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봉준호 감독이 '미키17'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다 개봉 첫날 첫 상영에 관람했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주제의 무거움에 비해 그것을 다루는 표현 방식이 SF라는 장르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다소 가볍게 느껴졌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준호 감독 특유의 스타일은 여전히 매력적이며 미심쩍은 부분들이 존재해 과연 내 생각처럼 가볍게만 표현했을까라는 의문도 남아있다.
영화의 좋았던 점
-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메시지가 지닌 무게감과 진지함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육체의 재구성과 기억의 보존 및 이식 기술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나'라는 존재를 언제든 대체하거나 재생산할 수 있다면,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의 가치와 본질은 무엇인가? 이러한 깊은 철학적 질문들을 미키17을 통해 탐구하며 관객에게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렇게 인간의 존재의 정의부터 ‘나’라는 존재의 본질에까지 깊게, 진중하게 생각해보게 해주는 점, 그리고 그에 대한 어떤 실마리를 미키17을 통해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나 세상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주는 점, 그리고 봉준호 감독 특유의 개성있는 시각과 위트로 그 이야기를 다루고 풀어내는 부분은 여전히 만족스러웠다.
- 뛰어난 연기와 풍자
로버트 패틴슨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또한 영화 속 독재자 커플의 모습은 감독의 말에 따르면 온전히 우연이지만, 현실 정치 상황과 유사한 부분(우리 또는 미국)이 있어 날카로운 풍자로 느껴지며 통쾌함과 유쾌함을 선사한다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
- 사랑을 통한 정의
'나'는 어떻게 정의되는 걸까? 영화가 제시하는 첫 번째 답은 '사랑'이다. 봉준호 영화 최초(?)로 남녀의 사랑이 등장한다. '미키'를 사랑하는 '나샤'에 의해 미키의 존재 가치가 인정된다. '나샤'에 의해서 '미키'의 존재가 인정된다는 점은 두 사람의 관계 - '익스펜더블'인 '미키'와 최정예 요원인 '나샤'-가 영향을 줬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사회적 존재로서 누군가에 의해 존재의 의미가 규정되고 인정받는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특히 흥미로운 장면은 나샤가 미키17과 미키18의 존재를 인식했을 때 보인 반응이다. 누가 '진짜'인지 혼란스러워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미키'가 두 명이 된 것을 기뻐하는 것이었다. '나샤'의 이런 모습에서 '미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는 '나'를 '나'로 봐주는 타인에 의해 존재의 의미가 규정되는 것이 아닐까.
- 성장과 성숙
미키17은 16번의 죽음과 17번의 탄생을 경험한 존재다. 처음에는 단순한 '익스펜더블'로서의 역할이었지만, 반복된 죽음과 탄생을 통해 미키는 성장한다. 마치 16번의 윤회를 거친 존재처럼, 미키1은 이상한 마카롱 사업을 하다가 죽을 위기에 처해 ‘익스펜더블’에 자원해 현실에서 도망치는 찌질한 인물이었지만, 미키17은 (여전히 찌질한 면이 있지만)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고, '니플헤임'의 원주 생명체인 '크리퍼'와도 공존할 수 있는 성숙한 인물로 발전한다. 이러한 성장 과정을 생각해보면 거칠고 막무가내인 미키18이 모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행동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아쉬움과 의문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표현 방식이 다소 단순하고 명확하게 처리되어, 마치 뻔한 권선징악의 동화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제의 무게감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가볍게 처리했을 수도 있지만, 봉준호 감독에게 기대하는 복잡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또한 몇 가지 의문점도 남았다. '소스'에 집착하는 독재자의 부인 '일피'의 행동이나, 영화 마지막부에서 나타나는 '미키'의 섬뜩한 회상 장면도 그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소스’의 경우 그 기능을 생각해보면 음식의 본체에 뿌려서 맛을 돋우는 첨가물이다. 음식의 본체가 아니라 그것을 꾸며주는 ‘소스’에 집착한다는 것이 본질이 아닌 겉치장, 꾸며짐, 보여지는 부분의 화려함을 중시하는 면을 보여주고 그래서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보기 보다는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일피’의 특성을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닐까 짐작해볼 뿐이다. 본질이야 어떻든 겉으로 드러난 부분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거나 권위를 지켜준다면 살아있는 크리퍼의 꼬리도 갈아서 소스로 만들어버리는 행동도 어느정도 납득이 되고, 마지막부의 미키의 회상 장면에서 남편인 ‘케네스’를 프린팅하는 것도 그 의도와 목적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이 회상 장면도 결말의 이야기 흐름상 무언가 결이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미키17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미키18의 성격적인 부분을 받아들이면서 미키17이 아닌 온전한 미키 반스로 재탄생하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일단은 이해하고 있지만, 그러기엔 너무 생생한 느낌이라 또 다른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이를 테면 ‘호접지몽’)
전반적으로 봉준호라는 이름이 주는 기대치에 비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묵직한 주제를 SF 장르에 잘 녹여낸 봉준호만의 독특한 영화임은 분명하다. 존재의 본질과 인간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미키17'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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