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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나케 떠난 오사카 여행 – 03 오사카 성

파란선인장 2015. 6. 25.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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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have a problem

2015년 4월 10일 오후 3시 30분

  문제가 있다는 호텔 직원의 말에 예약이 잘못 된 것인가 싶어, 당장 이러면 오늘 잘 곳이 없는데 어쩌지 하는 마음에 "What the…"라는 소리가 나올 뻔 했지만, 사실 이건 말 그대로 그들 입장에서 'We'가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즉, 우리가 예약한 방이 문제가 있어서 못 쓰게 됐다는 것. 당황스러워서 순간 멍하게 있었는데, 그런 우리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프론트 직원은 침착하게 기존의 방에서 업그레이드 된 방으로 바꿔 주겠다고 했다. 원래 우리는 그냥 온돌방으로 예약했는데, 좀더 고급진 트윈 베드룸으로 무상 교체를 받은 것이다. 졸지에 작으나마 화장실과 샤워부스가 딸려 있는 침대방에서 자게 되었으니, 시작부터 행운이 따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업그레이드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비즈니스 호텔이라 방이 그렇게 크진 않았다. 그래도 꽤 깔끔하고 있을 건 다 있어서 남자 둘이 쓰기에 불편한 점은 없었다. 어차피 우리야 숙소에서는 씻고 자기만 하면 되니까. 문제는 날씨였는데, 모처럼 여행을 왔는데 비가 오니까 아주 아쉬웠고 그로 인해 의욕마저 꺾이려 하고 있었다. 한 것도 없는데 벌써 피곤해진 것도 같고. 비도 오고 그러니까 그냥 숙소에서 쉴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역시 그건 아닌 것 같아서 어디라도 일단 가보기로 했다. 내일은 교토에 가기로 했고, 그 다음 날은 유니버셜스튜디오에 가기로 했기 때문에 오늘이 아니면 오사카의 관광명소를 돌아다녀 볼 시간이 없긴 했다.

  과연 오사카에 왔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은 어디인가?를 두고 동생과 의논한 끝에 오사카 성에 가보기로 했다. 오사카성이 그나마 전통적인 일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나름 오사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지 않나 하는 이유에서였다. 오사카 성 외에도 오사카에는 가 볼 만한 곳이 많이 있었지만, 다른 곳은 우리가 가기엔 여의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우리는 일단 일본의 사찰은 굳이 뭔가 볼 것이 있을까 하는 이유로 되도록이면 리스트에서 빼기로 했다. 그리고 전망대 같은 곳은 날씨 문제로 제외했고, 대관람차도 '같은 이유+형제끼리 웬 대관람차'라는 이유로 제외, 결국 선택지는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일본의 지하철

오후 3시 50분

우리의 이동 경로

  숙소를 나와 '다이코쿠초 역'까지 걸어 갔다. 신이마미야 역에서 오사카 성으로 가려면 중간에 JR열차를 타고 신사이바시 역으로 가야 하는데, 우리가 가진 1일 승차권으로는 이용이 불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시영 지하철역인 '다이쿠코초 역'으로 향한 것이다. 아울러 걸어가면서 일본의 거리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비가 와서 거리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도로의 자동차 진행 방향이 우리와는 반대라 조금 어색하다는 점, 간판들이 죄다 일본어로 적혀있다는 걸 빼면 이국스럽다고 할 만한 풍경은 아니었다. 그래도 외국이니까 여기 저기 호기심 어린 눈길을 주다 보니 금새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대략 한 10분 정도 걸어 온 것 같았다. 거기서 1일승차권을 개시해서 일단 신사이바시 역으로 이동한 후, '나가호리쓰루미로쿠치 선(연두색라인)'으로 갈아타서 '오사카 비즈니스파크 역'으로 이동했다. 가이드북이나 인터넷에서는 '오사카 비즈니스파크 역' 전에 '모리노미야 역'에서 하차하라고 되어 있는데, 당시에 우리는 그런 정보가 없었고, 그냥 지도에서 오사카성 옆에 '오사카비즈니스파크역'이 있는 걸 본 기억에 의존해서 그렇게 움직인 것이다.

이 연두색 라인의 지하철을 타고 오사카비즈니스파크까지 이동했다.

