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casting/우물쭈물 사는 이야기

사색적이었던 저녁산책이...

파란선인장 2010. 1. 17. 22:37
반응형
 해가 저물어 가는 것을 보며 나는 걸었다. 집 앞 작은 하천을 따라 난 자전거 도로에는 운동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근래의 매서웠던 날씨는 깊지 않은 하천을 얼려버렸고, 그 위에선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그럴싸한 썰매를 타고 얼음 위를 지치고 있었고, 그보다 좀 더 어린 애들은 함께 나온 부모가 끌어주고 있었다. 강물은 멈춘 채로 있었고, 나는 하류쪽으로 걸어갔다. 조깅을 하거나 걷는 사람들은 입김을 내며 지나갔고, 자전거들은 소리없이 나타나서 저멀리에서 작아지고 있었다. 그 뒤로 산책나온 강아지들이 뛰어 다녔다.

 저녁해에 사람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벌어진 입 안에서 햇빛은 멈추었고 다시 반사되었다. 다리 밑 어두운 한 구석에서 한 여자가 쪼그린채로 담배를 피고 있었다. 다리의 기둥엔 붉은 글씨로 '비정규직 철폐' ,'고용보장', '양극화 해소'와 같은 구호가 스프레이로 쓰여 있었다. 저녁 빛이 그물에 걸린 것처럼 담배 연기에 얽혀 있었다.

 하나의 길이 끝난 지점에서 다른 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길이 시작되는 강둑위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가 난 곳에서 정반대편으로 사라지는 해. 해는 그렇게 한 쪽에서 시작해서 반대쪽에서 마치고, 또 그 곳에서 반대쪽을 향하여 다시 솟을 것이다. 그렇게 해는 지구 반대편으로 저물어가며 또 새로 태어나 사람들의 얼굴을 물들이겠지.

 머리 위로 새들이 떼 지어 날아갔다. 저쪽 파란 하늘에서 이쪽의 붉은 하늘로 날아왔다. 하나 하나가 모여 다시 하나가 된 새들. 분명 하나 하나 다른 새들일텐데 지상에 서있는 나로썬 그 하나 하나를 구별할 수 없었다. 일사분란. 이런 저런 모양으로 바뀌며 흩어질 듯 하면서도 다시 제 모양을 갖추며 새들은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가 태양을 등지며 잠잘 곳을 찾고 있었다. 나도 나의 둥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렇게 걸으며 바람을 쐬니 머리가 상쾌해졌다. 하루 종일 찌뿌둥했던 몸도 개운해졌다. 오랜만에 여유를 가지며 이런저런 생각들도 할 수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며 나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대해 생각도 하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할 무렵, 갑자기 걷고 있는 내 허벅지를 누군가 잡는 것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웬 개가 내 다리를 잡고 날 보며 짖고 있었다.

 나를 공격하려는 걸까. 아니, 나를 왜? 난 그저 걷고 있었는데. 개의 표정을 보니까 나를 해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곧바로 주인이 왔고, 내 다리를 잡고 있는 개와 똑같이 생긴 다른 애완견도 와서 내 다리를 잡고 짖고 있었다. 개의 품종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큰 치와와 같았다. 그렇게 두 마리가 내 다리를 잡고 꼬리를 흔들며 짖고 있었다.

 아니, 얘들이 왜이러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당황한 주인 아주머니께서 개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뭐, 이런 적이 없다고 이런 일이 안 생긴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개가 그렇지 뭐. 담담한 나에 비해 아주머니가 더 놀랜것 처럼 보였다.

 죄송합니다. 많이 놀랐죠?
 네. 갑자기 뒤에서 제 다리를 잡아서.
 죄송합니다. 얘들이 원래 이러지 않는 애들인데. 

 왜 목줄을 안했나요? 라는 질문이 떠올랐지만 묻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개를 부르며 팔을 벌리자, 개 한마리가 뛰어 와 서 있는 아주머니의 품으로 뛰어올라 장갑 낀 내 손을 핥고 있었고, 처음 내 뒷다리...아니 뒤에서 내 다리를 잡은 개는 여전히 꼬리를 흔들며 멍멍 짖으며 내 다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어머, 얘 봐. 이렇게 다른 사람을 좋아한 적이 없는데. 혹시 집에 개 키우세요?
 아니요, 개는 안 키우는데……. 아…, 가끔 친구들이 저를 개자식이라고 하기는 합니다. 라고 말할까 하다가 갑작스런 내 농담에 당황해하실 아주머니를 생각해 그만둔다. 그렇게 개들을 진정시키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 모처럼 사색적인 시간을 가졌었는데, 끝에 와서 이게 무슨 개판……. 
반응형

'Blogcasting > 우물쭈물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니  (3) 2010.02.25
이제는 공한증의 정의가 바뀌어야 할 때!  (2) 2010.02.10
가카께서 눈물을 흘리시다니 ㅠㅠ  (3) 2010.01.08
블로그 연말 정리  (4) 2010.01.02
새해 인사  (3) 2010.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