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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난한 만우절이다. 나도 만우절을 맞아 그럴듯한 글을 써서 여러사람 낚아볼려고 했는데, 도저히 아이디어가 떠 오르지 않고 있다. 뭘 쓸까하는 고민으로 밤잠을 설치느라 늦잠까지 자버리고, 이래저래 꼬인 만우절이 되어버렸다. 만우절을 맞이해서 다른 블로거들은 어떤 글들을 썼나 하고 돌아다녀보니까, '요즘에 누가 만우절에 거짓말하냐, 촌스럽게'라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메타블로그사이트에서는 나름 재미난 장난들이 벌어졌지만, 개인블로그에선 글쎄. 많은 블로거를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만우절이라고 해서 대놓고 거짓말 포스팅을 하는 블로거는 없는 듯 하다.
그래서 나도 뭐 되지도 않을 포스트는 포기하고, 만우절에 얽힌 추억이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사실 좀 거짓말같은 이야기이고, 개인적으로도 소중한 추억이라 꺼려지긴 하지만, '만우절'에 기대어 한 번 써봐야겠다. 읽고 난 후 '에이, 뻥치고 있네'라는 반응이 오히려 더 고마울 수도 있을테니까.
이 이야기는 한번도 누군가에게 한 적이 없다. 현재 가장 친한 친구들한테도 한 적이 없으며(혹시 지나가는 이야기로 대충 했던 적은 있었는지 모르겠다.), 대학교때 숱하게 하던 진실게임에서도 한번도 자세하게 이야기 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들 역시 대충의 이야기는 들었을 것이다. 나름 이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내 동생인데, 동생도 어릴 때 이야기는 잘 알지만 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다. 내 나름대로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후에 소설로 한 번 써볼까 싶어서 간직하고 있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국민학생 5학년때, 그 아이가 전학을 왔다. 부산의 달동네에 위치했던 학교에 무려 서울에서 전학을 온 것이었다. 그 아이는 서울말을 썼으며, 얼굴도 하얗고 이쁘기까지 했었다. 아직도 그날 아침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 등교해서 교실로 가는 길이었는데, 옆 반에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전학온 그 아이를 보기 위해 모였었다. 어릴 때부터 쿨했던 나는 '뭐야, 일개 전학생일 뿐인데.'라며 궁금한 마음을 애써 참았었다. 근데 그 아이는 우리 동네에 살고 있었고, 동네에 하나 밖에 없던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 학원에는 동네 친구들이 다 있었기에 나도 곧 학원을 다녔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6학년이 올라가면서 그 아이와 난 같은 반이 되었고, 짝이 되면서 하교길을 같이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학원이 끝나면 곧장 집에 가질 않고, 동네 친구들과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놀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더욱 그 아이와 가까워졌었다. 나름 그 동네 골목 대장이라고 자부하던 나였던 지라, 그 아이를 좋아하는 감정을 드러내는게 영 부끄러웠었다. 그러다 만우절이 되었고, 만우절에 기대어 그 아이에게 고백하기로 결심을 했었다. 거의 하루가 다 가도록 우물쭈물거리다 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는 그 아이를 불러서 고백을 해버렸던 것이다. 거절 당하면 '에이, 만우절이잖아, 오늘 하루 끝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짓말 한 번 해봤어.'라고 둘러대려고 했었다. 뜻 밖에도 그 아이는 거절하지 않고 생각해보겠다고 했고, 나는 일말의 희망을 품은 채 나중에라도 거절 당하면 '그때 그거 만우절 거짓말이었어'라고 해야지 하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며칠 후 그 아이에게서 내 고백을 허락하는 편지를 받게 되었고, 그렇게 유년기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만들게 되었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난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그녀와의 연락도 곧 끊어지게 되었다. 그녀 역시 어딘가로 떠나버렸는데, 그 후 몇 년 동안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사춘기 시절 내내 그녀에 대한 생각을 품은 채, 언젠가는 다시 만나겠지 하며 살았었다. 혹시라도 부산으로 가면 다시 만날까 싶어 힘들게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었지만,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다. 어느새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가면서 그녀는 그냥 내 유년기의 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제대 후 였다. 어떻게 서로 연락이 되어 만난 국민학교 친구들사이에서 그녀를 본 것이다. 너무나 놀라서 좀 어리벙벙한 상태에서 그녀와 인사를 했다. 근데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물론 초등학교 친구여서 얼굴이 어느정도 기억에 남아있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 때의 기억은 이상하게 자주 봐왔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농담삼아, '니 ㅇㅇ닮았네?'라고 했더니, 그녀가 약간 어이없어 했다. 난 그 연예인을 싫어하는 줄 알고, 실수했다고 생각해 미안하다고 얘기 하려는데, 그 아이의 천둥벼락과 같은 말.
"내가 ㅇㅇ이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나는 재차 거듭해서 확인을 했고, 싸인을 받았다. 지금도 가끔은 연락하지만, 연락할 때마다 좀 신기하긴 하다. 그때만 해도 약간은 덜 유명했는데, 이제는 주연급 연기자가 되었다. 제대하고 나서는 틈틈이 만나서 밥도 먹고 했는데, 이제는 좀 힘들 듯 하다. 현재는 다음 작품 준비하면서 쉬고 있다고 하는데, 잘 되길 빈다. 그날 그 아이에게 연예인이 되기까지 얼마나 힘든가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 후로 웬만하면 연예인을 비난하지는 않게 되었다. 지금도 블로그에 연예인에 대한 비난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자주 오는 사람이면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녀가 잘 되길 바라며, 오늘 하루도 정리해야겠다. 솔직히 이렇게 적고 나니 술 한잔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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