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casting/우물쭈물 사는 이야기

쿨하게 혼자 영화보기.

파란선인장 2009. 7. 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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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하지만 심플한 멋이 있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는다. 헤어스타일은 꽤 괜찮지만, 굳이 멋을 위해 모자를 쓴다. 그 위에 쓴 헤드폰에서는 얼마 전에 구입한 서태지 8집의 노래가 나오고 있다. 씨디플레이어와 핸드폰, 지갑을 넣은 작은 가방을 옆으로 메고 집을 나선다. 한낮의 후덥지근함이 사라진 여름밤의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적시며 지나간다. 오늘 밤 난 쿨하게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

 영화 '마더'가 너무 보고싶었다. 하지만 시간상의 문제도 있었고, 사람의 문제도 있었다. 그렇다고 같이 영화볼 사람 한 명 없을 정도로 내 인맥이 형편없지는 않다. 아니, 사실 좀 형편없는 편이긴 하지만 아직 바닥을 친 건 아니란 말이다. 같이 보러 갈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타인과 함께 봤거나 취향이 달라 관람불가의지를 확고히 한 사람들뿐이었다. 괜찮다. 이미 본 영화를 다시 보자고 할 수도 없고, 보기 싫다는데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없으니까. 괜찮다. 배려야 말로 최고의 미덕이니까.

 제목이 '마더'라 엄마와 함께 보러 갈까 생각했다. 그래서 몇 주전 엄마에게 제안한 적이있었다. 그때 내가 알던 영화의 대강의 스토리는 바보 아들의 살인혐의를 벗기려고 고군분투하다 자기아들이 진범임을 알고도 덮어버리는 엄마에 관한 이야기였다.[각주:1] 그래서 엄마와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만약에 엄마도 저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엄마도 김혜자처럼 날 감싸줄거냐고. 예상되는 엄마의 대답으로 나는 모정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럼 난 엄마의 사랑안에서 행복함을 느끼겠지.

 "엄마, 영화보러 갈래?"
 "그래. 무슨 영환데?"
 "마더"
 "그래, 보러가자. 언제 볼건데?"
 "오늘 저녁에 볼까?"
 "알겠다. 일마치고 연락할께. 근데 무슨 내용이고?"
 "대충 뭐... 살인자 아들나오고, 그 엄마나오고... 사람죽이고 이런거 나오는데 괜찮제?"
 "아니, 그렇다면 난 안 보련다."

 생각해보면 나의 이 쿨함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리라. 그렇게 또 한번의 관람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었다. 결국 안 보려고 했는데, 곧 내릴 것 같던 영화가 아직 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시도 한 적이 있었다. 그날은 자전거를 끌고 동네에 있는 극장에 갔었다. 단 일 분의 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라는 내 신념에 맞추어, 영화 상영시간10분을 남기고 극장에 도착했었다. 매표소에 가서 표를 구매하고 상영관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절약하는 내 모습을 흐뭇해하며 자전거를 자물쇠로 잠그려고 호주머니를 뒤졌는데, 열쇠가 없었다. 아, 가방에 넣었던 모양이로군. 하지만 가방에서도 열쇠를 찾지 못했었다. 그렇게 10분동안 열쇠를 찾아 뒤적거리다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렇게 DVD를 기다리던 나였다. 주말 저녁 무한도전이 끝나고 나니 티비도 볼 게 없고 해서 인터넷을 유영하다 혹시나 하고 CGV홈페이지에 가서 '마더' 상영 시간을 확인해봤더니 아직도 하고 있는게 아닌가. 너무나 피곤해서 원래는 9시에 취침하려고 했던 나였다. 영화시작시간은 9시 10분. 갈까말까 하다가 어차피 내일이 일요일이니 보자고, 보고야 말겠다고, 오냐 내 기필코 봐주겠다고 다짐을 한 것이다.

 어둑어둑한 길을 걸어서 극장을 향한다. 자전거를 타고 갈까했지만, 왠지 내키지 않아 놔두고 왔다. 밤이라지만 여름인지라 좀 걷다보니 더웠다. 헤드폰을 쓴 귀에 땀이 채이는 것 같다. 하지만 결코 벗지는 않는다. 최상의 음질로 음악을 향유하기 위해선 이정도 땀쯤이야 얼마든지 흘리겠다고 생각하며 더 힘차게 걷는다.

 이렇게 늦은 밤 영화관의 그 북적임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난 한산할 줄 알았었다. 하지만 그곳엔 온갖 커플들과 가족들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파도속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헤쳐나갔다. 능숙하게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린다. 헤드폰을 벗어 익숙하게 목에 걸어 놓고선 내 번호가 뜬 창구로 갔다. 막 창구에 다다르려는 순간 어떤 아주머니가 내 앞을 치고 들어온다. 분명 창구번호는 내 번호표의 번호와 일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는 도대체 뭥미? 슬쩍 보니까 번호표의 번호가 무려 나보다 다섯 번 앞의 번호였다. 흠, 이 아주머니는 아마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게 아직 익숙하지 않으신가 보군. 그래서 아마 자기 차례를 놓친걸꺼야. 뭐, 그렇담 잠시 기다려주지.

