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고래, 벨루가

  장어구이를 먹은 후 아쿠아 플라넷까지는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아쿠아 플라넷 관람 소요 시간이 1시간 40분쯤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택시를 타고 빨리 이동하는 것이 기차시간에도 여유가 있을 것 같았다. 여행 중에 웬만하면 택시는 안 타려고 했는데, 마지막이고 하니까 한 번 타자 싶었다. 근데 이걸 미리 탔어야 했다. 지나가는 길에 여수에 대해서 가이드를 해주셨는데, 그 때서야 비로서 여수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걸 어제 알았어야 했는데. 이미 끝난 일이어서 그냥 아쿠아 플라넷에나 빨리 도착하기를 바랐다. 어서 가서 다양한 물고기들과 티비에서 얼핏 봤던 하얀 고래를 보고 싶었다. 이전에는 한 번도 아쿠아리움을 가 본 적이 없어서 진짜 제일 기대했던 일정이었다. 생긴 건 세상 다 산 것 같지만 이래봬도 동물을 좋아하는 지라, 그 중에 돌고래나 고래를 좋아해서 실제로 그것들을 본다고 생각하니까 없던 동심이 발동하면서 설레기 시작했다. 데헷>_<ㅋㅋㅋ 하지만 여수 중앙로는 여기저기서 몰려 온 차와 버스로 꽉 막혀 있었고, 한참을 갇혀있다가 기사아저씨가 항구 쪽 길로 빠지면서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아쿠아 플라넷도 역시 많은 사람들로 꽉 들여 차 있었다. 1층 로비는 표를 구매하려는 사람들과 입장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매우 혼잡했다. 우리는 온라인으로 이미 입장권을 구매해 놨기 때문에 비교적 빠르게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2층은 조금 덜 했지만 역시나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본격적으로 전시실에 들어서자 이건 거의 물 반 사람 반. 우리가 동물들을 구경하는 건지 동물들이 우리를 구경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처음에는 시끄러웠지만, 익숙해지니까 백색소음화 되어서 크게 방해되지도 않았다. 다만 다정한 커플들과 화목한 가족들을 보면서 나와 찬은 조용히 눈물을 훔칠 뿐이었다.


한화 아쿠아플라넷 여수.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꼼짝없이 죽겠구나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인파에서 탈출 후. 그러나 다시 인파속으로...

뽀로로와는 다른 종류의 펭귄


  펭귄도 있었고 수달도 있었다. 물범도 있었고 상어도 있었고 대형 가오리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좋았던 것은 벨루가라는 흰 고래였다. 고래치고는 작은 몸집이어서 돌고래로 오해 받기도 한다는 벨루가는 앞이마가 툭 튀어 나와 영특해 보였다. 수족관 안에서 공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나도 모르게 한참을 보고 있었다. 북극해 주변에 사는 벨루가는 러시아어로 '하얗다'는 뜻으로, 어릴 때는 회색에 가깝지만 크면서 점점 하얘진다고 한다. 벨루가는 전용 공연장이 있는데, 운 좋게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우리가 때맞춰 도착해서 겨우 볼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사람이 많아서 휴대폰 화면으로 봐야했지만, 나중에는 점점 앞으로 나아가면서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훈련이 덜 돼서 전문적인 공연은 불가능했지만, 벨루가의 생태에 대한 설명과 함께 간단한 시범 정도는 볼 수 있었다. 조련사의 말에 고개를 흔들거나 사냥하는 방법을 시범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숨구멍으로 내는 고음의 휘파람 소리가 인상적이었는데, 즉석에서 남행열차를 불러줄 정도로 실력이 상당했다.[각주:1] 이런 특징 때문에 바다의 카나리아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공을 가지고 노는 귀염둥이 벨루가

까꿍!

빠르게 헤엄쳐 다니던 물범

튀겨먹으면 그렇게 맛있다는 피라냐. 하지만 피라냐 잡으려다 내가 잡힐 수 있다는 건 함정.

물고기의 사람구경

머리 위로 물고기들이 지나가, 마치 용궁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귀여운 벨루가의 모습을 보고 난 후 피라냐 먹이 시연이 있다고 해서 한껏 기대를 안고 찾아갔다. 소 한 마리를 한 시간이면 먹어 치운다는 피라냐의 모습을 실제로 보는가 해서 기대되었다. 적어도 생닭 한 마리는 넣을 줄 알았던 내가 너무 잔인했던 걸까. 하기 어린 아이들이 많았기에 내 기대에 미치는 모습은 애초에 바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명태 한 마리 넣자 피라냐가 떼로 몰려들어서 정작 명태는 살짝 본듯 만듯 그렇게 사라져갔다. 그리고 피라냐가 가장 좋아한다는 미꾸라지를 넣자, 빠른 속도로 달아나는 미꾸라지를 쫒아 가 먹는 모습은 조금 놀라웠다. 생긴 건 그냥 떼로 몰려서 뜯어먹는 것 밖에 못하게 생겼는데, 매우 재빠른 놈이었다. 그 밖에 상어도 실제로 봐서 좋았고, 커다란 유리 너머로 봤던 여러 물고기들의 모습과, 거대한 수족관 속으로 난 통로를 지나면서 머리 위로 나는 듯 헤엄쳐 가던 가오리도 기억에 남았다. 마지막으로 기념품 가게에서 벨루가 인형을 들고 한참을 살까 말까 하다가 여자친구가 없으므로 사지 않겠다고 울며 기차를 타러 갔다.


