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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casting/우물쭈물 사는 이야기 98

겨울의 바다

겨울의 바다에 가 보았다. 같이 늙어가 그런건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어떤 상황이든 함께 앉아서 바다를 볼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이들. 배고프면 함께 밥을 먹고 목이 마르면 함께 술도 마시고. 그러다 문득 위로의 말들도 건네주는 이들. 여전히 인생은 고달프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어디로 가야하나 혼란스럽고, 지난 날의 실수들이 무겁게 짓누르지만, 아, 그래도 헛산 건 아니구나, 라고 깨닫게 해준 고마운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나의 지나간 시간들이 가치있는 것임을 증명해주는 사람들과 해가 지는 겨울 바다에 있었다. 무의미하게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파도는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부서진 적이 없었다. 모래를 단단하게 다지고 있었고, 단단한 바위를 깎아내고 ..

산과 함께

며칠 간 집근처 산에 다녔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 였는데, 마음도 조금은 평화로워졌다. 사진은 다 폰으로 찍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사람도 품어주는 산. 가야시절에 축조되었던 산성. 산성아래로 보이는 시내. 그 옛날 가야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마을. 산에 오르면 고민, 걱정, 어려움을 저 아래 놔두고 온 것 같다. 하지만 내려가면 다시 품어야 하는 것들. 그것들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산은 인간을 지혜롭게 한다. 그것들을 짊어진 채 오를 때는 또 그것들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다리가 후들거릴만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에 올랐음을 깨달을 때 어쩌면 흘린 땀만큼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지도. 오늘의 해는 진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 오를..

현실과 꿈

얼마 전 이 영상을 보고 크게 감동했다. 그 당시 난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어쩔 수 없이 꿈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꽤 절망하고 있었는데, 이 청년을 보고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어떤 갈림길을 앞에 두고 어느 길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좌절속에 있었는데, 이 노래를 들으면서 애초에 갈림길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야 할 곳만 알고 있다면, 어디를 가든 그 길이 그 곳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과 현실이 사전적으로는 반의어일지는 몰라도, 우리 인생에서는 아주 가까운 단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꿈은 새로운 현실을 이루는 씨앗일지도 모른다. 꿈을 가지고 있다면, 포기하지 말자. 소중히 간직할수록 언젠가 그것은 현실이 되어 우리의 삶을 아..

새 한 마리가 나무에 걸려있다.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있다. 벌써 두 달이 넘었고, 물론 이미 그것은 죽었다. 그 광경은 어느 낯선 곳의 풍장(風葬)을 떠올리게 한다. 그곳의 넓은 초원과 하늘 대신에 아파트 단지 앞에 늘어선 가로수 중 한 그루에서 치러지고 있다. 그 조용한 장례의 현장 아래로 어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니고 있다. 두 달 전 처음 본 순간에는 그 정체를 가늠할 수 없었다. 한참을 보고 나서야, 축 늘어져 대칭을 이루고 있는 그것이 새의 날개인 걸 알 수 있었다. 그 때는 버찌가 한창일 때였는데, 그래서 온갖 새들이 벚나무 가지에 앉아 그 열매를 먹던 때였다. 아마 저 새도 그렇게 먹이를 먹으려다 어떤 석연찮은 이..

엘리시아

티켓몬스터에 동생 아이디를 추천인으로 넣어서 가입했더니 5000캐쉬가 생겼다. 때마침 동네 레스토랑에서 10000원 자유이용권을 5000원에 팔길래 구매했다가 적절한 때가 와서 점심 먹으로 갔다. 비가 내리는 오후 3시에 도착한 엘리시아(레스토랑 이름)에는 손님은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곳에서 에피타이저로 나온 샐러드를 먹고 이어서 나온 스파게티와 빵을 먹으며 디저트로 나온 커피도 마셨다. 얼마만의 파스타였던가. 비록 추레한 남자끼리여서 좀 그랬지만, 맛도 좋고 분위기도 괜찮았다. 뭐 일단 공짜로 먹은거라 기본적으로 기분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뭐, 이참에 티켓몬스터 가입해서 나 추천해서 너 5000, 나5000씩 받자고 적은 건 아니고... 뭐, 내 아이디는 ikyo라..

