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영화

「박쥐」란 영화, 말 많은 영화.

파란선인장 2009. 5. 1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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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를 들라고 한다면 누구나 주저없이 '박쥐'를 택할 것이다. 헐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 유니버설에서 투자를 했고, 박찬욱이라는 스타 감독, 주연 배우들의 노출 연기와 칸 영화제 진출 등의 흥행요건을 갖추고도 관객들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분명하게 갈리고 있다. '박쥐'에 대한 이야기가 연일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번에 칸에 진출하면서 더 많은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외국관객과 외신들의 반응도 갈리고 있는 것 같다.[각주:1] 과연 이 영화, 어떤 영화일까?

!주의: 본 글은 리뷰로, 이하의 글에는 영화의 내용이 상당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실 분들 중에서 미리 내용에 대해 알기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아울러 이것저것 다 적다 보니 글이 좀 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ㅜㅜ


1. 영화 「박쥐(Thirst)」
 영화 '박쥐'의 영어 제목은 'Thirst'로 이는 '갈증'을 뜻한다. 이는 목마름을 연상시켜 영화에서 뱀파이어가 가지는 피에 대한 갈증을 의미하기도 하고, 좀 더 의미를 확장시켜보면 욕망의 충족이나 쾌락에 대한 갈증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영화에 대해 간략히 말한다면 쾌락을 위해 욕망을 충족시키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죄악과 그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뱀파이어가 된 신부를 통해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영화의 미장센이었다. 강렬했고 뛰어났다. 박찬욱 감독의 그동안의 영화에서도 이 미장센부분은 훌륭했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특유의 감각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박찬욱 감독은 이야기나 자신의 상상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재현해 내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뱀파이어가 된 상현이 '카스테라 아저씨'의 피를 링겔 호스로 빨아 먹는 장면도 꽤 충격적이었고, 물통에 담긴 피를 벌컥벌컥 마실 때는 좀 거북스럽기까지도 했지만 그래서 영화적인 재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주 공간인 '행복한복집'[각주:2]의 인테리어도 특이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 한 몫을 했다. 그런 공간에서 흘러 나오는 옛스런(?) 노래와 합쳐져 시공간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는 효과도 있었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사방을 새하얗게 칠한 배경을 통해 피의 색감을 더욱 강조하는 강렬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장면들이 보는 이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반면에 이런 강렬한 장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괜찮을 것이다. 이외에 마지막 장면도 꽤나 특이한데, 붉게 물들어 흡사 피로 된 바다라고 생각되는 곳을 돌고래 한 쌍이 헤엄을 치는 장면이다. 영화 볼 때는 뭔가 모호한 장면이었다. '피바다'란 말이 그냥 들을 때는 과장된 의미 밖에 없었는데, 실제로 피바다를 보니 약간 혐오스러우면서도 불편한 느낌이었다. 거기서 헤엄치는 돌고래의 모습은 그런 불편함을 애매모호함으로 만들어버렸다. 정말 '뭥미'스러운 이 장면은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천국과 지옥의 이미지를 혼합시켜 본 장면이라고 한다. 설명을 듣고 나면 그런 걸로 알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볼 당시에는 감독의 설명은 없었으니, 많은 관객들이 혼란스러워 했다. 



