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소소하면서 따뜻한 소통...
Review/TV

그 겨울, 바람이 분다 - 진실과 거짓, 진심과 가식의 사이

by 파란선인장 2013.03.27


  흔히 진실과 진심은 혼동되어 인식되는 경우가 많지만, 둘은 엄연히 뜻이 다르다. 전자가 사실에 기반하여 거짓 없음을 뜻하는 데 반해 후자는 거짓이 없는 마음을 의미한다. 즉, 진실은 일어난 사건이 얼마나 사실에 기반해 있는가를 잣대로 삼는다면, 진심은 어떤 사건을 발생시킨 주체의 정직함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 보더라도 그 둘의 차이가 얼만큼인지 평소에는 구분하기 어렵다.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이 '진실'과 '진심'의 간극을 뼈저리게 보여주고 있다.

"간난장이일때 나무 밑에 버려져서 나무 수. 보육원 앞에 나무가 많아서 나무 수. 보육원 원장이 지었어."

  드라마에선 그 간격을 '오수'와 '오영', 그리고 '왕비서'라는 세 명의 인물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의 이름으로 '오수'는 꽤나 낯선 이름이다. '오수'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연상시키는 뜻은 시궁창에서나 볼 수 있는 구정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드라마에서는 나무 밑에서 주운 아이라서, 보육원에 나무가 많아서 '나무 수()'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내력까지 설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작가는 작품에서 쓸모 없는 것을 설명하지 않는 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이름에는 특별한 의미가 더 담겨 있지 않을까. 시궁창에서 자라는 나무처럼 더러운 세상에서라도 어떻게든 살고자 애쓰는 인물에게, 이 '오수'란 이름은 누구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싶다.

"니들한텐 내가 사랑하는게 돈을 타내는 빌미가 되는 구나?"

  작가가 의미를 부여해 인물들의 이름을 지었다면 나머지 이름들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오영'이라는 이름에서는 '숫자 영(0)'을 연상할 수 있다. 대기업 회장의 딸로 태어나 현재는 기업의 회장이 된 여자는, 다름 사람이 보기엔 부와 권력과 명예를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무엇 하나 가진 것이 없다. 회장 자리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길게 유지 할 수 없다. 그녀에게는 약혼자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모두 그녀 자신보다는 돈 때문에 접근한 것처럼 생각되는 사람들 뿐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이혼을 겪은 이후, 그녀에게는 소중한 것이 결핍되어있다. 바로 가족에게 받을 수 있는, 또 줄 수 있는 사랑. 아무 조건도 없이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랑을 원했지만, 그녀의 성장기 동안 그것은 늘 결핍되어 있었다. 그리고 끝내는 살고자 하는 마음마저 없어져 버린 상태가 되었다.

처음엔 오수에게 많이 집중이 되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오영의 흡입력에 끌리고 있다. (사진=sbs화면 캡쳐)

"내가 가르쳤어. 점자를 배우지 않겠다는 너한테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뺨을 맞아가면서 기어이 포기하지 않고 내가 지금의 널 만들었어."

  '오수'와 '왕비서'는 '오영'을 두고 대척점에 서 있다. 이름처럼 비서의 자리를 뛰어넘은 '왕비서'는 20년 넘게 곁에서 오영을 보살펴 준 인물이다. 오영이 필요할 땐 언제나 달려가서 도와주고 일을 해결해 준다. 오영이 쌀쌀맞게 대해도 모든 걸 감수하면서 묵묵히 그녀를 보살피고 키워 온 사람이 왕비서이다. 오영에게 왕비서가 행한 이 모든 뒷바라지들은 '진실'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녀에게 왕비서가 없었다면 기업의 회장의 자리는 물론, 지금 누리고 있는 많은 활동들은 불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왕비서에게는 '진심'이 없다. 오영에게 왕비서는, 그 많은 뒷바라지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가정을 무너뜨린 장본인이다.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치료 대신 거짓말로 자신을 방치한 사람이다. '왕비서'의 헌신적인 모습은 여자로서 이루지 못한 '엄마'라는 역할을 위해서,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 행한 것일 뿐이다. 오영이 눈이 멀게 되면 자기에게 더 의지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좀더 완전한 엄마로서의 역할을 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왕비서의 지극정성은 오영에게 단지 '진실'의 가면을 쓴 '가식'일 뿐이다.

"넌 내가 널 떠나 보내고 어떤마음일지 상관이 없어. 내가 널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고, 만지고 싶어 할지, 넌 상관이 없어. 죽으면 그 뿐이니까."

  반면에, 오수에게는 '진심'이 있다. 처음의 목적은 '돈'이었지만, 어느새 진심으로 오영을 살리기를 바라게 되었다. 가짜 오빠로서 시작한 마음은 어느새 한 남자로서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어버렸다. 그가 진심으로 오영을 사랑한다고 느꼈을 때, 이것이 '지는 게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갬블러에 사기꾼 오수는 이전에는 한번도 진심을 다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도박으로 쉽게 돈을 벌고, 연애도 가볍게 즐길 뿐이었다. 그런 그가 살기 위해, 78억을 갚기 위해 벌인 사기극에서 오영을 만나고, 정말로 사람답게 살고 싶은 진짜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녀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진심'이지만, 애초에 그들의 만남은 '거짓'이었다. 진심이 진심을 일으키듯, 오영도 오수를 사랑하게 됐지만, 그것이 애초에 거짓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고는 절망과 분노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제야 이 방에서 여러 사람 냄새가 나는 걸 알겠어."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오영에게 오수와 왕비서는 가장 중요한 한가지씩이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어느 쪽으로도 온전히 마음을 열 수가 없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녀가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유일하게 피할 수 있고, 온전히 홀로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 엄마와 오빠와의 추억이 간직된 소중한 공간인 온실 속 비밀의 방마저 오수와 왕비서가 드나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을 괴롭히는 '가식'과 '거짓'이 이제는 가장 소중한 곳까지 침범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는 절망하고 분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20년간 자신을 돌봐주었지만,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장본인인 왕비서, 20년간의 외로움을 잊게 해주고 살면서 가장 큰 기쁨을 주고 삶의 의욕까지 만들어 주었지만, 그것들을 거짓으로 만들면서 큰 마음의 상처를 준 오수. 진실과 거짓, 진심과 가식 사이에서 오영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진실'과 '진심'을 봐서 모두를 용서할 것인지, '거짓'과 '가식'에 분노하며 남겨진 자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줄 것인지. 얼마 남지 않은 이 이야기가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오수의 진심을 받아주는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으면. (사진=sbs화면 캡쳐)


※ 위 이미지는 인용을 위해 사용된 것입니다.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에 있습니다.



댓글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