  일본의 지하철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다. 그 지하철이 그 지하철인데, 다만 안내방송이 일본어로만 나오는 것이 조금 불만이었다. 그래도 오사카가 나름 일본에서 큰 관광도시인데, JR에는 영어까지는 나오는데, 지하철에는 오로지 일본어로만 안내방송이 나왔다. 부산만해도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까지 나오는데…. 어쨌든 그렇게 지나가는 역명을 꼼꼼히 확인하며 가고 있었는데,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일본인들이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많이 쓴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고 있는 건 놀랍지 않았는데, 우리 옆에 빈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앉지 않는 건 좀 이상했다. 게다가 옆에 앉아있던 할아버지는 맞은편에 빈자리가 나자 그리로 옮기는 것이 아닌가. 뭐지. 우리가 험악하게 생겼나. 아니면 우리한테서 뭔 냄새라도 나는 건가[각주:1]. 우리야 편하지만, 뭔가 어색하고 마음이 너무 불편한 기분이었다. 뭔가 우리에게 잘못이 있는 것 같고 막…. 그러나 한 며칠 타고 다니다 보니 다른 일본인 옆자리에도 잘 안 앉으려고 하는 걸 봤고, 일본 사람들은 뭔가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듯 사람끼리 부대끼는 걸 싫어하는 특성이 있는 것 같다고 이해했다. 

오사카 성

오사카 성에서 우리가 이동한 경로. 빨간선이 입장, 파란선이 퇴장을 나타내고 있다.

멀리 오사카 성의 천수각이 살짝 보인다.

오후 4시 30분

  오사카비즈니스파크 역에서 2번 출구를 통해서 지상으로 올라온 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펴 보니, 멀리 녹음 사이로 오사카 성의 모습이 보였다. 가는 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없었지만, 일단 건물이 육안으로 보이니까 무작정 그쪽으로 걸어갔다. 비가 와서 그런지 거리에는 우리말고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순간 이 길이 맞나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건물이 보이니까 잘못 와봤자 돌아가는 것 밖에 더 되겠나 싶었다. 사실 오사카 성에 올 때는 조금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 비가 가장 큰 이유였다. 확실히 여행 첫 날부터 비가 오는 건 흥을 가라앉히고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우리가 빡빡한 일정과 안 되는 예약에 고군분투하며 이 시기에 일본으로 온 건 이 시즌이 말 그대로 '사쿠라 시즌'이라 일본의 화려한 벚꽃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었는데, 이미 부산에도 다 지고 있는 마당에 더 남쪽인 오사카에 아직 펴 있을 리도 없을 뿐더러, 비까지 내렸으니 벚꽃은 물 건너 갔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김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오사카 성 공원에 들어서자 그래도 완전히 지지 않고 마지막 꽃잎을 틔우고 있는 벚꽃들을 보니 질 뻔 했던 나의 흥도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히려 비 때문에 사람이 없어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거닐 수 있어 좋았다. 오사카 성 공원의 그 고요함과 비에 젖어 더욱 색이 짙어진 꽃과 나무들을 보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벚꽃이 다 지지 않고 남아 있어서 기뻤다.

비가 와서 사람들이 많지 않다.

  오사카 성은 크게 두 개의 해자로 둘러져 있는데, 공원에 들어 올 때의 외해자와 천수각을 비롯한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는 내해자가 있다. 안쪽 해자는 오사카 성의 높은 성벽과 맞닿아 있는데, 전시에 이 성을 과연 함락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그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안쪽 해자를 건너 천수각이 있는 성 중앙으로 올라갔다. 망루 같은 곳에 올라, 해자의 수면 위로 그려지는 무수한 동심원들과 비에 젖어 짙어진 녹음을 보고 있자니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동시에 신이 나고,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경복궁에 갔을 때도 느꼈지만 현대적인 도시 안에 전통적인 건축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오사카 성의 내해자와 성벽

