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탑승 후기-체제의 유지와 발전

2013.08.12 19:33

 

  지난주에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설국열차'를 보았다. 먼저 본 친구들에게서 '중간에 내리고 싶었다'라든가, '너무 많은 기대는 하지 마라'와 같은 경고를 받고 단단히 각오를 하고 봐서인지, 아니면 너무나 기다렸던 영화여서였는지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물론 권력층에 대한 최하층 대중의 반란과 SF액션이 더해진 영화를 기대하고 봤다면 중반 이후 루즈해지는 극의 긴장감과 예상과 다른 전개는 꽤나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호하게 여겨지는 결말도 불만스러울 수 있겠다. 하지만 묵직한 메시지와 함께 여러 가지의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점은 아주 만족스러웠으며, 송강호를 비롯한 틸다 스윈튼, 크리스 에반스 등 배우들의 연기 또한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리고 영화적 만듦새도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하의 글엔 영화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영화를 보시고 다시 읽어 주세요.


설국열차 (2013)

Snowpiercer 
7
감독
봉준호
출연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정보
SF, 액션, 드라마 | 한국, 미국, 프랑스 | 126 분 | 2013-08-01
글쓴이 평점  


Tilda-Swinton-in-Snowpiercer-2013-Movie-Image-2
Tilda-Swinton-in-Snowpiercer-2013-Movie-Image-2 by cine-asi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체제의 유지, 균형의 유지

  모든 것이 얼어붙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생존 가능한 열차라는 공간은 그 제한성으로 인해 균형의 유지가 상당히 강조된다. 공간과 자원은 한정되어있고, 열차의 시스템은 유지되어야 하고, 탑승객이 지불한 티켓에 맞는 대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차별과 희생이 필요하게 된다. 이 차별과 희생은 이 열차에 무임승차한 꼬리 칸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강요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그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합리화된다. 이는 이 열차를 만들었고 관리하는 열차의 지도자 윌포드의 논리로, 가장 성공적인 반란을 일으킨 커티스나 꼬리 칸의 성자라 불리는 길리엄도 반박하지 못한 것이다. 혁명의 마지막 순간에 그것을 반박하지 못한 것은 이들 모두가 열차 안에서의 생존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열차를 타기 위해 치렀던 희생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열차를 타기 전 인류는 어떠했나 생각해보면 윌 포드의 논리는 더욱 공고해진다. 오래 전부터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고는 있어왔지만 온난화는 갈수록 심해졌고 그에 따른 기상이변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몇 번의 실패 끝에 개발한 cw-7이라는 냉각제를 지구 상공에서 터트리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실패하게 됨으로써 인류는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온난화라는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한 시도가 빙하기라는 불균형을 일으킨 것이다. 이는 균형을 유지하며 생존하는 것이 얼마나 엄격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것인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인위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균형인가

  영화에서 열차의 탑승 인원의 구성을 보면, 꼬리 칸 사람들이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데 반해, 앞 쪽으로 전진하면 할수록 백인 이외의 인종은 찾을 수가 없다. 이는 빙하기 직전의 세계가 백인 중심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탑승권을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들 또한 이른 바 선진국의 부유한 백인들이었기에 그것이 열차 내에서의 계급에도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설국열차가 생존을 위해서 시스템의 유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달았다는 점에서 과거의 인류보다 조금 진보했다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과거 체계의 연장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열차의 부총리 '메이슨'의 수하 중에 유일한 동양인이 일본인이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산업혁명 이후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통해 전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된 서구 사회와 거기에 빠르게 편승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던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반란군에게 붙잡혔을 때 메이슨이 가차없이 그를 버리는 장면은 조금 통쾌하기도 했다.

