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책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어제'없인 '내일'을 맞이할 수 없다.

파란선인장 2009. 3. 1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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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도 동명의 영화를 통해서 더 많이 알려진 제목이 아닐까 싶다. 나도 예전에 TV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영화를 보고 알게 되었다. 그때는 책이 있는 줄은 몰랐고, 다만 영화가 괜찮을 것 같아서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작품이었다. 결국 영화로는 못 봤는데,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우연히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이 원작인 줄은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다른 책들과 함께 빌렸지만, 욕심이 과해 너무 많은 책을 빌려서 결국 이 책은 한 장도 못 읽고 반납해버리고 말았다. 언젠가 다시 빌려서 읽어야지하고 또 그러고 있다가 우연히 다시 이 책을 발견했고, 이번에는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매달리게 한 것일까. 일단 제목부터 범상치는 않다.


 양을 사냥중이던 '모스'는 우연히 사막가운데서 총격전이 일어났던 현장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서 거액이 든 돈가방을 발견하게 된다. 집에 돌아온 모스는 현장에서 본 남자(그는 아직 죽지 않았었고, 모스에게 물을 달라고 했다.)가 생각이 나서 다시 현장을 찾았다가 어떤 무리에게 쫓기게 된다. 겨우 살아난 그는 돈을 가지고 도주하게 된다.


 거는 어떤 사고를 치고 보안관에게 잡혀 오지만, 그를 죽이고 도망간다. 보안관 차를 타고 가다가 도로에 서있는 차량을 보고는 그 차로 바꿔탄다. 물론 그 차주인은 이미 죽고난 뒤에. 그리고 그는 청탁을 받고 모스를 뒤쫓는다.



 은 그 지역 보안관이다. 시거에게 죽은 보안관은 자신의 친구의 부관이었다. 벨은 사건을 조사하면서 모스가 위험에 빠진 걸 알게되고, 시거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다. 그는 계속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조사하며 시거와 모스를 찾아 나서게 된다.



 연히 그 현장을 발견한 덕에 모스는 극과 극의 두가지의 엄청난 것을 얻게 된다. 돈과 생명의 위협. 그는 엄청난 거액을 얻는 대신에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그로 인해 시거가 유입이 되고,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늘 시체가 발자국처럼 남는다. 이런 사건은 보안관인 벨까지 끌어들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시거가 뒤쫓는 것은 모스이지만 실제로는 벨과 시거의 대결이라고 볼 수 있다. 시거는 그야말로 악의 화신이다. 그는 일말의 흔들림없이 사람들을 죽인다. 필요하면 죽이고,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죽이고, 죽인다고 했기 때문에 죽인다. 그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다른 등장인물의 말에 따르면 '유머감각이 없는' 그는 자기만의 철저한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을 절대 어기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실수가 없다. 아주 강력한 존재이다. 

 인생은 매순간이 갈림길이고 선택이지. 어느 순간 당신은 선택을 했어. 다 거기서 초래된 일이지. 결산은 꼼꼼하고 조금의 빈틈도 없어. 그림은 그려졌고 당신은 거기에서 선 하나도 지울 수 없어. 당신 뜻대로 동전을 움직일 수는 없지. 절대로. 인생의 길은 쉽게 바뀌지 않아. 급격하게 바뀌는 일은 더구나 없지. 당신이 가야 할 길은 처음부터 정해졌어.
- 시거의 말 (본문 중에서) 

 련의 사건들이 이 시거의 짓이란 것을 알게 된 벨은 그를 뒤쫓는다. 사실 이 소설의 실제 주인공은 벨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사건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언제나 한발 늦다. 그보다는 관찰자에 가깝다. 그리고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독자에게 전달해주는 인물이다. 그는 정직하고 선하다. 사람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보안관이다. 하지만 그는 악에 관해서는 약간 관조적이다. 우울하기도 하다. 이는 그의 개인적인 상처때문인데, 이로 인해 그는 늘 패배감에 젖게 되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 상처는 역사적이기도 하다. 즉, 역사의 거대한 힘에 휩쓸려 생긴 상처이다. 그래서 그는 역사와 같이 거대한 힘앞에서 패배감에 시달리고 무력해지는 것이다. 

