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casting/우물쭈물 사는 이야기

지난 7년간의 기록들, 다이어리.

파란선인장 2009. 1. 1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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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이다. 아, 물론 이렇게 된지는 한참이 지났다. 아무튼 새해라 또 다이어리를 샀다. 올해도 다이어리는 스노우 캣 다이어리를 샀다. 사실 돈도 없는데 다이어리에 거금(이번 스노우캣 다이어리는 꽤 비쌌다, 개인적으로;;;)을 투입하기가 좀 그래서 다른 다이어리를 살까 했지만, 남성으로 태어난 내가 소지하고 다니기엔 다른 다이어리들은 너무나 화려하고 아기자기했다. 나도 그런게 어울리는 남성이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헛된 희망이라. 이제까지 사온 것도 있고 해서 다시 스노우 캣 다이어리를 샀다. 역시 심플한 멋이 있는 스노우캣 다이어리. 스노우캣님은 역대 다이어리 중에서 이번 편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난 최고까진 아니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듯.

2009년 스노우캣 다이어리


 2009년 스노우 캣 다이어리 겉모습이다. 단정한 느낌. 어떤 사람들은 구리다고 하는데, 난 이런게 좋다. 화려하지도 않고, 단촐한 맛. 바~로 이 맛 아닙니까~ㅋㅋ;;;


2009 스노우캣 다이어리 표지


가까이서 찍은 표지. 페브릭소재이다. 그래서 그런지 질감도 좋고, 또 무지 가볍다. 개인적으로 이번 다이어리 최고의 장점은 무지 가볍다는 것. 그렇다고 내용물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있을 건 다 있다. 자세한 설명은 스노우캣 홈페이지로.


2003년 스노우캣 다이어리


 가장 처음에 샀던 다이어리. 나를 해마다 다이어리를 사게 만든 그 첫시작이 된 물건. 이거 살 때가 엇그제 같은데 벌써 7권의 다이어리가 서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게 스노우캣에서 가장 먼저 나온 다이어리일껀데... 나름 뿌듯?ㅎㅎ
 다시 뒤져보니 이때부터 홈페이지를 만들고 사진올리기 시작했고, 친구들과 춘천으로 여행도 갔고, 그놈들 입대전에 외도로 여행도 갔었고, 학교 다닌다고 정신도 없었고, 입대 전에 미친 짓도 많이 했고... 지금 보면 좋았던 적도 있고,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부끄러운 적도 있고... 암튼 재밌긴 재밌네. 지나간 일에 대한 감상이란 뭐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살짝 그립기도 하고...


2004년 스노우캣 다이어리


 2004년에는 입대를 했었다. 그래서(군대에 갖고 들어갈 순 없었으니까) 이건 내가 쓴게 아니라 내가 내 동생에게 선물로 줬던 것. 2004년에 동생말고도 몇 명한테 선물로 다이어리 줬었는데... 지금은 뭐 하고 사는지... 연락도 없고.... 인간사 다 헛짓거리 같기도....ㅜㅜ
 이때는 다이어리 대신 작은 수첩에 빼곡히 뭔가를 적었는데, 6월달 쯤부터 써서 9월에 다 써서 그 이외의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다. 갖가지 군대 일정과 훈련에 대한 개인적인 고통들이 적혀있다. 나름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초등학교때 동네 친구들과 연락이 된 것은 이 시기의 나름의 수확이랄까. 