  서구를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의 논리로 세계가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은 영화 초기에도 나오는데, 바로 cw-7의 살포를 승인한 국가의 수다. 설국열차 애니메이션에서 봤는지 영화에서 봤는지 확실치는 않은데, 이 cw-7의 살포는 많은 환경단체로부터 반대를 받았는데, 이것을 승인한 국가의 수가 79개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작년 런던올림픽 참가국만해도 205개국인데, 그의 반도 안 되는 79개국의 승인으로 문제의 냉각제가 살포되었다는 것은 그 결정에 전 인류의 이해가 있는 것이 아닌 주요 강국과 그들에 동조한 몇 개의 국가에 의해서 이런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승인한 2014년의 주요 강국은 여전히 앞서 말한 선진국들인 것은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애초에 온난화의 주요 원인이 산업혁명 이후 급증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고, 여기에 소위 경제 대국이라는 국가들이 크게 일조한 사실을 반추해보면 이 세계가 누구를 위해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너무도 자명하다. 애초에 봉준호 감독이 해외 유명 배우들을 섭외하고, 영화의 대부분이 영어 대사로 이루어진 것은 할리우드 진출을 목적을 한 것도 있겠지만, 위에서 말한 점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의도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

  열차의 체제는 교육을 통해 더욱 공고해진다. 교실 칸에 도착한 커티스 일행들은 윌포드의 일대기를 배우며 윌포드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윌포드에 대한 찬양과 숭배이고, 다른 하나는 열차의 체제에 대한 세뇌이다. 커티스가 도착한 때에 마침 시험에도 항상 나오고 가장 중요한 학습 포인트인 '얼어 죽은 7인'이 있는 지점을 지나게 되는데, 이를 통해 기차 밖으로 나가면 죽게 되고, 윌포드의 기차만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강조하고, 아이들이 열차의 체제를 맹신하게 만든다.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 체제를 부정하고 벗어나는 것 만큼 두려운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교육을 이용하는 것이다. 폭력을 통한 지배가 아닌 교육을 통해서 피지배 계층이 스스로 지배 계층의 논리를 받아 들이게 함으로써 더욱 단단하게 체제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이 장면을 통해 지배 계층의 논리가 교육을 통해 어떻게 재생산되고 유지되는지, 교육이 폭력보다 더욱 강한 지배 수단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교육 칸에서 벌어진 무차별적인 학살은 이념을 뒤엎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어 왔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각주:1]

  한편, 급수 칸 쟁탈을 앞두고 커티스 일행과 도끼를 든 진압요원이 대치하는 긴박한 장면에서 열차는 예카테리나 다리를 지나게 되는데, 이 때 엉뚱하게도 열차에 탄 이들은 'Happy New year'를 외친다. 열차에서 생존하는 이들에게 시간은 곧 각 궤도의 장소로 대치되어 있는 것이다. 앞으로 직진하는 열차는 실상 지구 상의 궤도를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뿐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진보보다는 체제와 균형의 유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윌포드에 호응하여 기차 또한 그렇게 정해진 궤도 위를 돌기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관리를 한다고 해도 모든 것이 유한한 상황 하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낡아갈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 체제의 유지와 보수는 어김없이 꼬리 칸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꼬리칸의 지도자 길리엄과 공모하여 급수 칸까지 혁명을 용인하고 대신에 꼬리 칸 인구의 74%를 제거한다거나, 이제는 수리할 수 없는 부품 대신에 그 공간에 맞는 아이를 쓴다든가 하는 방식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 체제가 유지되는 한 이런 희생은 계속 될 것이고 균형의 유지와 생존을 위해 당연시 될 것이다.


