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casting/우물쭈물 사는 이야기

쓰다보니 너무 길어진 100번째 글

파란선인장 2009. 5. 1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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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0번째 글

 이제 한 걸음을 뗀 것 같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드디어 100번째 글이다. 실제 글 수는 현재까지 96개지만, 작성하다가 지우거나 저작권이 무서워 지운 글들, 써놓고 부끄러워서 지운 글들까지 치면 100번째 글이 된다. 전문블로거분들이나 다량의 글을 작성하시는 블로거분들이 들으면 '뭥미? 겨우 그런걸로 설레발이냐?' 라고 한심하게 여기실지 모르나, 나처럼 게으른 이에게 이 100번째 글은 나름 의미가 있는 글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100번째 글을 기점으로 변화?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 글을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뭔가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기똥찬 글을 적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뭔가 이벤트를 할 것도 아니다. 그러기엔 능력도 없고 재화도 부족하다. 다만 그냥 이렇게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들과 블로그를 운영하는 나름의 생각들을 언젠가 한번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해오던 것들을 두서없이 풀어보려 한다.

 2. 여기까지 흘러온 길

 내가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사진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1학년때부터였던 것 같다. 당시 듣던 수업중에 개인홈페이지를 만드는 수업이 있었고, 기말과제로 자신의 학교계정에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엔 정말 지극히나 단순하면서도 개인적인 홈페이지였다. 근데 은근히 재미가 있었다. 그 날의 이야기를 써놓거나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정 등을 적어놓으면 나를 아는 누군가 와서 공감해주고 같이 고민해주고 하는 것에 신선함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게 재미있어서 홈페이지 만드는 법을 좀 더 배워서 무료계정을 구해다 홈페이지를 만들었었다. 여름방학 한달동안을 홈페이지 만든다고 끙끙거린 끝에 완성된 홈페이지에는 여러가지 잡다한 이야기를 쓴 일기와 내가 찍은 사진을 올려었다. 정말 대학교 1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걸맞게 유치찬란했던 사진과 글들에 천사같던 지인들이 와서 좋은 말들을 남겨주기도 했었다. 나름 사랑받던 그곳은 입대와 더불어 없어져 버렸다. 아쉬웠지만 2년간 주인도 없는 홈페이지를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후 전역을 하고서는 당시 대유행이었던 미니홈피에다가 같지않은 글 따위를 끄적이다가 '페이퍼'라는 서비스를 알게 되었고, 거기에서 또 사진과 글을 적었었다. 부족한 실력에 비해 많은 구독자가 생기기도 했었다. 당시의 '페이퍼'는 나처럼 게으른 이에게는 딱  맞는 서비스였다. 매일 발행할 필요가 없었기에 글에 대한 부담도 적었고, 일단 구독하기로 한 사람들에게는 자동으로 알려주고 했으니, 작자와 독자 상호간에 편리했다. 근데 망할 싸이월드에서 블로그를 띄우기 위해 이 페이퍼를 없애버린 것이다. 그래서 난 새로운 둥지를 찾게 되었고 어느 자비로운 분의 초대를 받아 티스토리에 자리를 틀 수 있게 되었다.

페이퍼 할 때 참여했던 페이퍼진에서 추천페이퍼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이제는 뭐 지나간 일이 되었다.



3. 블로그는 어렵다

 좋게만 보인 티스토리는 블로그에 대해서 아는게 없던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숙제였다. 블로그시스템 자체를 이해하는데도 시간이 걸렸고, 스킨하나 정하는데도 며칠을 고민했었다. 그리고 내가 쓰는 글이 알지도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도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글 하나 적는데 온 노력을 다해 썼다. 혹시나 책 잡힐까 몇 번을 다시 보고 고쳐 썼고, 글감이 떠오르면 지체없이 글 쓰기를 준비했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 비해 방문자수는 형편없었으며, 거기서 오는 실망감이 꽤나 컸었다. 

 처음에는 블로그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주위사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근데 너무 방문자도 없고 댓글 하나 안 달리니까(지금도 초창기때 쓴 글에는 댓글이 없다.ㅠㅠ) 하나 둘씩 알리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친구중에 블로그를 하는 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알아가기 시작하니까 블로그에 엄청난 흥미가 생기고 집착하기 시작했다.

