우리도 확 백지투표나 해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정치인들 정신좀 차릴수만 있다면.

 우리나라 정치인들, 특히 여당과 정부관계자분들은 꼭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읽어보고 눈을 좀 떠서 뭘 잘못했는지 반성하고 진정 국민을 위해서 뭘 할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나라를 이끌어 가주길 바란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권하고 싶다. 제발 국민 탓하기전에 먼저 왜 이런일이 일어났는지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좀 하시길 바란다. 왜 촛불집회가 일어났고, 왜 미네르바의 글에 환호했는지 말이다. 


 하긴, 보고 책 속의 정치인들의 모습을 따라나 안 하면 다행일지도. 뭐, 권력에 눈이나 뜰려나.



덧1.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는 배경도 같고 등장인물도 같다. 하지만 작가의 말대로 후속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전하고자 하는 주제가 다르다.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 말하는 내용과 주제를 더 극대화 하기위해서 『눈먼 자들의 도시』의 설정을 가져왔다고 보는 게 좋다. 그래서 혹시나 『눈뜬 자들의 도시』를 먼저 읽으시려는 분들은 『눈먼 자들의 도시』의 주요 설정이라도 인지하고 읽는게 훨씬 재미를 돋워줄 것이다. 좀 더 도움이 될듯해서 작가와의 인터뷰를 찾아서 링크를 건다. 클릭

덧2. 이 개 짓는 소리로 시작해서 개 짖는 소리가 싫다는 소리로 끝나는 소설은 사실 책 뒷면에 적혀있는 '권력의 우매함과 잔인함을 풍자한 블랙유머의 역작'이라는 말이 이 작품의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고 보면 된다. 거기에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모습이 너무나 똑같이 겹쳐져 거기에 초점을 두고 써봤다.


<알라딘>
눈뜬 자들의 도시 - 10점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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