설국열차 운행도 (출처: 다음 영화 설국열차 포토 페이지)


결말의 희망-역사는 진보한다

  하지만 이런 윌포드의 체제가 아니었다면 그나마 남은 인류가 17년간 살아남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혹한의 지구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체제를 전복시키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혁명엔 기존 체제의 당위성을 뛰어넘는 새로운 비전이 있어야 한다. 기존의 틀 안에서 차별에 불만을 가지고 일으킨 반란은 그 틀의 당위성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 또 다른 희생을 만들어 내야 했기에 커티스의 반란엔 한계가 있다. 이 열차에서 체제에 대한 반란을 계획한 사람은 커티스 외에도 한 명 더 있다. 남궁민수의 반란은 커티스의 반란과 방향을 달리한다. 엔진룸을 향해 가는 길을 막고 있는 문을 열며 전진해온 커티스와 달리 남궁민수의 시각은 창 밖 세상을을 향해있다. 그의 딸 요나에게도 될 수 있는 한 창 밖을 보여주려고 하고, 농사 칸을 지날 때는 흙에 대해 설명해준다. 남궁민수는 틀 안에서의 반란보다는 틀 자체로부터의 탈출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커티스 일행의 문을 열어주는 대가로 착실히 크로놀을 모으고 환각에 찌든 사람들을 지나면서 모피 옷도 챙기며 자신의 계획을 준비한다. 엔진룸 앞에서 커티스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하지만 이들의 의사소통은 통역기를 통해서만 가능한 불완전한 것이었고, 결국 남궁민수는 커티스를 설득하는 일이 실패하게 된다.[각주:2] 영화에서 자세히 설명해주지는 않았지만, 남궁민수는 앞서 '7인의 반란'에 함께 가담했으나 보안 담당이라는 그의 역할 때문에 잡혀서 감옥에 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남궁민수로 대변되는 1세대들의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2세대라 할 수 있는 요나에게로 이어져 마침내 기존의 틀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7년이 지난 지구는 여전히 춥지만 더 이상 얼어 죽을 만큼은 아니었다. 눈은 녹고 있었고, 생명체도 존재했다. 폭발한 열차에서 살아 나와 눈밭에 발자국을 남긴 이들이 동양인 소녀 요나와 엔진룸에서 부품대신 일하던 흑인 꼬마 티미라는 것은 유독 감독의 의도가 진하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생존을 위해 체제의 유지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지켜져야 하겠지만, 거기에 조금이라도 부당한 점이 있다면 설사 그것이 체제를 무너뜨리는 일일지라도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나와 티미는 희망적이다. 요나와 티미는 그런 부당함을 보고 겪었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체제를 만드리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에서 요나는 투시력[각주:3]과 같은 능력이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 것은 닥쳐올 위기를 알아채거나 엔진룸에서 부품처럼 쓰이는 아이를 찾아낼 때 쓰였다. 이것은 아무것도 없는 설국이지만 요나가 이 능력으로 앞으로의 위기를 헤쳐나가고, 불의의 것들을 똑바로 바라 보고 고치며 좀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리라고 기대하게 해준다. 눈 밖에 없는 허허벌판에서 인류는 다시 한번 북극곰과 같은 맹수들의 위협에서부터 살아남아야 하지만, 이제까지의 인류가 그랬듯이 이들은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라 믿는다.


설국열차 포스터 -요나 (출처: 다음 영화 설국열차 포토 페이지)


  1. 학살 전 나누어줬던 달걀은 어떤 의미였을까. [본문으로]
  2. 영화에서 커티스에게 자기가 본 것을 말하려다 마는 장면이 있는데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새를 보았다'라고 말하려다 만 것이라고. [본문으로]
  3. 실제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청력이 뛰어난 것이라고 한다. 영화에서 이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으나 편집과정에서 삭제되었다고. [본문으로]

Comments

  1. BlogIcon Junhyeok 2013.08.14 00:39 신고

    영화 설정이 뭔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듯?

    perm. |  mod/del. |  reply.
    • BlogIcon 파란선인장 2013.08.14 09:55 신고

      그럼 시간날 때 양갱을 사들고 극장으로 가라.ㅋㅋ 만약에 혹시나 실망하더라도 보고 실망하는 게 낫지 않겠나.ㅎㅎ

What's on your mind?

댓글 입력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