 미장센은 훌륭했을지 몰라도 이야기 구조를 본다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 영화이다. 아마도 이부분에서 많은 관객들이 실망했을 것 같다. 신부가 뱀파이어가 되고 친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고 점점 쾌락을 탐닉하면서 죄악을 저지르는 과정을 관객이 납득할 만한 설명이나 인과관계가 없이 '그냥 그랬다'하는 식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키면서 시작된다. 신부 상현이 환자들을 위해서 스스로 백신 개발실험에 참가했다가 죽게 된다. 그런데 그때 수혈받은 피로 인해 흡혈귀가 된다는 것인데, 과연 그러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영화를 보면 흡혈귀가 된 상현과 태주는 피에 허덕이게 된다. 근데 그러한 특성을 가진 뱀파이어가 과연 헌혈(!)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피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들이 스스로의 피를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 헌혈을 했다? 설사 그런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쉽게 납득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이처럼 영화에는 '과거'가 없는데, 이는 인물들에게서도 마찬가지다. 인물들에게도 과거는 없고 캐릭터만 있다. 그래서 '왜?'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면 영화의 재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영화속에서는 그 질문에 답해줄 어떤 것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상징소는 매우 많다. 영화속에는 욕망, 쾌락, 구원, 죄악과 죄의식, 사랑, 모성, 인간윤리, 신앙 등 다양한 상징들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영화의 의미가 한가지로 모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다양한 해석을 하면서 여러가지 의미들을 생각해 보면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동시에 한 곳으로 모이지 않는 그 수많은 이야기들로 혼란스럽거나 난해하거나 산만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도 있는 것이다. 어떤 인터뷰에서 보니까 박찬욱 감독은 관객들의 다양한 반응을 기대한다고 했다. 어쩌면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감독이 의도한 이런 부분은 전체 대중과의 소통에서는 실패한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초반 '박쥐'를 두고 가장 말이 많았던 것은 송강호의 성기노출 장면이었다. 감독이나 배우는 영화에서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고 역설한 그 장면을 두고 관객들은 굳이 필요했나라는 반응이 많았다. 영화에서 뱀파이어가 된 신부 상현은 그에게 일어난 기적으로 그를 따르는 무리가 생겨나게 된다. 모든 상황을 정리하는 과정중에 상현은 그들도 정리할 필요를 느껴 그들 중 한 여성에게 강간을 시도하게 된다. 그리고 비명소리를 듣고 몰려온 사람들에게 상현은 바지를 입으며 성기를 노출하게 되는데, 이 장면이 잘못된 신앙을 가진 그들에게 자신의 혐오스러운 모습과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을 보여줌으로써 더이상 자신을 믿지 않게 하려는 상현의 의도를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발기가 되지 않은 성기로 그런 의도를 더욱 확실히 하는 것이라 노출이 필요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릇된 그들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면 굳이 노출을 하지 않더라도 강간을 시도한 모습만을 통해서도 충분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약간 충격적이긴 했지만 성기노출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강간을 하는 혐오스러운 모습뿐만이아니라, 성기를 보여줌으로써 결국 상현도 인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것을 전달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어쨌든 이 때가 극장이 가장 술령였던(일부에선 비명도 터져나왔었다.) 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2. 배우들의 연기

 김옥빈 ★★★★☆
 영화를 보기 전에는 김옥빈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있었다. 사실 김옥빈은 예쁜 배우였지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아니었다. 게다가 한때의 실언으로 '된장녀'의 대표주자 이미지까지 있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라는 실력있는 배우와 만나서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하는 기대와 우려였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태주라는 인물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우리나라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했다. 이미 영화에는 김옥빈은 없고 태주만이 있었다. 흔히들 하는 말로 '싱크로율 100%'였다.
 영화속에서 태주라는 인물은 두 번 부활하게 된다. 상현과의 첫 번재 섹스를 통해 삶에 찌들고, 늘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탈출을 꿈꾸는 인물에서 쾌락에 눈을 떠 점점 악해지기는 하지만 생기 넘치는 여자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첫 번째 부활이다. 그리고 태주를 죽인 상현이 끝내 욕망을 저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피로 태주를 살리게 되는데, 이 때 태주는 뱀파이어로 다시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이 두 번의 부활을 그녀는 충분히 소화해냈다. 삶에 찌든 모습과 상현을 만나고나서의 그 생기가 넘치는 눈빛, 그리고 뱀파이어가 된 후 욕망이 들끓고 쾌락만을 추구하는 희번덕거리는 눈빛은 정말이지 놀라운 것이었다. 태주의 대사중에 인상깊은 대사가 두 개가 있는데 이또한 생각해보면 두 번의 부활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첫번째는 '난 부끄럼타는 사람 아니에요'[각주:3]라는 대사이고, 두 번째는 '여우가 닭 잡아 먹는게 무슨 죄야'라는 대사이다. 대사자체도 좋지만 충분히 느낌을 살린 김옥빈의 연기도 훌륭했다.
 