 하지만 이 아줌마는 몇 분을 내 앞에서 극장직원과 실갱이를 벌였다. 내 표정을 보고 난처해하는 직원의 빠른 설득으로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난 최대한 차분하고 젠틀하게 내가 볼 영화를 말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직원은 갈수록 더 당황해하며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괜찮습니다, 전 나쁜 사람 아니에요. 전 그냥 표를 구입하고 갈 겁니다. 최대한 그런 의미를 담은 표정을 지었다. 성인 2명이냐고 물으며 계산을 하려는 직원에게 재빨리 고개를 흔들며, 한 명이라고 말한다. 계산을 위해서 난 카드를 꺼낸다. 훗, 나 카드쓰는 사람이야. 난 최대한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한 차가운 도시남자스럽게 체크카드를 꺼내 자심감 넘치는 말투로 말했다.
 
 "캐쉬백으로 할인해주세요."

 훗. 어때 좀 놀랬는가. 난 옼 캐쉬백[각주:2] 쓰는 남자다.
 
 "고객님, 7000원 할인 가능합니다. 할인 해드릴까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계산을 하던 직원이 당황해했다. 앞의 아줌마의 이상한 요구에 쩔쩔매던 그 직원은 나의 옼 캐쉬백에 패닉에 빠진 것 같았다. 이미 혼이 빠진 직원은 캐쉬백으로 계산 할 줄 몰라 옆에 있던 직원에게 부탁을 했고, 그 직원도 손님이 많아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내 쳌카드를 들고 이리저리 급하게 해보더니, 여기선 안된다며 어디론가 뛰어가 버렸다. 훗. 역시 옼 캐쉬백포인트는 엄청나군. 근데 이상하게도 언제나 나 혼자 어딜가면 이런 일이 생기곤 했다. 내가 내놓는 주문, 결제수단, 질문, 요구 등에 언제나 그들은 당황해 했고[각주:3], 그럴때마다 최소한 2인 이상의 직원들이 바빠지곤 했었다. 결국엔 결제가 되었고, 총 영화비 8000원 중에서 할인받은 금액을 빼고나니 1000원이 남는다. 난 그냥 쳌카드로 계산해 달라고 말하려다, 또 이들이 분주해질까 염려되어 현금 10000원을 건넨다. 9000원을 거슬러 주는 그들의 친절한 미소 뒤에 어떤 미묘한 시선-이를테면 이새낀 뭐야라는 그런 느낌?-을 느끼며 창구를 빠져 나왔다.

 빈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리곤 극장에 온 많은 무리의 사람들을 본다. 헤드폰을 다시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헤드폰의 음악으로 그들과 나 사이의 공간이 분리된다. 사실 이렇게 혼자 영화보는 건 나에겐 꽤나 익숙한 일이다. 영화관람이란게 어차피 상영관에 들어가면 의자에 앉아서 화면을 보면서 즐기는 여가활동이다. 여기에 필요한건 스크린과 그것을 보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이 앉을 의자 정도이다. 여러사람이 같이 영화를 보러 간다해도 어차피 의자에 앉아서 모두가 같은 화면을 각자 응시하다가 나오는 게 아닌가. 굳이 누군가와 함께 와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혼자 오면 안되는 그 어떤 금지가 존재하는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나를 이상하게 혹은 불쌍하게 쳐다보는 것일까. 난 바쁜 일상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또 그런 시간을 충분히 즐기는 차가운, 그렇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한 도시 남자라고.

 이번에는 표도 성공적으로 구입했고, 시간도 약간은 남아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극장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한쪽 구석에 있는 오락기에서는 어떤 아저씨의 음성이 커지는가 싶더니 결국 '빡'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아이 머리를 때려 날 놀래켰고[각주:4], 극장의 다른 공간에서는 긴 생머리와 정열적인 빨강 미니스커트 아래로 뻗은 늘씬한 다리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뒷태의 여성은 또각거리며 여기저기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돌아서는 그 여성의 앞모습을 보는 순간 한 아주머니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감이 내 마음속에 퍼지기도 했다. 시간이 되어 상영관으로 들어갔고, 극장의 한 가운데서 양 옆으로 몇 칸씩 사람들과 띄어져 편하게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나니 혼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 대해 너무 낭만적인 기대를 가졌던 것 같다. 감독이 봉준호감독인데. 만약에 엄마랑 왔다면 좀 많이 불편했겠단 생각에 혼자오기 잘했다 싶었다. 그렇게 뿌듯해 하면서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밤길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언제나 그렇듯,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글은~ 글일뿐~ 오해하지~ 말자~??ㅎㅎㅎ


어떻게 좀 쿨해지셨나요?ㅎㅎ

  1. 불행히도 난 친절한 몇몇 블로거분들의 '제목'에 의해 영화 스토리의 대부분을 알아버렸다. 물론 영화에는 그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본문으로]
  2. 영문표기 OK Cashback [본문으로]
  3. 하지만 그것들이 결코 황당무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존재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잘 안 하는 것들이라고나 할까. [본문으로]
  4. 심하게 놀라진 않았다. 약간 움찔한 정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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