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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떠나보니 나를 알겠더라 - 2.후포항

파란선인장 2009. 2. 1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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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도 이제 게맛을 안다.


 넓은 광장과 같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평일이라 그런지 붐비진 않았다. 어쩌면 영덕 강구항도 아니고 울진 죽변항도 아닌 후포항이라 덜 유명해서 사람이 적은 것인지도. 하지만 그런 이유때문에 적어도 우리의 선택은 받을 수 있었다. 인생 첫 대게를 이곳에서 먹게 될 것이다.

 드디어 대게를 먹는다는 설렘과 함께 걱정이 시작되었다. 어리바리한 손님들에게는 홍게를 대게로 팔고 수입산을 국내산으로 속여판다는 정보를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다. 내리기 전에 다짐한다.

 "우리 초짜인거 티내면 안된다."
 "홍게와 대게가 어떻게 다른지 아나?"
 
 이 질문엔 찬과 헌이 자신있어 했다. 더불어 박달게의 외형까지도 알고 있는 듯 했다. 국내산인지 수입산인지는 어쩔 수 없겠지만, 적어도 종(種)은 구분할 수 있을 듯했다. 굳게 다짐하고 내렸다. 가게앞에 서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쏟아졌다. 우린 곧 우왕좌왕했다. 일부는 항구쪽으로 일부는 가게쪽을 향했다.

 "이미 우리의 정체는 까발려졌다. 그냥 가자."
 
 원이 말했다. 우리는 날때부터 상인이었을 것 같은 원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의 인도에 따라 우리와 가장 가까운 가게 앞에 멈춰섰다. 원이 앞장서서 아저씨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했고, 대게를 고르기도 했다. 나머진 병풍역할을 충실히 했다. 차에있을 때 찬이 대게는 크기를 봐선 모르고 들어봐서 무거운게 살이 많이 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떠올랐는지 원이 대게를 들어보려다가 손가락을 잃을 뻔 했다. 나중에 원은 들어봐도 잘 모르겠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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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게는 4마리를 골랐다. 그 중 한마리는 박달게였다. 박달게. 아직도 설레인다. 박달게는 대게에 비해 컸다. 대게도 크긴 했지만 이름만 듣고 상상했던 나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 그 기대를 충족시켜준 것이 박달게. 우리가 고른 박달게의 등껍질에서는 자개빛이 오묘하게 비쳤다. 등껍질에는 검은 점도 몇 개 있었다. 우리가 갔을때는 대게가 1만원이었고 박달게는 3만원이었다. 다른데 갔다가 괜히 처음들렀던 곳이 가장 저렴하면 다시 오기 뻘쭘하다는 원의 생각도 있었고, 어차피 다른데 가도 별 차이가 없을거란 생각에 그곳에서 대게를 먹기로 하였다. 아저씨가 온돌 보일러를 켜주셨고, 어디 계시다가 오신 아주머니는 열풍기도 우리쪽으로 켜주셨다. 대게가 나오기 전에 과일과 해산물로 부친 전, 배추 뿌리 등이 나왔다. 우리는 그것들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맛있겠다."
 "우린 속지 않았겠지?"
 "이 아저씨가 은근히 손짓하길래 더 끌렸다. 적극적으로 불렀다면 안 왔을거야."
 "근데 동해안에서는 다 대게파는듯."
 "영덕이 유명해도 어차피 다 포항에서 잡히는 거라던데."
 "울진이랑 영덕이랑 대게를 놓고 싸운다더라."
 "이러다 동해안 대게 멸종될듯."
 "근데 같은 동해에 있는데 북한산과 러시아산과 일본산과 국내산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잡담이 계속 되던 중에 드디어 대게가 모습을 들어냈다. 한껏 쪄서 나온 대게의 발간 껍데기가 식욕을 들끓게 했다. 우리는 입고있던 겉옷을 벗었다. 헌은 속에 입은 반팔티가 나올때까지 옷을 벗었다. 양 팔을 걷어붙였다. 말이 없어졌다. 대게를 뜯으시려는 아주머니의 손만 쳐다보고 있었다.

 "다들 긴장해라."
 
 누군가 말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우리 사이에 휘감겼다. 모두들 가만히 있었지만, 언제라도 먼저 대게를 낚아챌 준비가 되어있었다. 눈은 바쁘게 대게와 친구들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

 "야, 우리 대게 먹기 전에 사진 한번 찍어야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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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에 긴장은 풀렸고, 카메라를 들고있던 나와 찬은 서둘러 대게와 대게를 뜯어주시는 아주머니를 찍어댔다. 한바탕 웃고 사진을 찍으면서 풀어졌던 긴장은 아주머니가 던져주신 박달게의 여덟 다리들을 보자 이내 다시 팽팽해지면서 본격적인 대게탐닉에 들어갔다. 나는 처음 먹는 것이었다. 원도 보면 두번째 아니면 세번째일 듯했다. 헌은 좀 여유로웠다. 찬도 예전에 좀 먹어본듯, 껍데기에서 게살을 잘도 끄집어 냈다. 나는 말하지 않고 대게만 씹었다. 국물이 흐르는지도 몰랐다. 처음 먹어본 대게는 정말 맛있었다. 그것도 박달게는 단연 으뜸이었다. 박달게를 다 먹고나서 대게를 먹었는데, 확실히 맛과 양에서 박달게가 우수했다. 정신없이 먹는다고 아무말도 못했지만, 종종 이런 말이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인간들아, 말 좀 하면서 먹어라."
 "친구들 사이의 대화는 어디로?"