「무소유」를 무소유하다

'무소유'는 몇 년 동안 구매 목록에서 올려놓고 있던 책이다. 구입 시기를 미루다 미루다 이제는 살 수 없게 되어서야 '왜 진작 사지 못했나'하는 미련한 후회를 하고 있다. 이제는 사고 싶어도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책을 절판하라는 스님의 유언이 발표되고 난 후에 서점의 '무소유'는 동이 나고, 절판된 이후로는 경매에 나온 책들이 백여만 원에 팔리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법인에서 '올해말까지는 출판하겠다'라는 발표를 했고, 이 뉴스를 접하고 여유를 가지고 서점을 누비던 나는 이미 늦었음을 알게 되었다. 시내의 각 서점뿐 아니라 인터넷 서점에도 '절판'이라는 알림문만 있을 뿐 책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지막 물량 한정 판매'..

진 경기는 바로 털자.

계속 되는 강행군 모드에 몸이 피곤에 쩔어서 눈은 안 떠지고 입에서는 신음소리 비슷한 비명만 겨우 나오는 몸상태가 계속 되는 나날들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날 깨우는 소리를 들었지만 꿈적도 못하고 비명만 지르고 있는 상태였다. '아놔, 일어나야 되는데, 몸이 안 움직이네ㅜㅜ 근데 오늘 아르헨티나전이 있군.' 하고 생각하는 순간 머리 속에 스코어가 떠올랐는데, 4대 2로 우리가 진 것이었다. 꿈도 아니고 깬 것도 아닌 상태에서(가사 상태?;;) '응? 이건 뭐?' 하는 순간, '염기훈'이라는 이름도 떠올랐는데, 이성적으로 4대2는 심한 것 같아 3대2로 타협을 봤고(누구랑?) '오늘 염기훈이 뭔가 보여주겠군.' 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스코어가 생생해서 토토나 할까 했는데... 결과는 4대1로 아쉽..

월드컵은 뽐뿌.

축구는 뽐뿌야. 얼마전 '남자의 자격'에서 경규옹이 하신 말씀. 개인적으로는 '축구'보단 '월드컵'이 뽐뿌라고 생각해서 제목을 저렇게 적어 봤다.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 특수를 노리기 위해 모든 이익단체들이 열심히 뽐뿌질을 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의연하게 자신의 할 일만을 해 오던 나도 개막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니까 심장이 벌렁거리는 건 숨길 수 없는 듯하다. 역시나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대한민국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느냐 하는 문제. 2002년에 이미 4강까지 가는 기적을 겪었으나 말그대로 기적과 같은 일이라, 이제는 마치 꿈인양 몽롱해지기만 한 기억이고, 토고를 꺾으며 제대로 뽐뿌질 되었던 2006년의 아픈 기억도 치유할 겸, 이제는 뭔가 확실하게 원정에서도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투표해요.

이틀 후면 투표일이다. 고대의 그리스에서 자국 남성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투표권이 오늘날과 같은 보통선거제, 즉 모두에게 동등한 투표권을 주기까지는 수천년이 걸린 셈인데, 물론 그 과정에서의 투쟁과 혁명, 거기서 흘린 땀과 피가 거름이 되었음을 잊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짧은 근현대사 속에서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기에 우리가 가진 한 표가 소중한 것이며, 우리는 우리의 이 신성한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역량은 무슨. 공식 선거기간이 시작된 이후로 울려대는 확성기 소리가 이제 이틀 후면 사라진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다. 알아듣지도 못할 괴성으로 꽥꽥되질 않나, 주구장창 노래만 틀지를 않나. 관심을 가지고 어떤 내용인지 들어 보면 그냥 '무조건 ㅇㅇㅇ당이야~♬' 혹은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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