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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떠나보니 나를 알겠더라 - 5.민박집

파란선인장 2009. 2. 28.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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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의 삼겹살과 애증의 고스톱


 우리는 일단 망양정쪽으로 향했다. 오늘 망양정에 가기엔 좀 늦은감도 있었고, 얼른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해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네비게이션에 망양정을 찍고 달렸다. 우린 숙소를 잡은 후 장을 보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저녁메뉴는 삼겹살로 정했다.

 일단 망양정 근처에 다다르니 펜션이 하나 보였고 네비게이션에는 민박집 하나가 표시되었다. 일단 펜션 건물 벽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방값을 물어봤다. 6만원이었던 것 같았다. 그 펜션 앞에 네비게이션에 나와있는 민박집이 있었다. 전화를 걸어 가격을 알아보니 4만원이라고 했고, 우리는 일단 방을 보기로 했다. 원과 내가 울진 특유의 말투를 진하게 쓰시는 주인 아주머니와 함께 우리가 묵을 방을 둘러 봤다. 총 3층에 각 층마다 큰 방안에 다시 여러 방이 있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부엌은 방들마다 공동으로 쓰게끔 되어있었다. 새로 지은지 얼마 안 되었는지 깔끔했다. 혹시나 싶어서 흥정을 시도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방도 좋았고, 이 근처에 민박집도 별로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숙소로 정하기로 했다.

 아주머니께 마트가 어디있는지 물어봤다. 이곳으로 오다가 농협마트를 보긴 했지만 혹시나 다른 정보가 있지 않을까 했다. 우리가 말한 농협마트에서는 고기를 안 팔고 울진읍에 나가면 삼겹살을 파는 마트가 있다고 알려주셨다. 역시 사람은 물어봐야 한다. 고기를 사서 밖에서 구워먹으려 그러니 아주머니께서 알아서 잘 준비해주시라고 원이 말했다. 고기는 밖에서 소주와 함께 먹는게 최고긴 하다. 하지만 너무 추웠다. 바닷가에 있는 민박집에는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고 있었다. 내가 춥다고 안에서 구워먹자고 했다. 비싼 고기를 추위에 떨면서 먹을 수는 없었다. 마당 어디에도 바람을 막아줄만한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주머니가 반대하셨다. 아마도 새 집이라 실내에서 고기를 구워먹는게 탐탐치 않으셨던 듯.

  "안에서 연기나면 물 뿌려져서 안된다."
 
 아마도 스프링쿨러를 말씀하시는 듯 했다. 우리집 부엌에도 스프링쿨러 있는데. 연기만으로 물이 나오는 스프링쿨러라……. 불량이 아닐까 했지만 이미 방값을 지불했기에 의미 없을 듯 했다. 그리고 은근히 울진 말이 무섭기도. 아주머니 말에 대꾸할 수가 없었다. 일단 마당에서 구워먹기로 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마트에서 우리는 꽤나 알뜰한 쇼핑을 했다. 고기와 석쇠를 샀고 물과 음료와 술을 샀다. 깻잎 두 단을 사는 것을 가지고 많으니 괜찮으니 하는 실랑이도 있었고, 고추를 살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도 토론을 했다. 라면구입도 두 번정도 왔다갔다 하는 등 우리는 치밀한 듯 엉성했다. 그렇게 저녁거리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밥을 안치고 방에 앉으니 점점 노곤해졌다. 일단 밥이 다 될 때까지는 쉬기로 했다. 처음엔 앉아있었지만 점점 고도는 낮아졌고 바닥에 붙는 면적은 늘어났다. 이내 이불까지 덮고 있었다. 누워있자니 괜히 나가서 구워먹는게 아닐까 생각도 했다. 나가기도 귀찮았다.

 30분 후 우리는 고기를 들고 민박집 마당에 서있었다. 일단 불을 피워야 했다. 원이 가져 온 번개탄으로 굽기로 했다. 괜히 어디서 본 게 있어서 마른 솔잎을 깔고 신문지를 깐 다음에 번개탄을 올리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석쇠를 올리고 고기도 몇 점 올려놓고 익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내 우리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게되었다. 은근한 듯 했던 불은 약한 것이었다. 우리가 예상했던 번개탄에 고기를 굽는 장면은 이렇게 평화로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지글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솔잎을 깔아서 공기가 제대로 통하지 않았는지 불이 너무 약했다. 찬이 작은 돌을 가져와 번개탄 밑에 끼워 공기가 들락거릴 공간을 만들었다. 곧 우리는 치솟는 불길에 환호했다. 미친듯이 치솟는 불길속에서 삽겹살은 급하게 구워지고 있었고, 고기에서 떨어진 기름덕에 불길은 더 맹렬해졌다. 그리고 고기는 다 타버렸다. 이 모든것이 우리에겐 너무나 순식간이었다. 일단 불길을 잠재우기 위해 급하게 돌을 뺐다. 석쇠에 붙어버린 고기들을 떼기엔 나무젓가락은 너무 약했다. 가까스로 진정한 우리는 다시 고기를 올리고 불을 키웠다. 이내 불길을 타올랐고, 그 고기들을 뒤집기 위한 우리의 젓가락질도 바빠졌다. 다시 돌을 뺐을 때는 탄 고기들만 늘어나 있었다.