어쩌면 이젠 마지막 여행

   찬이가 버튼을 잘못 눌러 출입문 대신 화장실 문을 연 것을 빼면 무사히 기차에 탑승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는 특별히 S-Train으로 예매를 했었다. 이 열차는 관광열차로 식당칸은 물론 차를 마실 수 있는 곳도 있는 조금은 특별한 열차였다.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이 열차의 표를 샀는데, 정작 식당의 도시락은 동이 나 있었다. 배고픔에 허덕이던 찬은 어쩔 수 없이 핫바 하나와, 햇반에 김치참치였나 하는 것을 얹어서 덮밥처럼 데워 먹었고, 무식욕자였던 나는 그냥 핫바에 맥주로 저녁을 때웠다. 여행 기간 내내 이곳 저곳 찾아 다니고, 해당 정보를 찾고, 일정을 짠 다고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집에 가는 기차 안에서야 나누기 시작했다. 주로 이성에 관련된 문제였는데, 여행 내내 수 많은 커플들을 보면서, 그래 이건 훗날을 대비한 예행연습이야 라며 눈물의 합리화를 해왔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날이 올까……. 맥주가 썼다.

   연애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내가 연애를 할 수 있어도 안 하는 찬이에게 연애는 필요한 것이라고 설득하는 모습은 매우 웃겼지만, 그래도 찬이는 내 의견에 동조하며 귀 기울여 들어 주었다. 논리적으로 결함이 없는 나의 말에 연애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던 찬이도 결국에는 연애의 필요성에 동의하였고, 얼마 전 얘기가 나왔다는 소개팅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잘 되든 안 되든 무조건 만나라는 말에 알겠다고는 했지만 지금 당장 주선자에게 연락해서 날을 잡으라는 말에는 일단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 라고 했다. 나로서도 일단 한다고 했으니까 알겠다고 했다. 최근 들어 직장에서의 업무에 힘들어하고 삶에 활력을 잃어가는 찬이의 모습에 경험상 연애를 하는 것이 가장 나은 해결책이라 생각했다. 연애한 지도 엄청 오래된 이 아이의 연애는 나의 그것보다 훨씬 더 시급한 문제였다. 찬이의 연애에 성화인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음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이윽고 각자의 소개팅 경험담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찬이의 폰으로 까톡 메시지가 왔다. 다름 아닌 아까 말한 주선자가 다시 한 번 소개팅 문의를 한 것이다. 어제도 아니고 오늘, 왜 하필 지금 이 순간 소개팅 까톡이 온 것 인가! 주선자와 만났던 날 이후로 그 많은 시간 중에 왜 하필 지금 이 순간인가! 이건 니 말대로 하라는 거다! 해라! 당장! 한다고 해! 내일 만나자고 해! 당사자보다 내가 더 흥분해서 내가 답장 보낼 뻔. 찬이 성격에 어영부영 그냥 오케이 할 것 같아서 옆에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조금 거들었다. 이런 저런 코칭 덕분에 상대방이 총명한 눈을 가진 참한 여성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외모를 보긴 하지만 막 예쁜 얼굴보다는 볼수록 예뻐 보이는 얼굴이 좋고[각주:2], 그것보다는 성격이 더 중요하다는 찬이의 말에, 그래 그럼 일단 외모에 대한 기대치는 낮추자고 했다. 하지만 내가 눈이 총명하고 참하면 한지민이나 남상미인데… 라는 말에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기회에 찬이도 여자 친구가 생긴다면, 이제 어쩌면 친구끼리 가는 여행은 이게 마지막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제는 친구끼리 가는 것보다 애인이랑 여행 좀 가야지. 그리고 언젠가 가능하다면 각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같이 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 그런 날이 올까……. 시원 섭섭한 감정을 실은 채 기차는 애써 집으로 달려 가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S-Train. 새마을호를 관광열차로 개조한 것 같았다.





  1. 이 노래 부르는 장면은 동영상으로 찍어놨지만, 이런건 직접 가서 봐줘야하기 때문에 소장하기로 한다.ㅋㅋㅋ [본문으로]
  2. 어쨌든 예뻐야 함.ㅋㅋㅋ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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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데자뷰 2014.06.01 18:39

    그래서 찬이는 소개팅을 했는가 모르겠네 ㅎㅎ
    좋은 추억 가지고 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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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나랑 아니면 2014.06.02 01:49 신고

    잠시나마 너의 순수함을 옅볼 수 있었다ㅋ 벨루가를 처음 마주쳤을 때 니 모습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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