 4. 나름의 원칙

 이 블로그를 조금이라도 둘러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 주제없이 아무거나 막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내 블로그 운영방침(이라니까 웬지 거북하긴하다;;;)이었다. 쓰고 싶은 글은 다 쓰자. 그래서 카테고리도 꽤나 많다. 어떤 연관성 없이 다방면에 걸쳐진 채로 분류가 되어있다. 근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난 다른 훌륭하신 분들처럼 어떤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난 그냥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그 때 당시의 내가 가졌던 생각들을 남기고, 그를 통해 마음이 맞는 사람과 소통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렇듯 자유스러운 블로그 운영에도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최대한 '나'에 대해서 쓸 것. 어떤 사건에 대해서 글을 쓸 때는 사건의 전달이 아닌 거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으려 했다. 또한 현재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 대한 기록이고자 했다. 그렇지 않은 글쓰기는 나에게 의미 없는 고행일 뿐이며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시사적인 글도 꽤 적었었다. 일반적인 상식만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비판당할만큼 현 정부의 작태가 한심스러웠기 때문에 나도 꽤나 비판적인 글들을 적었었다. 하지만 블로고스피어를 돌아다니다 보니 훌륭한 글들을 더 많이 보게 되면서 차츰 줄이게 되었다.

 연예인에 대한 글도 그닥 적지 않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내가 적지 않아도 이미 많은 분들이 다루고 있어서 돌아다니며 읽다보면 굳이 내가 적어야 할 필요를 못 느낄 때가 많아서이다. 연예인들의 능력부족에 대해서는 그들의 노력을 생각하면 차마 적을 수가 없었고,[각주:1] 도덕적인 문제나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처음에 밝혔던 이유와 더불어, 연예인에게 필요이상으로 언론이나 대중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생각하기때문에 거기에 나까지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은 들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연예인에게 갖는 관심만큼 정치나 사회에 가졌다면 우리는 조금은 더 살만한 세상에 살고 있지 않았을까.[각주:2]

시사에 관련 글은 정말 전문적인 지식없이 혼자만의 감상들을 적었었는데, 그래도 좋게 봐주신 분들이 있어서 좋았다. 역시 중요한 건 마음인 듯.^^;;



 5. 블로그를 하는 이유

 이제 이 글 이후로는 블로그 활동에 투자하는 시간을 많이 줄이고자 한다. 난 블로그로 먹고 살 정도의 실력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그래서 먹고 살 궁리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할 것 같다. 그렇다고 아주 손을 떼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 블로깅은 젊은 시절 나의 일부라도 흔적을 남기기 위한 행위이며, 그를 통해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는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지는 않아도 소중한 인연을 만났고, 난 그 인연을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서로 얼굴도 모르고 사는 곳도 몰라도 글을 통해 알게 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사람은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동양에서 가장 존경을 받았던 성인인 공자도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각주:3] 라 하였던 것이다. 굳이 먼 곳에 있는 벗이 아니어도 된다. 가까이 있었지만 서로 알지 못했던 점들에 대해서 알아가고 이야기를 나누며 뜻을 함께하고 나눌 수 있는 것 또한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솔직히 이런 글은 좀 부끄럽다. 마치 세살짜리가 인생에 대해서 말하는 모양새 같아서 민망할 뿐이다. 그래도 세살짜리에게도 그 나름의 인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너그러이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이제 100m를 달리고서는 걸어가겠다고 하는 꼴이니 근성없게 보일 수도 있겠다. '사는게 힘들어서'라는 변명과 함께 그래도 완주해보겠다고 다짐해본다. 이러니까 무슨 블로그를 접는 것 같은데, 그런게 아니라 지금보다 더 띄엄띄엄 글을 쓰겠다는 말이다. 한번 폼잡아볼랬더니 의미전달에 실패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정말 하고싶었던 말은, 앞으로 뜸해지더라도 종종 들려서 왔다간 흔적을 남겨주시라는 부탁 혹은 구걸이었음을 수줍어하며 밝혀 본다.


  1. 아무리 날로 먹는 연예인이라고 할 지라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의 위치에 도달하기까지는 많은 노력을 했으리라고 생각하기때문이다. [본문으로]
  2. 그렇지만 나도 연예인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명수형에 대해 쓴 글이었는데, 나름대로 애정을 바탕으로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던 글이다. 다른 사람같았으면 쓰지 않았을 글이랄까. 물론 베스트를 노린 의도도 조금 있었다. [본문으로]
  3. 정말 먼 곳에 있는 벗이 와서 즐겁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지향하고 배우는 뜻을 같이 하는 자를 먼 곳과 같은 뜻밖의 곳에서 만나면 참 즐겁다라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의도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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