 송강호 ★★★☆
 무난했다. 나쁘진 않았지만 아주 훌륭하진 않았다. 인간적인 면모를 보일 때나, 코믹적인 상황에서는 역시 송강호라고 생각되는 연기를 훌륭하게 했다. 하지만 뱀파이어이자 신부인 상현의 고뇌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부분이 연기 때문이라고 해야할 지, 연출 때문이라고 해야할 지 약간 애매하긴 하다. 그리고 상현의 역할에 친근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송강호가 약간은 어울리지 않은 면도 있다 하겠다. 어쩌면 좀 더 섹시하거나 좀 더 선악의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맡았다면. 하지만 그런 배우는 찾기 어려울 뿐더러 누가 쉽게 성기노출을 했을까. '고추투혼'은 박수칠만 하지만, 여러가지로(?) 아쉽게 된 것 같다.

 김해숙 ★★★★

 '무방비 도시'에서 보여준 연기변신 이후로 시작된 그녀의 새로운 연기 인생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란 것을 확인 시켜주었다. 기괴한 복장과 화장에 극성스러운 성격까지, '라여사'라는 인물을 아주 잘 표현했다고 감히 말해본다. 아들에 대한 지극한 모성을 잘 나타났다. 인상적인 부분은, 보신 분들은 다 동의하겠지만, 눈만으로 강한 긍정을 나타낼 때였다. 실제로 소름이 끼쳤던 그 장면은 아직도 그 소리와 움직임이 강하게 남아있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연출을 한 감독도 감독이지만 그것을 연기를 통해 오롯이 전달한 김해숙의 연기도 최고였다. 다만 초반에 좀 웃겼던 것은 '라여사'의 모습이 '융드옥정'님과 너무나 흡사했던 것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몰입이 쉽지 않기도 했다. 

 신하균 ★★★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가 송강호와 김옥빈 사이에 끼어있었던 것 말고는 특별히 인상깊었던 부분은 없었다.


3. 마무리
 영화 '박쥐'는 지극히 '박찬욱스러운' 영화이다. 10년을 계획한 영화라는 그의 말처럼 감독 자신의 의식이 많이 들어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매니아들에게는 괜찮은 영화이지만 대중들에게는 광고만 유난스러웠던 영화였던 것 같다. 실제로 다음 영화에서 평점을 보면 평균이 5점 대인데, 평점 하나하나를 보면 거의 다 10점 아니면 0점이라는 놀라운 장면을 볼 수 있다. 미장센은 훌륭하지만 스토리는 지루하고, 다양한 상징들로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이 있는 반면 그로 인해 난해하고 산만하기만 한 면이 있을 수 있는 영화. '뱀파이어가 된 신부'라는 매력적인 소재에 열광하거나, 그런 소재를 충분히 재미있게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이 동시에 존재하는 영화. 얘기하면 끝이 없을 이 영화가 불러 일으킨 논란이 이번 칸 영화제 출품으로 또 어떤 양상을 띨 지 기대되기도 한다.

62nd Annual Cannes Film Festival



※ '박쥐' 를 보고자 할 때의 주의사항 
 '올드보이'와 같은 재미있는 영화를 기대한 관객, 피 나오는 걸 못 보는 관객, 연인이나 가족과 극장을 찾을 관객, 독실한 신앙을 가진 관객에게 '박쥐'는 훌륭한 선택이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겠다고 하실 분들은 영화가 끝나고 벙찌지 않기 위한 대비를 하셔야 할 것이다.

 

  1. 우리나라에는 주로 호의적인 반응이 많이 전해지고 있지만, 칸 시사회에서 관람도중에 밖으로 뛰쳐나간 관객도 꽤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유럽의 적지 않은 언론이 혹평을 했다고도 한다. [본문으로]
  2. 이 작명도 다분히 감독의 의도적인 것이라 생각된다. 한복을 파는 집인 '행복 한복집'일 수도 있고, 반어적인 의미의 '행복한 복집'일 수도 있다. [본문으로]
  3. 내가 들은 영화 대사중에 가장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대사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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