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전시,공연

2012년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아이유 콘서트

파란선인장 2013. 1. 26.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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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을 되돌아보며 한 해를 정리하는 글을 쓸까 했지만, 인생살이 다 거기서 거기니까... 그래도 안 쓰자니 아쉬워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하나 써야겠다고 한 걸 이제서야 쓰는 나는야 별 일 없이 바쁜 게으름뱅이. 시간이 꽤 지나버려서 자세하고 생동감있게는 못 쓰겠고, 쓰면서 기억나는 것들을 글로 옮기려 한다. 엉성해도 그러려니 해 주시길.


  때는 바야흐로 2012년 7월 8일 일요일. 두 달 전 미친듯한 광클로 나름 좋은 자리를 얻었다는 뿌듯함과 이제 곧 그녀를 만나리라는 기대감에 가슴이 설레어서 멀미가 날 것 같은 기분으로 부산 KBS홀에서 친구 원을 만났다. 웬만한 고급 양주만큼 나이를 먹고서 온 콘서트가 아이유의 공연이라는 사실은 조금 민망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보다는 어떤 열망과 애정이 더 컸었다. 그런 나를 보고 원은 오덕오덕거렸지만, 몇 시간 뒤 그가 그녀에게 홀딱 반해버리리라곤 그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원은 좋은 친구였다. 너무 가고 싶은 콘서트였는데 부담스런 푯값 등의 이유로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난감해하고 있던 와중에, 툭 던진 말에 덥썩 승낙해주었던 것이다. 다만 소녀시대 콘서트를 같이 간다는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그건 뭐 조건도 아니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원은 자신의 덕후 기질을 나에게 투사했던 것은 아닐까.


  KBS홀 앞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입장을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북적대는 모습에 우리도 얼른 입장을 했다. 그리고 이왕 이런 곳에 온 거, 뭔가 기념될 만한 것을  간직하고 싶어서 기획사에서 마련한 MD상품을 사려고 했는데, 내가 원하고 원했던 포토북은 이미 준비된 수량이 다 팔린 상태였다. 아니 무슨 가내수공업도 아니고 그렇게 조금 만들어서 사람 속을 태울 건 뭔가. 사람 마음이 견물생심이라고 처음부터 없었다면 몰라도 이미 알게 되었고 가지고 싶은 것을 준비 부족으로 못 사게 되니까 많이 아쉬웠다.[각주:1] 하지만 어쩌랴. 체념하고 공연장으로 들어가다가 사람들이 종이에 뭔가를 적고 있길래 저거나 잘 써서 그녀에게 호명이라도 당하자 싶어서 나의 애정과 열정과 흥분된 기분을 가득 담아 사랑의 메세지를 적어서 냈더니 알고보니 공연에 못 온 지인과 전화연결 어쩌구저쩌구 하는 이벤트. 호롤롤로~


  좌석으로 가서 앉으니 역시 예매는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무대와 아주 가까운 곳은 아니었지만, 실물을 볼 수있었고, 무대에 선 그녀와 눈높이가 맞아서 공연 내내 흐뭇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보던 드라마의 한 대사처럼 '그녀와의 거리 삼십보'따위를 중얼대며 즐거운 기분으로 공연을 즐겼다. 그래도 공연 도중 종종 내가 몽골사람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시간이 되자 무대 정면을 가린 채 걸려있던 흰 장막에 영상이 나오면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콘서트 이름인 'Real Fantasy'에 어울리는 컨셉트로 찍은 영상이 끝날 때 쯤, 나는 어떤 강렬한 예감에 사로잡혀 장막 뒤 쪽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 장막은 흰 천으로 된, 작은 구멍들이 있는 것으로 반 투명했기 때문에 뒷공간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동체시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려 이곳 저곳을 살피다 무대 상단 구석진 곳에 서있는 어떤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고, 나같은 놈들이 몇 있었던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잃어버린 여동생을 만난 양 '지은아'를 목놓아 부르기 시작했다.


  어리고 신인인 솔로 가수의 공연에 큰 기대를 가지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지인들이 이 공연을 보길 주저했던 이유 중엔 공연 자체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런 걸 즐기려면 이승환이나 김장훈, 싸이의 공연이 더 적당했다. 오직 빠심 하나로 내 돈과 시간을 여기에 쏟아 부은 것이다. 하지만 기대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받는 감동은 얼마나 큰 것 인가. 공연은 그 자체로도 아주 훌륭했으며 특히 그녀의 노래 실력과 적절한 진행, 거기에 팬 조련능력까지 어우러져 아주 아주 만족스러운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게스트들도 괜찮았다. 위에서 말했던 전화 사연 이벤트를 진행하는 도중에 목소리로만 출연했던 김수현을 빼면 말이다. 왜...왜 수지가 아니었던 거냐! 왜 우리에게 수지의 목소리를 허락하지 않은거냐... 다른 게스트로 '배치기'가 나왔을 때는, 역시 그녀는 음악을 알아 하면서 기뻐했던 것 같다. 그때 당시에 나도 배치기 노래를 상당히 좋아했기에 어떻게든 연관지으려 하고, 혼자 끄덕이며, 후후거리며, 푸쳐핸접하고 투더롸잇 투더렢하면서 흐뭇해했다. 그 다음에 나온 성시경이 정말 대박이었다. 연륜이 묻어나는 진행과 멘트, 감미로운 목소리와 재치로 단 번에 부산 사람들-대부분이 남자들이었던-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리기도 했다. 그 때 성시경의 주도하에 '우리 지은이 제발 좋은 남자 만날 수 있게 해주세요'하며 기도했던 기억도... 그리고 윤현상인가 'K팝스타'출신 가수도 나왔었는데, 로엔과 계약했고, 그녀와 동갑이고, 친구하기로 했다고 하고! 같이 무대를 꾸미면서 다정하게 춤을 추고! 어깨동무도 하고!!! 그 녀석이 벌벌 떠는 걸 보지 못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어도 진작에 났을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꼽는 하이라이트 중에 첫 번째는 그녀가 달을 타고 공중에 매달린 채 '복숭아'를 불렀을 때였다. 감미로운 통키타 소리에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가 달달하게 무대를 넘어 온 공연장을 채우고 있었다. 며칠 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봤던 무대에서 중간에 '저랑 결혼해 주실래요?'라는 말을 넣은 걸 봐서 이번에도 하겠구나, 올커니 내가 거기에 대답하리라고 다짐하며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부분.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로, 성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내 온 몸을 진동판 삼아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문득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부산사투리로)오빠야 아이유 좋나?"[각주:2]