 한 겨울에 거센 바람이 부는 바닷가에서 우리는 그렇게 고기를 태웠다. 게다가 고기를 태울 때마다 나는 연기에 우리는 숨조차 제대로 못 쉬어가며 고기를 구웠다. 헌과 찬이 술과 쌈과 쌈장을 가지고 내려왔다. 고기를 구우며 술 한잔씩 했다. 이런게 우리가 바란 낭만이었던가. 한 겨울 거센 바람이 부는 바닷가 민박집 마당에 쭈구리고 앉아 바짝 탄 고기를 안주삼아 술을 홀짝거리는 이런 것이 사나이의 로망인가.

 우리가 또 다시 고기를 굽고 있을 때 만약 아주머니가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우린 그날 밤 암에 걸릴 정도의 탄 고기들만 먹었을 것이다. 아주머니는 그 지옥같은 불길속에서 고기를 굽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석쇠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적당히 굽는 것. 큰 깨달음이었다. 이제 제대로 된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거란 행복과 함께 손발이 고생하는 건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란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춥다고 껴온 장갑이 원에게 고기 굽는 임무를 안겨 주었다. 그는 석쇠를 들고 고군분투했다. 연기를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옮겨야 했고, 동시에 불길을 보면서 고기를 익혀야 했다. 나머지 셋은 열심히 고기를 뒤집고 접시에 담았다. 어두운 밤에 고기가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알기란 아주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헌이 자동차 라이트를 켰음에도 긴가민가했었다. 그렇게 우리 넷은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언뜻 본 원의 눈가가 살짝 젖었던 것은 연기때문이었을까.
 
 꽤 오랜 시간 구웠기 때문에 먼저 구웠던 고기들은 식어있었다. 그것들을 다시 따뜻하게 하기위해 마지막으로 모든 고기를 올려놓고 굽기로 했다. 석쇠 위에 모든 고기들이 올려져 있고 번개탄에서는 미친듯한 불길이 치솟았다. 우리 넷은 빙둘러 서서 그 광경을 잠시 바라봤다.

 "지옥의 불길이군."

 좀 타긴 했지만 기름이 빠진 삼겹살은 고소하니 맛있었다. 그렇게 고기를 구운 원은 깻잎을 많이 샀다는 이유로 저녁식사에서도 구박을 당했다. 원에게 모든 깻잎을 몰아주며 다 먹으란 말까지 나왔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또 방에 널부러졌다. 사실 저녁먹기 전까지만 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찌 된 게 밥을 먹고 나니 더 피곤했다. 그래도 이렇게 잘 수는 없어서 겨우 떨치고 일어나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먹자고 해서 밖으로 나왔다. 아까 마트 가는 길에 인근에 수많은 민박집과 함께 슈퍼도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 민박집들을 발견하고는 사실 약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애써 우리가 잡은 민박이 좋다고 합리화했었다. 저 멀리 슈퍼가 보였고, 인근 바닷가에서는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원과 헌은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고, 나와 찬은 누가 폭죽을 터뜨리고 있는지 확인하러 갔다. 뭐 볼 것도 없이 커플이었다. 쳇.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온 원의 표정이 약간 얼얼했다. 헌의 말에 따르면 아이스크림 4개에 6000원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의 총무인 원은 몇 번이나 그 사실을 확인했다고.
 
 "원이 잔돈 끄내고 있다가 아저씨가 6000원이라니까 계속 예? 예? 예?라더라. 옆에 있던 다른 아저씨가 6000원이라고 확인까지 시켜주더라."
 "나야, 그냥 먹으면 되니까 얼만지 몰랐지. 6000원이라니. 타격이 큰 데."
 
 하긴 슈퍼집 아들은 그냥 먹으면 되니까 가격을 더 모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비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돌아오는 길에 망양정이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언덕위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 가로등인데 약간 푸른 빛이 도는 하얀 색이었다. 누군가 가보자고 했지만, 나머지 셋의 반대로 가지 못했다. 사실 좀 무서웠다. 어두컴컴한 곳에 있는 나무들은 쉬지 않고 흔들거렸고, 그 가로등 불빛이 더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었다. 어디서 본 방송에서 나무에 귀신들이 여럿 앉아있다고 한 무당의 말도 생각이 났다. 대신에 넷이서 병맛 사진을 찍으면서 밖에서 좀 놀았다. 방에가서 뭐 할건지 생각하다가 결국 아주머니께 고스톱을 빌리기로 했다. 원이 윷놀이에 집착했지만, 아주머니껜 윷은 없었다.
 