 맛있는 거 먹을 때는 조용히 그 맛을 음미하면서 먹어야 음식에 대한 예의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게걸스럽다'외엔 달리 어떤 말을 떠올리기 힘들었겠지만, 그렇게 먹어야 참맛을 알 수 있다. 이 글을 본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음식에 대한 예의라면, 친구들에 대한 예의는 어디로 갔는가?'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물론 행복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이 야생의 상황에 놓여있다면?

 정신을 차려보니 빈 껍데기들만 널부러져 있었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엔 헌이 원의 먹는 것을 나무라던 것이 떠올랐다. 아마도 구석구석 다 안 먹고 버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원은 그 야생의 분위기에 휘말려 최소한 지켜야할 도리마저 저버린듯 했다. 

 이윽고 게 껍데기에 비벼진 밥이 나왔다. TV홈쇼핑에서 그렇게 밥도둑이라며 게 등짝에 비벼먹는 밥을 보며 침을 흘리던 때가 있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아주머니에 의해 각자의 게등짝이 분배되었다. 이번엔 약간의 대화가 오고갔다. 밥까지 그렇게 먹고 나니 정말 배가 불렀다. 운 좋게도 박달게 등짝은 나에게 왔었다. 아, 박달게. 게껍데기들과 기념촬영을 한 후 가게를 나왔다. 건물 화장실에서 비누칠을 해가며 손을 씼었지만, 게 냄새는 오래갔다. 

 주차장 구석에 커피자판기가 있었다. 입가심 겸 뽑아먹자고 했다. 원이 먼저 커피를 뽑았다.

 "밥 먹고 바로 커피마시면 위에 완전 안 좋다던데."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공유해주었다. 다만 타이밍이 좀 늦었을 뿐.

 "그걸 왜 내가 뽑으니까 말하는데. 제길."

 나는 곧이어 코코아를 뽑았고, 찬도 같은 것을 뽑았다. 원은 계속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착한 헌이 원과 같은 커피를 뽑아먹었다. 빛나는 우정.

맛있는 대게를 먹고 맛있게 담배를 피는 헌. 왠지모를 차주만의 위용이 느껴지기도.



 온 김에 후포항을 둘러보려고 했다. 항구에는 어선들이 정박되어 있었고, 여기저기에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이 생선과 대게를 팔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대게 한번 먹으라고들 하셨지만, 우리는 이미 대게 비린내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나는 저 멀리 보이는 방파제에 가자고 했지만, 묵살당했다. 거기엔 등대도 있었는데. 우리끼리 무슨 등대에 방파제냐며 기각당했다. 하긴.

카메라가 로모인지라 선명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후포항의 모습이라고 찍은 사진. 그래도 분위기는 좋지 아니 한가. 저멀리 내가 가자고 한 방파제와 빨간 등대가 보인다.




 대게는 정월대보름 즈음에 살이 가장 많이 찬다고, 그래서 지금 이 때가 가장 맛있는 철이라고 찬이 말했다. 이번 여행을 위해 열심히 조사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포항에는 사람이 좀 적었다. 점심시간임에도 주차장은 여유로웠으며, 단체 관광을 온 버스 한 대만이 그나마 눈에 들어왔다. 후포항에서는 매년 울진대게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영덕의 강구항과 울진의 죽변항에 비해 인지도가 적어서 손님이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이곳이 유명해져서 이곳에서 먹고 사시는 분들이 좀 나아졌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지만, 동시에 유명해지면 이곳도 유명세를 치르면서 생기는 각종 부작용들이 생길까 염려스러운 마음도 생겼다. 
 주차장에 걸려 있는 안내 지도를 보니 울진 앞바다에 산호초 섬이 하나 표시되어 있었다. 아마도 거기서 대게를 잡아오는 듯 했다. 요즘에는 채 다 자라지 않은 것들도 잡는 경향이 있다고 하던데. 이 맛있는 대게의 씨가 마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달게도 사실은 진짜 박달은 거의 없다더라고 찬은 말했다.

후포항을 살짝 둘러본 후 차로 복귀. 원의 베컴 스타일 츄리닝 폭풍 간지.




 차로 돌아와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일단 관동 제1경이자 후포항에서 가장 가까운 월송정에 가기로 결정했다. 월송정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본 바다는 푸르렀다. 아마도 저 바다속 어느 암초에는 박달게가 살고 있겠지?

 차는 이내 후포항을 빠져 나갔다.


월송정으로 향하면서 본 배. 큰 배가 덩그러니 있는 것이 좀 생경해서 찍어봤다. 저 바다 어딘가에 박달게가...


 

사진은 흐릿하고 엉망이고 기억력도 엉망인체로 써서 많이 부족합니다. 지금까지 쓴 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써야 할지가 더 걱정이군요. 무정한 사람이여, 그대이름은 무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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