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영화

「마더」 - '엄마' 없으면, 서글프다.

파란선인장 2009. 7. 1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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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많은 기대를 모았던 '마더'가 봉준호 감독의 전작만큼의 흥행은 이루지 못한채 막을 내렸다. '국민 엄마' 김혜자를 위한, 김혜자에 의한, 김혜자의 영화라고까지 말한 감독의 말대로 영화는 '엄마'에 관한 어떤 불편한 진실들을 관객에게 마주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크게 흥행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실망할 건 없다. 흥행성적으로 영화의 질이 평가되는 것은 아니니까.

 이미 극장에서 내려간 영화고, 많은 리뷰들이 쏟아졌고, 또 영화에 대한 감독의 인터뷰도 흘러넘치는 시점에서 뒤늦게 리뷰를 쓴다는 건, 참 정신없는 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건, 약간은 다른 이야기도 영화속에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굳이 말하자면, 정석의 부스러기를 주워먹는 글이랄까. 

'마더' 포스터



'엄마'가 없으면 서러워

 읽어 봤던 감독의 인터뷰들에서는 한국사회에서의 '엄마'라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들과 '엄마'와는 양립될 수 없거나 상관시킬수 없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가 주로 실려있었고, 영화평론가들의 글들은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마'를 욕정을 가진 여자로 봤을 때는 불편했었고, 김혜자의 부끄러워하면서도 욕정에 빛나던 눈빛도 잊을 수 없을만큼 강렬했다. 그리고 두 개의 반전(?)도 나름 볼 만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김혜자의 눈빛도, 원빈의 연기도 아닌 '쌀떡소녀'와 '종팔'이었다.

 이 영화에서 피해자로 존재하는 건 '쌀떡소녀'와 '종팔'뿐이다. 거기다 좀더 넓히자면 '고물상 노인'까지 포함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보면 결국 피해를 입고 희생을 당한 건 가장 약한 존재들 뿐이다. '쌀떡소녀'라 불리는 '아정이'는 그 별명에서부터 이미 처참하다. 그녀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살아가는 소녀가장이다. '종팔'이는 지적장애가 있는 장애인이다. 그리고 '고물상 노인'은 외딴 곳에서 혼자 살고있는 독거노인이다.[각주:1] 

 그에 반해 '도준'과 '혜자'는 사회적 약자라고까지 볼 수가 없다. 썩 훌륭하진 않지만 약재상을 하고 있고, 불법이지만 침도 놓으러 다니며 돈을 번다. 돈이 없다고 하지만 결국 '진태'가 고급차 한 대 뽑을 정도의 돈은 가지고 있다. '도준'역시 바보로 취급당하기는 하지만 자신을 보고 바보라고 하는 사람을 혼내줄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 힘은 무시할만큼 나약하지 않고 최소한 맞붙을 수는 있을 정도는 된다. 그리고 이 가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진태' 역시 골프치러 온 사장들과 맞붙어 합의금을 뜯어낼 수 있고, 누군가에게 폭력을 쓸 수 있을만큼의 힘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힘을 가지고 '혜자'를 돕고 그 댓가로 돈도 꽤 챙기게 된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서로를 돕거나 이용하며 결집하고 의존하게 된다.

 앞에서 말한 '피해자들'은 먹이사슬 가장 아래에 위치한 가장 약한 존재들이다. 먹고 살기위해 몸을 파는 소녀가장과 지적 장애인, 그리고 독거노인.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약자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영화속에 함축해서 표현하고 있는 존재라 생각한다. 막연히 '혜자'와 '도준'이 사회적 약자란 생각이 들었지만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다. '아정'과 '혜자'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 극명한데, '아정'이 먹고 살기 위해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그들에게 몸을 팔아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면. '혜자'는 자신의 욕정을 충족시켜주는 이에게 돈을 주기 때문이다. '종팔' 또한 '도준'과 극명하게 비교가 되는데, '도준'은 죄를 지었음에도 '엄마'라는 존재가 있어서 풀려나게 되고, '종팔'은 죄가 없음에도 '엄마'라는 존재없이 억울하게 잡히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종팔'의 지적장애가 보호받아야 하는 것임에 반해, '도준'의 상태는 의심스러운 정도이지만, '도준'은 보호자가 있고 '종팔'은 혼자이다. '도준'에겐 엄마인 '혜자'가 있고 '혜자'에겐 '진태'와 경찰서 형사인 '제문'이 있다. '아정'과 '종팔'처럼 누구하나 보호해주거나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은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는 약자인 것이다. 이로 인해 '도준'과 '혜자'는 약자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상대적으로 더 약한 존재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살아가게 되는 셈이다.


우리들도 '망각의 침'을 놓고 있진 않나
  사실 영화를 이렇게만 해석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일이다. 스스로도 이게 핵심을 찌르는 정확하고도 예리한 해석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영화 속 한 장면이 자꾸 걸렸기 때문에 이렇게 쓸데없는 뒷북을 치고 있는 것이다. '도준' 대신 범인으로 몰린 '종팔'을 면회 온 '혜자'는 종팔을 보고 '너 엄마 없어'라며 눈물을 흘리는 데, 여기다 대고 한 종팔의 대사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울지마라." 그 짧은 한마디가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슬퍼하지(혹은 슬픈 척) 마라', '죄책감 느끼지(혹은 느끼는 척) 마라', '당신이 울 자격이나 있나?' 라고 말하는 듯한 그 표정과 대사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봉준호'라는 감독의 늪에 빠져 잘못 짚어서 엉뚱한 말만 하고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라는 게 복잡한 텍스트라 여러가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혹시나 우리도 스스로에게 '망각의 침'[각주:2]을 놓고선 '전체'라는 덩어리에 숨어서 어떤 것들을 잊으려 노력하면서, 잊었다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1. 하지만 영화를 보면 이 노인의 도덕성에 관해서 판단하기란 쉽지가 않다. 왜그런지는 영화로 확인하시길. [본문으로]
  2. 가슴의 응어리, 나쁜기억, 답답함을 싹 풀어준다는 침자리에 놓는 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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