 고스톱을 치기로 했지만 돈이 오가진 않았다. 의미도 없고, 회비로 돈을 모았기 때문에 돈을 따는 것에 그리 큰 흥미가 없었다. 우리 애들의 성향이기도 했다. 일단 설거지를 걸고 한 판 하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는 네 명. 누군가 빠져야 하는데 그게 애매했다. 결국 우리는 한 명씩 돌아가면서 빠지기로 했고, 자신이 낸 점수를 기록해서 3라운드가 끝나고 가장 낮은 점수 두 명이 설거지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돌아간 판은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찬이 1등을 했고, 마지막 라운드까지 0점이었던 헌의 쓰리고 한 판에 나와 원이 꼴찌가 되어버렸다.

 이어서 내일 아침을 건 판이 시작되었다. 이번 판도 3라운드까지. 이전 판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나와 원은 분발했다. 사실 나는 고스톱 초짜여서 그러려니 했지만, 원은 나름 자신감있는 모습을 보였는데 설거지를 하게 되어 조금 분한 것 같았다. 그래서 원과 나는 마지막 라운드 까지 각각 1,2등을 유지했다. 드디어 마지막 라운드. 여전히 원이 1등, 내가 2등이었다. 나와 원은 1점정도 차이가 났고 점수는 69, 68이었던 것 같다. 찬은 독박을 써서 -3점이었고 헌은 10점대였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쉬는 판이었다. 원이 나에게 말했다.

 "내가 이대로 끝내줄께."
 "너만 믿겠다. 우리 아침은 안하도록 하자."
  
 나는 그렇게 원을 믿었다. 마지막 라운드 마지막 판에서 특별한 이변이 없다면 우린 나란히 1,2위를 차지할 것이다. 제발. 제발. 하지만 이변은 일어났다. 쓰리고의 귀재 헌이 또 다시 쓰리고를 해버린 것이다. 거기다 원과 찬은 박이란 박은 다 써버렸다. 그렇게 헌은 140점에 가까운 점수를 따 버렸다. 이전판에서도 마지막 경기를 쉬어서 난 뒷짐지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는데, 또 이렇게 되다니. 결과적으로 원이 2위가 되고 내가 3위가 되어 아침을 하게 된 것이다.

 "미안하다."

 원의 그말에 망치로 가슴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죽을 것 같은 그 순간 어떤 사실 하나가 떠 올랐다. 그건 바로 한 경기가 더 남아있다는 것. 따지고 보니 원이 마지막으로 쉬는 경기가 마지막 경기였다. 이내 나는 흥분했고 원은 절망에 빠져 버렸다. 이미 꼴찌가 확정된 찬과 1등이 거의 확실한 헌에게 나는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얘들아, 산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겠니. 제발."

 그 말을 하는데 너무 비굴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하지만 부탁해야 하는 그 상황에 눈물이 나면서도 너무 웃음이 나왔다. 우린 모두 같이 웃었는데, 아마도 원도 복잡했으리라. 웃기긴 하지만 어떤 배신감과 불안감도 있었을테니. 원과 나는 1점 차이였기 때문에 내가 3점으로 나기만 하면 전세가 역전되는 것이었다. 나는 산 사람은 살아야한다고 눈물로 호소했지만, 결국 그 판도 헌이 이기고 말았다. 상처뿐인 2관왕. 우리는 함께 웃었다. 너무 웃어서 진이 다 빠졌다. 아침 설거지도 걸어서 한 판 더하고 싶었지만, 화투장 들 힘조차 없었기에 그냥 화투를 뽑아서 숫자 낮은 사람 두 명이 하는 걸로 했다. 그렇게해서 아침 설거지는 찬과 나로 결정되었다. 이놈의 박복한 팔자. 상처뿐인 3관왕.

 개인적으로 '첫 끗발이 개끗발'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깨우친 고스톱이 끝나고 자리에 누웠다. 이리저리 다닌다고 피곤했다. 특히 운전한 헌은 잠들었다 깼다했다. 고생도 했지만 꽤나 즐거운 하루였다. 그렇게 누워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했고, 우린 새벽이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 이번 글에는 사진이 없습니다. 고기 구우랴 고스톱치랴 정신도 없었고, 로모로 찍은 밤사진은 예술적인 의미외엔 보기가 힘들어서 아예 찍지 않았기도 했구요. 꽤나 긴 글이었는데도 끝까지 정독하셨다면, 정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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