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책

황석영의 『심청』을 읽고 - '모성'이 필요한 시대

파란선인장 2008. 12. 2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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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짓이 없어서 도서관에 갔었다. 책 몇 권을 빌리려,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작성하고 찾아봤지만 게으른 나에게는 인기있는 책들은 허락되지 않았다. 황석영님의 책들을 빌리고자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심청'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고, 대출을 했다. '심청전'이라는 유명한 고전에 바탕을 둔 현대소설이라는 점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기도 했고, 어렴풋이 '야하다'라고 들은 기억도 선택에 일조했다고 하면 좀 더 솔직한 이유라 할 수 있겠다.-_-;;;;; 

  결론부터 말하자면 '심청'은 야한 소설이 아니다.(그렇다고 실망한건 아니다;;) 오히려 심청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이 소설을 읽을 수록 더 커져갔다. 물론 작가가 말한 것처럼 '동양의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매춘 오디세이아'이기에 야한 장면이 없진 않지만, 거기서 그친다면 소설을 온전히 읽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야함'은 결국 한 여인의 고난이며 아픔이며 시련이었으며, 그로 인해 우리는 혼란과 고통속에서 살아가는 힘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과정의 중심이었다. 
 
『심청』은 2003년에 출판된 소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심청전」의 '심청'이라는 인물과 19세기라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배경으로 '심청'이 겪는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심청'이라는 인물의 재해석은 물론이고 당시 동아시아 각국의 정황을 세세하게 서술하여 작품의 몰입도를 더 높였다.




1. '심청'의 재탄생
  「심청전」에서 '심청'은 효녀의 상징이었다. 판본마다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아비의 눈멂을 낫게하기위해 공양미 300석에 제 몸을 팔아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인물이다. 그리고 용궁을 거쳐 환생하여 왕비가 되고, 결국 아비인 심봉사는 눈을 뜨게 된다는 해피엔딩과 함께 '효'라는 교훈을 가장 극단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린 인물이다. 

  하지만 『심청』에서 '심청'은 그런 '효'와는 전혀 무관하다. 그렇다고 불효를 저지르고 다닌다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런 관념과는 상관이 없이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 팔려가게 된다. 그리고 계속되는 '경제적'인 속박과 굴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강한 의지를 가진 인물이다. 물론 고난을 겪고 고귀한 신분에 오르게 되는 것은 「심청전」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틀일뿐, 『심청』에서의 '심청'은 작가의 손을 거쳐 태어난 새로운 인물인 것이다.

  '심청'은 15세에 중국으로 팔려나가 거부의 첩부터 시작해서 여성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밑바닥으로 흘러가 버린다. 여기에 심청의 의지는 없었다. 외부의 그 거대하고도 맹목적인 힘에 의해서 휩쓸려 갈 뿐이었다. 하지만 청이는 자신을 버리지 않고 그때 그때의 상황에 대처해나간다. 그 고난과 더러움에 물들어버리지 않고 자신의 주관과 의지를 지키며 그 모든것을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리듯 그렇게 보내버리고 만다. 그리고 결국에는 거기서 벗어나 고귀한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다.
 
  끝도 보이지 않는 그 밑바닥에서 고귀한 위치에까지 오르게되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모성'이었다. 대만의 '지룽'이라는 곳에 창녀로 팔려오며 알게된 '링링'의 딸을 맡으면서 부터 그는 차츰 '모성'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그 자신이 '남해관음'의 화신이어서일 수도 있고, 어렸을 적부터 여러 어머니들에게서 얻어 먹은 동냥젖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모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수양딸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아이들은 그 시대가 낳은 가장 약하면서도 소외된 창녀의 자식들, 특히 혼혈아들이었다. 그들은 혼혈, 창녀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버려지고 추방당하고 심할 경우에는 부모에 의해 죽게되는 일을 겪게 되었다. 그런 그들을 '모성'으로 안으면서 심청은 반복되는 구렁텅이에서 점차로 벗어나게 되고 그녀를 고귀한 신분에까지 올려놓게 되는 것이다. 




