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는 존경하지만, 한국 교회는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교회엔 예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내가 모든 한국 교회가 어떤 모습인지 하나하나 일일이 살펴본 것도 아닐뿐더러, 나 스스로도 모든 교회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교회는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로 이웃에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내 주위의 기독교인들중에서도 정말 본받고 싶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의 대다수는 교회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 또한 그렇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기독교인들은 약속시간에 급히 가야하는데 자꾸만 잡고 말을 시키는 사람들이었으며, 휴일 낮에 조용히 집에서 쉬고있는데 요란스레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들이었으며, 예수를 믿지 않으면 무조건 지옥에 떨어진다는 그들만의 진리를 확성기에 대고 소리치는 사람들이거나, 우상을 숭배해서는 안된다며 엄한 단군상이나 불상을 부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은 그들이 그렇게 진실하게 믿는다는 예수가 안타까울 때도 있다. 난 기독교인도 아니고, 성당에도 가지 않았으며, 성경도 따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예수가 무엇을 위해 십자가를 멨는지 정도는 안다. 그는 '사랑'이라는 인간에게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를 전파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물며 '원수도 사랑하라'라고 했으니, 그가 말한 사랑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해서 결국에는 '인류애'로 발전시키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사실 이 '사랑'이란 말이 참 정의내리기 어려운 말이긴 하다. 그렇지만 위에서 언급한 일부 기독교인들이 행하는 행동이 예수가 말한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임에는 틀립없다. 틈만나면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죽이고 험담하고 배신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가련했으면 그렇게 험난하고 힘든 고난을 겪으면서까지 서로 사랑하라는 메세지를 전했던 예수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부 기독교 인들이 벌이고 있는 일련의 현상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깊게 한숨을 내쉴 것이다. '내 그리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거늘...' 1
사랑이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감정이나 행동만 가지고는 성립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성간에 있어서도 한쪽만 사랑하는 것은 완전한 사랑이 아니며, 그 사랑의 크기가 차이는 날 망정, 서로간에 사랑해야 그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이는 부모와 자식간에도 마찬가지이고(물론 이 경우에는 부모의 사랑이 훨씬 크겠지만), 친구사이에도 해당하며 이웃간에도 물론 해당된다. 일부 무리를 일으키는 기독교인들도 어쩌면 무지한 자신의 이웃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외쳐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일방적인 사랑'이야 말로 예수의 가르침을 행하는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배려와 이해없는 사랑은 간섭과 집착일 뿐임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아, 이 나라에서 다시 부활해 주시면 안되나요? 당신의 어린양들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가르침을 주시면 안되나요?
한 때 나는 웨딩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예식장이 아닌 곳에서 열리는 결혼식을 위해 필요한 여러 세팅을 하고 드라이아이스를 뿌리고 비누방울도 날려주는 아르바이트였다. 그 때 열렸던 결혼식 중에 한 90% 이상은 교회에서 열렸었다. 비싼 예식장을 빌리느니 차라리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결혼을 하겠다는 경제적인 이유와 함께, 종교적인 이유도 큰 장소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 때 정말 부산에 있는 웬만한 교회는 다 다녀봤는데, 그 때의 경험들이 교회에 대한 나의 불만을 엄청나게 커지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규모의 건물들이었다. '도대체 교회가 이렇게 크고 화려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하는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누굴 위한 건물인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다. 한 평생 힘들고 고생하신 예수님을 위해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지어다 바치는 것인지, 신도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교회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함인지를 판단할 수가 없다. 논산훈련소에서 교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목사님이 하신 말씀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다. 아주 자랑스러워 하시며 하신 말씀.
"이 교회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교회. 난 무지 자랑스러움."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무조건적인 헌금강요이다. 물론 어느 종교에서나 신도들로 부터의 헌금은 필요하다. 종교적인 활동을 위해 필요한 자금도 있어야 하고, 가여운 이웃들을 도와 줄 돈도 필요하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너무나 강제적이다. 헌금을 안 하면 믿음이 부족한 것으로 치부한다. 그리고 내가 봤던 어떤 교회에서는 헌금봉투를 신도들에게 나눠줬는데, 봉투에는 헌금을 독촉하는 글귀가 써 있었다. 교회 곳곳에 헌금을 내라는 현수막들이 성경의 각 구절들을 짜집기해서 마치 하나님이 그리 말씀하신것 처럼, 예수님이 원하는 것처럼 만들어져 여기저기에 눈에 잘 띄도록 붙어있었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창고이니 풍족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풍족하게 하는 것이라'는 글이었나?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교회가 커지고 돈이 많아지면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그래, 잘한다.'라며 좋아하시겠나? 이건 말도 안되는 해석이다. 교회를 풍족하게 하라는 것이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하라고 해석하는 목사가 과연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처할 수 있을까.
오늘이 부활절이라고 하길래, 평소에 생각했던 것들을 적어보았다. (물론 다 적지는 못했다. 다 적으려면 5부작으로도 모자랄 것 같다.) 며칠 전에 한 아주머니께서 예수님의 계시를 받고 우상숭배는 안된다며 불상을 부쉈다는 뉴스를 봤다.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유명한 목사는 불교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봉사'라는 이름하에 아프가니스탄에 갔다가 인질이 되고, 소중한 목숨까지 잃어버리고, 그 지역에 우리나라의 이미지만 나쁘게 만들어, 현재는 한국인이 이슬람의 테러단체들의 주 표적이 되게까지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교회 장로 출신의 어떤 사람은 되도 않는 정책과 똥고집으로 우리나라를 삽질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있다. 도대체 그 훌륭한 예수를 믿는 다고 자처하는 이들의 행동에서 전혀 예수를 느낄 수 없음은 무엇때문일까. 부활절을 맞이해 나는 예수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예수님, 당신을 믿는다면서 당신의 가르침은 안중에도 없는 저들을 당신을 믿지 않는 제가 '사랑'으로 감싸고 이해해야 하는 겁니까?"
왜 기독교에서는 이런 분들이 안 나오시는지, 스스로 자문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 교회도 당연히 안간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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