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casting/우물쭈물 사는 이야기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였던가 - 싱그러웠던 5월의 어느 2박3일

파란선인장 2009. 5. 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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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의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떠다니지 않고, 밝은 햇살이 나뭇잎과 가지들 사이에서 반짝이고 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에는 달콤한 아카시아 꽃 향기가 실려 날아와 내 코를 간질인다.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며 머리카락을 살랑이게 하는 바람을 맞으며 크게 숨을 들이 쉰다. 푸른 산의 맑은 공기를 들이 마시자 머리가 맑아져 온다. 바쁜 일상에 쫓기며 살다가 갑자기 찾아온 이 꿀같은 휴식에 그동안 갖지 못했던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인간의 삶에서 언젠가 한번은 찾아온다는 자아탐색의 시간.

나는 누구인가, 또 여긴 어딘가.

 진지하게 이런 의문에 의문을 달며 끝없는 사색의 동굴을 탐험하던 그 때, 그런 나의 사색을 방해하는 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선배님, 지정된 장소에서만 휴식을 취하시겠습니다.

 무슨말이야, 전혀 문법에 맞지 않잖아. 잠깐 흐트러진 정신을 다시 가다듬고 다시 사색의 동굴로 돌아가려할 때 어디선가 날아오는 지독한 담배연기, 그리고 짤랑거리는 동전들 소리, 이리저리 움직이는 무리들에서 날려오는 흙먼지가 나의 귀환을 막아선다. 나는 누구였던가. 아니, 이제 그런 질문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나는 그냥 예비군일 뿐이다. 3일째 나는 땡볕에서 그늘을 찾아다니고 있고, 그늘 아래에선 잠을 자거나 멍하게 앉아있을 뿐이다. 이 땡볕아래에서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흘러가는 시간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또 여긴 어디인가, 여기서 난 뭐하는 짓인가 - 3일간 나를 사로잡았던 명제들.



 동원훈련을 가기 전에는 무척이나 짜증이 났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느라 바쁜 이 시기에, 한 글자라도 더 봐야하고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쉬어야 할 나에게 동원지정이라니. 먹고 살 걱정에 하루라도 편할 날이 없는 나에게 3일동안 뻘짓을 하라고 시키는 병무청이 다시금 증오스러웠다. 그러나 천성이 긍정적인 나는 곧 마음을 다시 잡고 좋게 생각하려고 했다. 
 

그래, 3일간 휴식의 시간을 갖도록 하자.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계획도 짜보고, 그 동안 소홀했던 블로그에 쓸 글감도 생각해보자구. 훗,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잖아, 이거.


 그러나 난 3일간 휴식은 커녕 멍잡기에 여념이 없었고, 당연 블로그 글감이라고 할 만한 것은 하나도 건져오지 못했다. 대신에 1년치 담배연기와 흙먼지를 마음껏 마시고 왔으며, 땡볕아래에서 이리저리 다닌다고 얼굴은 검게 타버렸다.(안그래도 검은데ㅠㅠ) 게다가 지난 2박3일은 30도를 넘는 기온을 기록해, 여벌로 가져갔던 속옷들을 모두 소비해 버리기도 했다. 생긴거 답지 않게 꽤나 예민한 나는 잠자리를 많이 타는데, 주위에 코를 고는 사람이 있으면 잠을 거의 못 잔다. 근데 내 양 옆에 자리한 아저씨들이 둘 다 한 코골이씩들 하시는 분들이셨다. 게다가 한 사람은 코를 안 골 때면 이를 갈아서 내 이가 갈리게 하기도 했다. 

내...내가 동원지정자라니....내가 동원이라니!!!!



 그렇게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중에서도 의미있는 일들도 있었다. 걱정스러웠던 짬밥은 예상과는 다르게 아주 맛이 있었다.(설마 나 군인 체질일까;;;;) 대대정도 되면 찐밥을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인플루엔자 사건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돼지고기도 꽤나 자주 먹었다. 거기다 오랜만에 맛보는 군대 부식까지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불편하기도 했지만 샤워도 할 수 있었고, 반가웠던 PX에서 맛있는 것들을 먹어 볼 수도 있었다.

 오랜만에 군복을 입고 또 훈련을 받고 해서 그런지 예전 군대있을 때의 일들도 많이 생각이 났다. 주말마다 눈 치운 기억, 단체로 군장싸고 연병장 돌던 기억, 분대원덕에 혼자서 군장메고 오리걸음으로 연병장 돌던 기억, 축구했던 기억, 애들과 장난치고 놀거나 혼내던 기억들, 훈련받았던 기억들, GOP에서 근무하던 기억, 북한 병사가 들판에서 똥싸는거 관측장비로 보던 기억까지. 그때는 정말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다 추억이 되어버렸다. 같이 군생활을 했던 애들 생각도 많이 났다. 다들 뭐하고 살고 있을까. 

 조교들 생활하는 거 보니까 더욱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요즘엔 군대가 2년도 안된다 그러던데. 그래도 그들은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질테지. 최전방이든 후방이든 군생활은 누구에게나 다 힘든거니까. 한가지 눈에들어오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활동복의 변화였다. 내가 입대했을 때는 짬 좀 먹었다하는 선임들은 남색 활동복을 입고 있었고, 그 밑으로는 주황색 활동복을 입었었다. 그때는 전역하는 선임들한테 남색 활동복 받으려고 안달이였는데. 국방부에서도 그런 사실을 알았는지, 짙은 회색(이런 색을 쥐색이라고 하던데)으로 컬러를 바꾸고 등에는 글귀까지 새겨넣은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주황색 활동복을 디자인 한 사람은 컬러센스만은 확실히 시대를 앞서 나간듯도 하다. 2009년 트렌드는 비비드 컬러라는데, 난 이제껏 그 활동복의 주황색보다 비비드한 주황색은 본 적이 없다.

 그렇게 2박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이제 집에 간다는 기쁨으로 기분좋게 치른 퇴소식이후에 마지막으로 짜증이 샘솟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훈련필증을 받으려고 한 줄로 잘 서있던 예비군들은 필증을 나눠주던 간부와 조교가 순서와 상관없이 이름을 부르며 나눠준 덕분에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해버렸다. 이번엔 안 그럴줄 알았는데, 결국엔 매년 벌어지는 일이 또 벌어지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난 그들사이에서 다시 땀으로 범벅이 되어야 했고, 언제나 이런데는 운이 없던 나는 거의 마지막에 필증과 함께 소지품과 신분증을 돌려받았고, 겨우 버스에 타서 마지막이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한 나의 모습을 굳이 말하자면, 머리는 떡지고 먼지를 뒤집어쓴 군복을 입고 검게 그을린 얼굴엔 알 수 없는 분비물들에 의해 번들거렸고 그 분비물들에는 다시 먼지가 엉겨붙어있었다. 제 색깔을 잃은 전투화속에서 끄집어 낸 발에서는 출생이후 내 신체에서 맡아본 것 중에서 최악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군복과 전투화를 벗고 샤워를 하면서 나는 다시 3일전의 나로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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