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조각들』을 읽었다. 타블로가 스탠포드 대학 재학시절 썼던 단편 몇 편을 모아서 낸 단편 소설집이다. 타블로의 소설이라는 점과, 단편 중 하나인 'Andante'가 그의 교수이자 미국의 대작가인 토비아스 울프에게 극찬을 받은 것이 방송을 통해 알려져 관심이 커졌고, 출간 소식이 나자 예약판매주문이 쇄도하고, 발간 하루만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작품이다. 그리고 여전히 베스트셀러인 이 작품은(이제 영문판으로도 나왔다고.) 충분히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당신의 조각들 - 알라딘>


 어떤 이야기들일까, 얼마나 잘 썼길래 까칠하다는 토비아스 울프에게 극찬을 받은 것일까. 기대감과 설렘으로 가득차면서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사실 유명인이 쓴 글에 대해서는 어떤 편견을 가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이미지에 따라 책의 가치가 평가되기도 하고, 내용보단 작가의 유명세때문에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하는 일이 종종 있어 왔으니까. 그래서 사실 좀 신중하게 읽으려고 했다. 괜히 미국의 대작가가 극찬하니까 나도 읽고 덩달아 좋더라 하는 식의 반응은 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헤밍웨이 할아버지가 와서 칭찬해도 내가 읽고 아니면 아닌 거라는 신념으로 책을 읽고자 했다. 사실 책을 읽고 독자가 얻는 것에 정해진 답은 없으니까. 아무튼 그런 심정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읽었다. 곧 무장해제 당하고 말았지만. 

 본격적으로 이야기 하기에 앞서,  '토비아스 울프(Tobias wolff)'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졌다. 난 영문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그에 대해서도 들어본 바가 없다. 그의 작품도 하나 읽어보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작가라고까지 칭송하니, 궁금해졌다. 거기다 그런 사람에게 타블로가 극찬을 받았다니, 알아보지 않고는 못 베길 정도였다. 근데, 인터넷으로는 아무리 검색해봐도 한글로 된 정보는 없고, 위키피디아에는 영문으로 설명이 되어있었다. 짧은 영어 실력에 끙끙대봤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고, 그가 두 권의 단편소설집을 냈다는 것과(어디까지나 나의 추측;;) 단편 소설의 부흥을 이끌었다는 것과(역시 나의 추측;;;) 자서전을 썼다는 것과 영화 두 편을 찍었다는 것이다. 그 중 "This Boy's Life" 라는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 졌고 그 영화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로버트 드니로가 출연했다는 것 정도. '현대의 헤밍웨이'라는 이 분에 대해서 알고 계신분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 그리고 영어에 자신있으신 분들은 위키피디아에 있는 글을읽고 나에게 요약 좀 해주시면 또 감사할 듯 하다. (해석도전!!)




 당신의 조각들...