2005년 스노우캣 다이어리


 군대에서 짭밥이 좀 됐을때 썼던 2005년 다이어리. 이제까지의 다이어리 중에서 가장 열심히 썼고, 가장 많은 내용과 그 때 내 생각이 있는 다이어리. 지금 보니 정말 별에 별것을 다 적어놨다. 훈련때문에 못 쓴 적 빼고는 거의 매일 썼던 일기. 내 인생에, 그것도 젊디 젊고 꿈 많았던 20대 초반의 2년을 군대에서 보낸다는게 너무 억울했다. 모두들 2년 썩다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찬란한 시기의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기록하고 기록했던 것 같다. 일상사 뿐만 아니라 보고 느낀 것, 갑자기 떠오른 생각들까지 다이어리에 차곡차곡 쌓여져 있다. 멈추지는 않는다지만, 너무나 더뎠던 국방부 시계에 대한 한탄도 있고, 보고싶은 사람들에 대한 생각들, 말도 안되는(이거 읽다가 또 다시 손발이 오그라 들었다.) 몇 편의 시들. 하고 싶은 것들, 먹고 싶은 것들. 그때는 그렇게나 간절하고 소중했는데, 지금 나의 모습을 보면... 그래도 조금의 반성이 된다. 가장 의미없을 것 같은 시간들이 치열했던 기록들 때문에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중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적으니까 혹자는 편하게 군생활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편했다면(물론 미친듯이 빡센 생활도 아니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기록을 했을까. 오히려 최전방에 있어서 더 생각할 것도 많았고, 다이어리에 더 열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때는 참 지랄맞았던 군생활이 지금은 약간 도움이 된 것 같기도. 그때 적었던 짤막한 글.
 내가 군대와서 얻은 것이 있다. 하나는 자연으로부터의 배움이다. 사계절을 가진 이땅의 아름다움. 해가 뜰 때, 해가 질 때 펼쳐지는 산하의 풍경. 살아있는 야생동물의 생명력. 내 인생에서 앞으로 또 언제 2년이라는 시간동안 이렇듯 자연의 위대함, 경이로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따뜻함과 매서움을 가진 자연속에서 스스로 깨우치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다. 위치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나 스스로 알 수 있었고, 인간 사회란 곳이 얼마나 힘들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따뜻한 인정 역시 존재하지만, 권위의 더러움, 비굴하고 파렴치한, 비합리적인 구조속에선 합리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합리와 비이성이 요구되는 그런 것을 알게 되었다. 군대에서 나는 자연과 세상을 조금이나마 알게되었다.

 그닥 잘 쓴 글은 아닌 듯. 이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군대에서 봤던 자연의 모습과 인간의 모습을 대비적으로 생각했었던 듯. 특히 GOP내에서, 철책위에서 근무할 때 봤던 비무장지대의 자연은 정말 평생 간직할 장관이었다. 또 고라니도 있었고, 멧돼지도 있었고, 독수리도 있었고... 그에 반해 간부라 불렀던 일부 장교와 부사관은 거의 머... 근데 뭐 어쩔 수 없는 면일 수도 있다. 군대라는 조직사회가 너무나 폐쇄적이니... 군대얘기는 이제 그만.ㅎㅎ



2006년 스노우캣 다이어리


 나름 좋아했던 다이어리. 이때 다이어리 디자인이나 구성이 참 좋았었는데. 이 다이어리를 살 때만 해도 군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열정적으로 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참... 안 썼다. 그래도 참 소중한 기록이 담겨져 있는 다이어리. 바로 여자친구와 사귀기 시작했을때의 그 설레고 흥분되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 얼마 안되는 기록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그 시절의 나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2007년 스노우캣 다이어리


 이 다이어리를 보면서 좀 웃기면서도 슬펐다. 왜냐하면 치열했던 자취생활의 기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안되는 돈으로 반찬을 사서 연명했던 일, 아파도 누구하나 도움 줄 사람이 없어서 혼자 끙끙 앓았던 일, 전역하고 온 동생과 같이 살면서 더 힘이 부치던 살림살이(물론 같이 사니까 외롭지는 않았다.)에 관한 내용들이 듬성듬성 적혀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타계하신 이청준 작가님 뵈었던 일도 적혀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시험공부에 관한 치열한 기록들 뿐...;;;;

2008년 스노우캣 다이어리


 작년은 달리 한 것도 없이 바쁘게 보낸 것 같다. 일은 좀 했는데, 덕분인지 뭔지 공부엔 너무 소홀한 게 다이어리만 봐도 다 티가 났다. 일해서 번 돈으로 자전거사서 여기저기 다녔던 일, 싸이에서 하던 페이퍼 대박(지극히 개인적인 기준)나서 설레발 쳤던 일, 도서관에서 만난 애들과의 추억들 등. 그래도 몇 가지 기억할 만한 일들이 있던 한 해였다. 물론 최고로 후회가 많이 되는 한 해이기도 하다. 조금만 열심히 할 걸.


 이제 2009년이다. 이렇게 또 지나온 나날들을 돌아보며 반성하면서 새해에는 좀 더 의미있고 빛나는 순간으로 만들면된다. 후회해봤자 뭐 하랴. 조금 덜 후회하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한 해가, 그리고 그런 '내'가 되도록 치열해지도록 하자.


모두들, 새해엔 좀 더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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