 저기 어딘가에는 살아 있는 진정한 파괴의 예언자가 있다. 다시는 그 자와 마주치고 싶지 않다. 나는 알고 있다. 그가 진짜라는 것을. 나는 그가 한 일을 보았다. 한때 나는 그 자의 눈앞에서 걸어 다녔다.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다. 두 번 다시는 내 운명을 걸고 그 자를 만나러 가지 않겠다. …… 나는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영혼을 모험에 내맡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새각한다. 하지만 나 자신은 그러지 않을 테다.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 벨의 말 (본문 중에서)

 설에서 이 거대한 역사의 힘이 시거의 힘으로 표현된다. 그 앞에서 벨은 무력하다. 그래서 약간은 우울하고, 그는 또 패배감을 맛보게 된다. 작가는 시거와 벨을 통해서 현재 미국사회의 문제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너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래서 옛 것을 소중히 여기기 보다는 새로운 것을 찾게 되고, 그러는 중에 별종이 생기고,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일들이 터지는 것이다. 뉴스에서, 신문에서 평범한 살인사건은 더이상 헤드라인에 오를 수가 없다. 미치광이 살인마가 아무 이유없이 사람들을 죽여야만 헤드라인에 오르고,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서로 전혀 모르는 두 소년이 만나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사건이 나오는데, 이는 소설속의 사건이 아니라, 실제로도 일어나는 사건인 것이다. 그래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것이다. 미국사회에서 노인들은 한때 국가를 위해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즉 미국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진 나라를 세계 제일의 국가로 만들어 놓은데 대한 일등 공신이다. 하지만 지금 나라에서는 그들은 뒷전인 것이다.


 너는 어제 몇 시에 일어났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어제야. 다른 건 중요치 않아.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서 너의 인생이 되지. 그밖엔 아무것도 없어. 너는 도망가서 이름만 바꾸면 된다고 생각할지 몰라.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천장을 바라보며 여기 누워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하고 묻게 돼.
- 모스의 말 (본문 중에서)

 을 읽으면서 이렇게 마음 졸이면서 읽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스릴러이다. 다음 장면이 궁금하면서 동시에 현재 장면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빠르게 전개되는 사건들은 전에 볼 수 없는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물기 하나 없는 건조한 문체와 함께, 칼로 자른 듯한 냉정한 묘사는 작품의 재미를 끌어 올려, 독자로 하여금 더 깊이 작품에 몰두하게 만든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싸이코패스(시거는 싸이코패스라고 생각한다.)가 나와 무차별적인 살인을 벌이고, 그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사람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일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무엇인지 똑똑히 볼 것을 말하고 있다.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 하고 말이다. 
 

 무엇이든 도구가 될 수 있소. 아주 작은 거라도. 심지어는 당신이 알아차릴 수 없는 것도 있소. 그것들은 손에서 손으로 떠돌아 다니지만 사람들은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 그리고 어느 날 결산이 이루어지는 거요.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똑같지 않지. 아마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지. 이건 겨우 동전 아니냐고. 별다를 것 없는 동전일 뿐이라고. 행위와 사물을 구별하면서. 마치 역사의 한 순간을 다른 순간과 손쉽게 바꿔치기할 수 있다는 듯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물론 이건 그저 동전일 뿐이오. 그렇소, 맞소. 그저 동전. 하지만 정말 그럴까?
- 시거의 말 (본문 중에서)


 군가 홀연히 나타나 당신의 말꼬리를 붙잡으며 알 수 없는 궤변을 늘어놓은 뒤, 동전을 던지고 맞추라고 한다면, 나는 당신이 최선을 다해 맞출 수 있기를 바란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10점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사피엔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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