 

  으헝. 흐미. 요 깜찍한 가시나 보소. 아이고 부산 온다꼬 또 부산 사투리로 준비했는갑네. 욕 봤데이. 니 그른 점 때문에 내가 니 좋아한다이가. 그래 오빠야도 니가 억수로 좋다. 가시나 사투리 쥐기네, 라는 메시지를 준비했던 자세 그대로 전방에 5초간 대답해 주었다.


 "오우오옷옥옿옫옺옽옻옭왏왃웋웧윃욷웾엡엑홛호호ㅎ햫햦햐회햦ㅎ하ㅗㄴ아ㅑ킿호힞히샿티ㅑㅎㅅ~"


  또 한 번은 이제 성인이 된 그녀가 특별 무대를 꾸몄을 때 였다. 이전까지는 비의 '레이니즘'을 보여줘 왔던 것 같았는데, 어떤 방송에서 보여 준 이후로는 콘서트에서는 하지 않는 듯 했다. 대신에 그녀는 '성인식'이라는 레알깜놀두근두근한 무대로 우리 앞에 나타나 있었다. 그래, 이제 너도 더이상 소녀가 아니구나. 그러나 지은아, 이런 무대가 솔직히 너무 좋고 고맙지만, 너의 소녀로서의 귀여운 매력도 우리는 사랑한단다. 앞으로도 계속...하하하 그래 그래, 이벤트성인 이런 무대 한 번으로 오빠가 너무 앞서 나갔지? 오냐, 그럼 오늘은 더이상 소녀이지 말자, 우리도 오늘만은 더이상 망설이지 않겠다라고


 "꾸엘레릭화미히망홎댜이마횥참오야힙ㅈ도;아아어잉미아러ㅣ이ㅏ앙왜야외암ㅇ야오야오햐ㅗ햐앍!"


했다.


  마지막은 그녀의 댄스곡들을 연달아 불렀던 순간이었다. '있잖아'부터 '좋은 날'까지 광분한 상태로 우리는 쭉 달렸던 것 같다. 중간에 '마쉬멜로우'를 부를 때는 무대에서 실제 마쉬멜로우가 발사되어 날아와 허겁지겁 땅거지 마냥 주워먹기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녀는 우리를 능숙하게 조련했는데, 가장 능욕적이었던 순간은 '좋은 날'을 부를 때였다. 공연을 보면서 완전히 생각이 바뀌긴 했지만, 애초에 이 콘서트에서 가장 기다렸던 순간이 '좋은 날'을 부르는 그녀를 보는 것이었다. 드디어 그 순간이 왔을 때, 그녀는 매우 미안해 하며, 그동안 너무 많이 해서 목상태가 좋지 않아 3단 고음을 할 수 없다고 심각하게 고백한 것이었다. 내가 지불한 콘서트 티켓값 중에서 4만원이 '좋은 날' 때문에 지불한 거란 걸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하……. 하지만 어쩌랴. 목이 아프다는데. 왜 하필 이런 일은 나에게만 일어나는가 하며, 인생의 길 위에서 끊임없이 내 발목을 잡고 있는 불운에 체념한 채로, 그녀의 부탁대로 3단 고음은 우리가 대신 하기로 하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아이가 된다고 누군가 그랬지? 실망으로 상심한 마음에도 또 난 그걸 또 했네? 암 인 마 드리이이임~히이이임~이이이이이이익~. 전날 관객과 비교할 거라는 그녀의 말을 듣고 승부욕에 불타올라 되지도 않는 3단 고음을 쥐어짜냈네, 또. 근데 이 요망한 것이 그래도 안 하면 안되죠 하며 3단 고음을 하네, 또. 난 또 소름이 돋은 채로 울고 있었네. 아이유느님 아이유느님 하면서. 


  그때의 일들을 추억하는 글을 쓰니까 메말랐던 나무가 잎이 무성해지듯 그 때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참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나이 먹고 한심하다고 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겐 무료한 삶에 뿌려진 후추같은 기억들이다. 얼마나 좋았었는지 그녀의 몸에서 눈부시게 빛이 나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포토타임 때 찍은 사진을 확인해 보니까 가끔은 초자연적으로 느껴지는 현상도 그 강도가 강렬하면 과학적으로 증거가 남는 모양이다. 아래에 첨부한 사진을 보면서 당시의 에너지를 당신도 느껴보길. 그리고 그냥 그러려니 해주길.




-끝-

  1. 검색해보니 콘서트DVD나왔는데 거기에 포토북도 포함되어있다고. 음... 이번 콘서트 DVD발매 안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음... [본문으로]
  2. 이를테면 이런느낌 http://youtu.be/dLmUam80y0w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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