2. 19세기의 동아시아
  소설의 배경은 19세기의 동아시아이다. 중국의 '아편전쟁'에서부터 조선의 '제물포 개항', 그리고 '러일전쟁'까지 소설속에 그려져 있다. 이 시기의 동아시아는 말그대로 혼란기이다. 그것의 시작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가는 변동기에 필수적으로 따라올 수 밖에 없는 혼란이었다. 시장이 활발해지고, 도시가 생겨나며, 경제가 발달하기 시작하는 시대였다. 이전과는 다른 세계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고 그 속에서 여러 혼란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혼란속에서 심한 경우에는 심청이처럼 사람이 가격이 매겨져 팔려나가는 현상도 있었을 것이다. (작가의 말을 보면 자료를 수집하면서 황해의 황주지방 뿐만 아니라, 예산 당진 지역, 부안 무안 지역, 섬진강의 하동 광양 포구에서도 그 비슷한 설화가 남겨져 있었다고 하니, 그 당시에 중국으로 처녀가 팔려나가는 일들이 여러지역에서 꽤 있었는가 보다.) 이런 근대화는 우리나라보다는 중국이 더 빨랐는데, 서양과의 접촉이 활발해지면서 가속화된다. 이렇게 급속도로 이루어진 근대화는 곧 서양에 의한 '자본주의의 침투'로 동아시아 전반에 대한 약탈이 시작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약탈의 구조는 서양에서 동양, 남성에서 여성, 부자에서 빈자로 이루어져 있다. 즉 '강자가 약자를 약탈하는 구조'가 아무런 제재장치없이 횡행하게 된 것이다. 즉 스스로의 변화가 아닌 외부의 강제로 인해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며서 폐해에 대한 반성을 할 겨를도 없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심청은 중국에서 타이완, 싱가포르를 거쳐 류큐(지금의 오키나와)와 일본을 거쳐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면서 각 나라의 근대화 과정을 다 겪게 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맹주였던 중국의 몰락과정, 이미 상당부분 서구화된 싱가포르의 모습들과 여러지역을 잇는 중간 기착지로써 겪게 되는 타이완의 상황과, 류큐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사라지는 과정과 일본의 혼란한 상황까지를 심청을 통해 그 속에서 겪으며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또렷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우레소리처럼 스치듯 보여줄 뿐이다. 이것은 심청이 있는 집단-최하층의 입장에서 서술하려고 한 작가의 의도이다. 그런 역사적인 사건들이 그 사회의 가장 밑바닥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어떤 결과를 냈는지를 보여주려 한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조선으로 돌아온 심청이 고향의 절에서 자신의 위패를 찾아오는 장면이었다. 15세에 팔려 간  후 그 긴 여정을 거치고 돌아온 고향에서 자신의 위패를 찾는 장면은 비로소 심청이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심청은 중국에 팔려가는 순간부터 자신의 이름을 잃게 되는데, 중국에서는 '렌화'로, 싱가포르에서는 '로터스' 혹은 '제임스 댁'으로 일본에서는 렌화의 일본식 발음인 '렌카'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 시간들 속에서 '심청'이라는 이름은 자기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올 수 밖에 없는 자아혼란속에서 가면을 쓴 것처럼 다른 이름으로 살던 그가 고향의 절에서 자신의 위패를 찾게되고 거기에 새겨진 '심청'이라는 이름 역시도 같이 찾게 되는 것이다. 그 위패를 가져오는 것으로 자아의 완성이 이루어졌다고 해야하나? 이로 인해 그녀가 마지막에 '실컷 울고 난 사람의 웃음'을 지을 수 있었던게 아닐까 한다. 그 웃음은 진흙에서 자라나 수면위에서 핀 연꽃처럼 은은하면서도 맑은 아름다움이자, 초연함이라 하겠다.


  정리하자면 소설『심청』은 19세기라는 혼란기에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밑바닥에서 소외되고 상처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고통과 아픔을 심청을 통해서 그것을 어떻게 이겨 낼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근본적인 힘은 심청이 보여주었던 '모성'이며 이는 곧 '자비'이며 '자애'다. 소설속에서 나온 그 혼란들은 비단 19세기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그 본질은 현 시점에서도 유효한 것이기에 이 소설이 주는 감동과 깨달음은 크다고 하겠다.

 
 
심청(상)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황석영 (문학동네,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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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쓰기엔 너무 긴 글이었던 듯. 그렇다고 짧게 쓸 수도 없고. 다시 보니 못 쓴 이야기도 많고 이상한 내용도 많고. 진짜 부끄럽지만, 쓴 게 아깝고 고치기엔 엄두가 안나 그냥 이렇게 쓰게 되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이 글로 인해 많은 분들이 『심청』을 읽기를 바라며, 괜한 글로 『심청』에 피해를 입히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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