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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난한 만우절이었다. 만우절을 일주일 전부터 인식하고 있었다면, 훨씬 멋진 글이 나왔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제 저녁밥을 먹고 난 후에서야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난 '어떻게 하면 그럴듯하면서도 멋진 거짓말을 해서 많은 이들을 낚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빠져서 잠까지 설치게 되었다.
그런 생각들 중에 어떤 기준이 생기게 되었다. 일단 그럴 듯해야 했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혹할테니까. 그리고 이왕이면 긍정적이거나 밝은 거짓말이었으면 했다. 읽는 사람 아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거짓말이었으면 했다. 그리고 재밌어야 했다. 읽고 나면 웃음이 나는 그런 글?
아무튼 이 되지도 않는 만우절 때문에 고민고민하면서 이런저런 기준들을 만들어 냈다가 지우고, 여러가지 아이템들을 생각했었던걸 생각해보면 꽤나 한심하기도 하지만, 그때 난 아주 열심히였다. 쓰려다 만 아이템들을 고백하자면 제일 처음으로 생각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에 관한 글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다가오는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하면은 대통령직을 그만두겠다는 식으로 발언을 했다며 기사처럼 쓰려고 했다. 너무 말이 안되는 것 같아서 대통령의 탈당으로 하려고 했다. 그래서 미미하더라도 몇몇 사람들이 글을 보고 선거를 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너무 뻔했고, 이명박 대통령 까는 것도 이젠 지쳐서 그만두기로 했다. 괜히 내 블로그만 더럽혀지는 것 같기도 하고, 시대가 수상하니 잘못하면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한 것은 연예관련 글이었다. 웬만하면 거대 떡밥을 투척해서 많은 사람들을 낚으려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소재가 '유재석'이나 '무한도전', '김태호PD'에 관한 글이었다. 무한도전에 관해서는 마땅한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서 그만뒀고, 김태호PD가 무한도전에 쓴 자막들이 정부여당에 대한 모독으로 모욕죄로 고소되었다는 글을 쓸까도 했지만, 소재자체가 너무 부정적이고 개인의 명예에도 관계가 되는 것 같아서 그만 뒀다. 유재석에 관해서는 '드디어 임신'이라는 소재로 글을 쓰려고 했지만, 별 내용도 없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욕얻어 먹을 것 같아서 그만뒀다. 유재석 정도 되는 연예인은 잘못 건드리면 내 소중한 블로그가 폭파될 위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생각난게, 재밌는 거짓말들을 모아서 써볼까 했다. 이를테면 오바마 "난 사실 백인, 썬텐을 좋아할 뿐" 이라든가, 구준표 '사실 난 서민' 이라든가 이명박 '사실 난 한국인'등을 모아볼랬는데, 창작의 고통이 꽤나 컸다. 미리 준비를 했더라면 괜찮았을 아이템이었는데, 시간에 쫓기다 보니 많은 아이디어들이 생각나지도 않았고, 혼자하려니 좀 힘이 부쳤다. 지금 생각해도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 만우절에 시도해볼까나.
암튼 그래서 급조한 이야기가 "2009/04/01 - [Essay/Daily essay] - 만우절이면 생각나는 특별한 추억."이었다. 처음에는 진짜 만우절에 있었던 추억을 써보려고 했다. 고등학교 때였는데, 우리반에 여자아이가(남녀합반이었다.) 외국으로 유학간다고 거짓말을 해서 반 아이들에게 온갖 위로와 각종 선물들을 받는 것을 보고, 약간은 괘씸하기도 하고 나도 놀려주고 싶은 마음에, '나 사실 너 좋아해, 유학가지마'라고 거짓말했다가 그아이가 진짜로 믿어버려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 너무 진지하게 장난이나 거짓말을 한다는 건데, 그때는 이게 부정적으로 작용한 경우였다. 그 이후로 이상하게 분위기가 묘해지고, 그 아이는 날 계속 피하고, 난 해명도 못하고 졸업했다. 졸업하고 같은 대학을 진학했지만, 캠퍼스에서 가끔 만날 때마다 어색한 그 분위기란...;;;; 결국 아직까지 해명도 못하고 그 아이의 기억속엔 고등학교 때 자기를 좋아한 남자로 내가 기억되고 있다. 제기랄. 실제로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도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게다가 그 아이는 예쁘지도 않다고~ ㅠㅠ
예쁘지도 않았단 말이다!!!!!!
아무튼 이사건을 쓰려다가 어린 시절의 추억이랑 마구 섞어서 적었다. 적고나서 보니 너무 부끄러웠다. 이런 삼류 저질 막장 드라마보다도 못한 글에 누가 낚일까라는 생각에 내 자신이 한심했다.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신 분들이 계시고 댓글도 달아주시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의외로 내 동생이 낚여버렸다. 어릴 적 추억을 요리조리 바꿨는데, 거기에 혼자 낚여버렸다는...ㅋㅋ 다시 한번 재밌게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표한다.
이렇게 온라인에서 애쓰는 동안, 오프라인의 나에게는 어떤 만우절 문자도 오지 않았다. 물론 나도 보내지 않았다. 그럴싸한 거짓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문자도 받지 못한 것은 좀 슬펐다. 다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세상이 힘들어져서 그런지 이제 만우절 따위는 그냥 의미없는 날일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섭섭하더라는. 발렌타인데이에 멀쩡하게 살아있는 여자친구한테 초콜렛 못 받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만우절에 누구에게서도 거짓말 문자 하나 받지 못한 걸 섭섭해하고 슬퍼하는 나도 좀 정상은 아닌 듯. 아직 한참 어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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