해자를 건너는 다리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해자 주변의 풍경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하지만 현재의 천수각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었던 당시의 그대로가 아니라 1931년에 복원된 것으로 전통적인 구조가 아니라,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복원을 한 것이기 때문에 고전적 아름다움이 다소 떨어지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우리의 성(산성)과도 다르고, 서양의 성과도 다른 일본의 성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궂은 날씨였지만 천수각 주위에만은 관광객이 꽤 있었다. 거기에는 웨딩 촬영을 하러 온 신혼부부도 보였다. 비 오는 날 결혼하면 잘 산다는데, 비 오는 날 웨딩촬영하는 신혼부부도  잘 살 길 바랐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웨딩 촬영을 강행하는 의지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드디어 천수각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천수각 안에는 여러 역사적 유물들과 전시실, 그리고 맨 위층에는 전망대가 있다. 내부 관람은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처음에는 전망대에 꼭 올라가 보려고 했는데, 날씨가 흐려서 뭐 보이겠나 싶어서 관두기로 했다. 대신 여행 전 오사카 여행 블로그 후기에서 봤던 녹차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매점으로 향했다. 여기 녹차아이스크림은 꼭 먹어야 된다던 내용을 봤기 때문이다. 과연 얼마나 맛있을까! 비가 와서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 옆에서 팔던 따끈한 만두가 더 맛있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맛있다니까 녹차아이스크림을 샀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문 순간, 음… 이것은 녹차맛이군! 그냥 녹차맛이야!!

  이후로 우리는 그냥 우리가 먹고 싶은 것만을 먹게 되었다.

녹차맛 녹차아이스크림을 먹으려 하고 있다.

  대충 천수각을 구경한 후,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기로 했다. 확실히 일본스러운 물건들이 많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일본의 관광지 특산 식품, 과자, 빵부터, 전통 의상, 양말, 동전 지갑 등 일본의 전통적인 이미지나 관광지의 이미지로 디자인된 물건들이 많았다. 거기다 일본 무장의 갑옷과 투구, 칼 같은 것도 팔고 있었다. 하지만 기념품점 내에서 정작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일본의 공산품이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지워지는 볼펜이었다. 일반적인 유성 볼펜과 비슷한데 꼭지 부분에 달려있는 지우개를 사용해서 이 펜으로 쓴 글씨를 지울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냥 수정테이프 쓰면 되는데 싶었는데 동생이 유독 관심을 보이며 유난을 떨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손톱깎기였다. 웬 손톱깎긴가 싶겠지만, 평소 손톱을 깎을 때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발톱을 깎을 때는 깎는 부분이 자세하게 보이지 않아서 불편했던 기억이 다들 있지 않은가. 나는 안경을 껴도 좌우 시력이 달라서 작은 부분을 미세하게 봐야 할 때는 어려움이 있었고, 그럴 때 '이런 손톱깎기가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물건이 이 가게에 있었다. 아이디어 상품 같은 것으로, 손톱깎기의 절단 부위 위에 돋보기가 달려 있어서 자르는 부위를 확대해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게 진짜로 있다니 하면서 우와우와 거리는 나를 동생은 감흥 없는 표정으로 유난 좀 그만 떨라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우리가 산 것: 기념엽서

  천수각 주위에는 수양벚꽃이 피어있어서 그것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고, 타임캡슐 근처에 얼쩡거리기도 했다. 오사카 역사 박물관도 있었는데 오래된 근대식 건물이 나름 분위기가 있었지만, 내부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물론 외국에 나와서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알 수 있는 박물관에 방문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번 여행 기간 동안에 일본의 박물관에는 한 번도 방문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교토에 갔을 때는 박물관을 한 번 들러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방문하지 못했고, 지금 이 오사카 역사 박물관은 크게 들어가보고 싶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교토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 방문한 김에 박물관도 가봤으면 했지만, 기본적으로 나와 동생이 일본의 역사와 전통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제더라? 먼 미래에 열 거라는 타임캡슐

오사카 역사 박물관

  천수각에서 내려와 안쪽 해자를 건너 나와 복숭아꽃과 철쭉, 그리고 벚꽃이 피어있는 곳에서 꽃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갈 수록 너무 추워져서 공원 전체 구경은 포기하고 서둘러 신사이바시 역으로 향했다.

우리 나라의 철쭉과는 조금 다르게 생겼던 일본 철쭉

화려하게 꽃이 폈던 복숭아나무와 벚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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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야 이 날 우리에게서 냄새가 났을 수도 있었을 거라 추측할 수 있었다.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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