 「Andante」는 한 천재 피아니스트 소년의 이야기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후로 소년은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우러러봤고, 그에게 음악은 아버지에게 가는 길이자, 아버지가 자신에게 사랑을 표현한 매개였다. 어쩌면 아버지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더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자, 그에게도 음악은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는 아버지에게도 음악에게도 애정을 잃게 된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회상할 때는 늘 유명했던 피아니스트로서의 모습, 혹은 병에 걸린 이후 점점 악화되어가는 모습들만을 기억해낸다. 그러다 그의 어릴적 생일에 녹음한 아버지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나서 아버지에게 닫았던 마음에 작은 틈이 생기게 된다.
 「쉿」에는 마이크가 등장하는데, 그는 압박스런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의 아픈 어머니, 그가 만나는 여자, 그의 친구 등 그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떠나고자 하지만, 그런 마음과 동시에 죄책감도 느끼게 된다. 그러다 몸이 안좋아지게 되고 위급한 상황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바로 자기가 떠나려고 한 곳에 있음을 알고 그들에게 어떤 책임감과 함께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쥐」에는 갑자기 침실로 들어온 거대한 쥐에 주인공의 현실에 찌들어서 더러워진 꿈들, 도덕성 등을 연결시켜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쥐의 존재는 마크(주인공)가 현실에 찌들며 순수, 열정 등을 잃고 생겨난 탐욕이나 매너리즘 따위를 상징한다. 마크의 인식이 변하고 다시 그 열정과 꿈을 찾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거대한 쥐는 죽게 된다. 
 「우리들 세상의 벽」은 아주 짧은 소설이지만 읽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여느 소설 못지 않다. 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치료를 다루고 있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자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환자로부터 치유를 받고 있다. 어쩌면 사랑을, 어쩌면 영혼의 평안을 그녀에게서 얻고 있는 것이다. 서로를 구해줄 그들은 과연 구해줄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가 서로를 구해주기엔 너무 늦어버렸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이 짧은 이야기에 너무나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증오범죄」에는 준석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한국엔 가본적도 없는 미국시민이다. 그녀의 백인 여자친구는 농구선수와 바람이 나고, 그 때문에 만난 카페에서 본 신문에는 아무 이유없이 베트남 사람을 죽인 자들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다. 그 기사를 보고 제니는 같은 아시아인이니까 라며 준석에게 사과를 하고, 준석은 '더러움이 가슴속에 거대한 꽃처럼 피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거리를 질주한다.
 「최후의 일격」에는 한 가정의 이야기가 나온다. 리치몬드와 발레리는 서로 사랑하지는 않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했다. 제이콥은 그들의 아들로 내성적이지만 글쓰기에 천재적인 재능을 소유한 아이이다. 리치몬드는 폭력적이며 거친 것을 좋아하며, 자신을 전 복싱 챔피언으로 믿고 살아가고 있으며 제이콥에게 항상 남자다움을, 용기있게 살아가기를 강요한다. 발레리는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매일 저녁 파티를 즐기는 여자이다. 어느날 파티에서 만난 남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모든 것을 잃더라도 그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리치몬드는 자신의 두려움을 난폭함으로 숨기려 했을 뿐이고, 발레리는 그 남자가 파산했다는 기사를 보고는 다시 리치몬드에게로 돌아가 자신을 받아달라고 울며 애원한다. 그 모든 상황속에서 제이콥은 아버지가 가져온 빈 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눈채, 자신은 겁쟁이가 아니라며 방아쇠를 당긴다. 한 가정안에서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을 나는 용기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부유한 발레리는 돈보다 사랑을 택하는 용기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하고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래서 그가 파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혐오했던 생활이 그녀의 생활이 될 것이란 것을 깨닫고 두려움에 빠져 리치몬드를 찾아가게 된다. 리치몬드도 아버지에게서 받은 폭력의 아픔, 아버지라는 존재의 두려움을 잘못된 믿음과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자신의 아들이 자신에게서 봤으면 하는 바람으로 제이콥에게 폭력적으로 군다. 하지만 그 또한 두려움의 포장일 뿐이다. 결국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인 목숨을 건 제이콥이 진정 용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당신의 조각들』에서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들 몇 편을 간략히 소개했다. 사실 수록되어있는 단편 하나에 포스트 하나씩해서 쓸 수 있을만큼, 각 이야기들은 이야기할 거리가 참 많다. 그런 것들을 최대한 짧게 간추리자니 능력의 한계에 부딪혀 뭔가 내가 뜻하고자 한 것을 다 표현하지 못해 좀 답답하기도 하다. 아무튼 이렇게 짧은 이야기에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것이 단편의 특징인지도 모르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타블로의 소설쓰는 실력이 수준급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스승에 그 제자인건지, 툭툭 끊어지는 문장과 문장사이에는 깊은 울림과 긴 여운이 있다. 마치 하얀 캔버스위에 물감을 뚝뚝 떨어뜨리면 그 순간은 점이지만, 그 점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이루는 느낌이랄까. 짧고 메마른 문장들로 이루어진 그의 소설은 잔잔한 수면에 퍼지는 물결처럼 읽는 이에게 스며들었다. 

 작품 전체에 공통적으로 배경이 된 뉴욕은 화려하거나 멋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약간은 어두침침하고 축축한 곳. 화려한 만큼 그 음지가 짙은 곳. 가장 바쁜만큼 가장 삶에 찌들었을지도 모르는 곳. 그런 곳을 배경으로 사는 사람들의 조각들을 타블로는 이 소설에 모아놓은 것 같다. 조각은 깨져야 생긴다. 깨지는 것은 연약한 것이고, 연약한 것은 외부의 충격에 쉽게 깨어진다. 사람은 상처를 받으면 그 조각들을 남긴다. 우리가 파편이라고 부르는 조각들. 타블로는 자신의 20대에 보았던 여러 조각들, 어쩌면 자신의 것일지도 모르는 그 조각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낸 것이다. 상처가 아물기를 바라면서.


당신의 조각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타블로 (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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