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책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독서 후기

파란선인장 2026. 1. 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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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애란의 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에는 다소 특별한 자기소개 방식이 등장한다. 자신에 대한 문장을 다섯 개 말하되, 그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이어야 한다는 규칙이다. 이후 각 문장에 대해 이야기를 덧붙이며 서로를 조금씩 알아간다. 겉으로 보면 가벼운 놀이처럼 보이지만, 이 규칙은 남다른 비밀을 간직한 아이들에게 오히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숨구멍이 된다. 모두가 솔직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쯤은 거짓일 수 있다’는 전제는 말해도 되는 진실과 말하지 않아도 되는 진실을 구분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상실을 품은 세 명의 청소년


  이 작품에는 세 명의 청소년이 등장한다.
  '지우'는 ‘용식이’라는 파충류를 키우는 소년으로, 웹툰 작가를 꿈꾸며 인터넷 카페에 작품을 연재한 경험이 있다. 부모의 이혼 이후 아버지는 다른 가정을 꾸렸고, 어머니는 생계를 책임지며 살아왔다. 어머니의 애인인 ‘선호 아저씨’와 함께 살던 중, 암 투병 중이던 어머니가 실족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지우는 그 죽음이 단순한 사고였는지 의심하며 깊은 상처를 안게 되고, 선호 아저씨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용식이를 친구 소리에게 맡긴 채 집을 떠나 지방의 공사장에서 일하게 된다.
  '소리'는 결벽증이 있는 아이로 오해받지만, 사실은 말하지 못한 비밀을 지니고 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았을 때 죽음이 예정된 사람일 경우 특별한 감각을 느끼는 능력 때문이다. 이 능력이 가까운 사람에게까지 적용되면서 소리는 점점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게 된다. 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의 손을 매일 잡고 불안 속에서 지내던 중, 어머니는 항암치료 중 음주운전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이후 소리는 더욱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을 멀리하지만, 수업 시간에 ‘눈’을 소재로 한 지우의 시를 듣고 그림을 그려주며 서서히 다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채운'은 축구 선수를 준비하다 부상으로 꿈을 접고 지우와 소리의 반으로 전학 온 학생이다. 한때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 이후 삶은 급격히 흔들린다. 어떤 사건으로 아버지는 의식을 잃고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어머니는 교도소에 수감되며, 채운은 이모 집에 얹혀살게 된다. 유일한 위안이던 반려견 ‘뭉치’마저 사고로 잃게 되면서, 채운은 극심한 고립과 상실을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소리의 능력을 알게 되며 가까워지고, 지우의 웹툰이 자신의 비밀과 닿아 있음을 알게 되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점차 얽히게 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세 인물은 각기 다른 배경을 지녔지만, 공통적으로 이별과 상실을 삶의 중심에 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이름이 단순한 호명이 아니라, 각 인물의 서사와 성장 방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이다.

소리가 지우에게 그려준 그림을 인공지능으로 구현한 그림.

 

이름에 담긴 의미와 성장의 방향


  ‘지우’는 어머니의 죽음을 단순한 사고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도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은 채 살아간다. 이 의심은 슬픔을 넘어 죄책감이 되고, 누군가에게 짐이 되면 안된다는 마음을 만들어 결국 집을 나가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며 지우는 선호 아저씨의 진심을 마주하고,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어머니에 대한 의심을  ‘지우’면서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하게 된다. ‘지우’라는 이름은 상처를 잊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감정과 오해를 내려놓는 과정을 상징한다.
  ‘소리’는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움직이게 하는 핵심 인물이다. 소리(sound)는 물체가 부딪혀야 발생하는,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현상이다. 작품 속 ‘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어쩌면 각자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아갔을 ‘지우’와 ‘채운’은 ‘소리’로 인해 서로의 삶이 부딪히게 되고, 그로 인해 이야기(발화, narration)가 시작되게 된다. 작품 속에서 ‘이야기’에 대한 ‘지우’와 ‘소리’의 대화를 보면 ‘소리’는 ‘이야기는 늘 시작되’어서 좋다고 한다. 시작이 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즉 ‘소리’는 자신의 능력과 선택을 통해 지우와 채운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면서 각자의 삶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도록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채운’은 가족과의 단절, 반려견 ‘뭉치’의 죽음, 꿈의 좌절로 인해 삶의 곳곳이 비어 있는 인물이다. 그에게 현재의 공간은 아무 의미 없는 텅 빈 곳일 뿐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로 가서 다시 자신의 삶을 채워나가길 원한다. 그러나 지우와 소리와의 관계 속에서, 채운의 삶은 다시 의미와 감정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중요한 점은 이 채움이 과거를 복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통해 삶을 재구성하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채운은 상실 이후의 삶을 다시 채워 가는 인물이다.

이별과 상실이라는 공통의 상처


  이 세 인물은 모두 가장 소중한 존재와의 이별 또는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
  지우는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의심으로 애도의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했고,
  채운은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존재를 상실했거나 단절된 상태로 살아간다.
  소리는 죽음을 예지하는 능력 때문에 어머니를 잃은 후에도 모종의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의 상실은 단순한 슬픔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를 맺는 방식,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 미래의 삶에 대한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서로의 곁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회복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버티고 견딘다. 그 과정에서 상처는 아물고 단단해진다. 
  지우는 웹툰을 그리고, 소리는 그림을 그리고, 채운은 먼 곳으로 떠나는 미래를 상상한다. 소리는 타고난 따뜻함과 아버지와의 안정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세 사람 사이에서 중심축 역할을 한다. 소리는 채운의 아버지의 죽음과 지우의 반려 도마뱀 용식이의 죽음을 겪으며, 어머니에 대해 말하지 못했던 죄책감을 비로소 마주하게 되고, 자신의 상처 역시 조금씩 극복해 간다. 지우는 용식이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선호 아저씨와 마주하며, 자신이 짐이라는 생각과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의심에서 벗어나게 된다. 채운은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듣고 죄책감을 덜어내며, 지우의 웹툰을 통해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면서 한층 성숙해진다.
  이들의 만남은 상실을 없애주지는 않지만, 혼자 감당하던 슬픔을 함께 견딜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세 인물은 각자의 상처를 혼자 감당하던 상태에서, 서로의 이름처럼 기능하는 존재가 된다.  지우는 의심을 지워 가고, 소리는 충돌을 일으키며 변화를 촉발하고, 채운은 관계 속에서 삶을 다시 채운다. 이들의 만남은 상실 이후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낸다.

성장 소설로서의 의미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은 세 청소년이 방학 동안 겪은 일을 통해, 성장 과정에서 마주하는 이별과 상실의 슬픔을 섬세하고 담담한 문장으로 그려낸다. 이 작품은 상실을 단순히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상실을 계기로 일어나는 성찰과 방황, 그리고 타인과의 진솔한 연결과 의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소설은 상실로 마음이 혼란스러운 청소년뿐 아니라, 비슷한 아픔을 간직한 성인 독자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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