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casting/우물쭈물 사는 이야기

별 헤매는 밤

파란선인장 2009. 12. 24.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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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이 다가오던 밤이었던 것 같다. 자정이 넘어 시골 마을에 도착해 졸린 눈을 비비며 할머니댁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매년 겪는 일상적인 일이었던 경험이 십수년이 지나도 여전히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무심코 올려다 본 밤하늘의 별빛들 때문인 것 같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 하나에 꿈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희망과, 별 하나에 순수와……. 마치 수많은 LED를 박아놓은 것처럼 빼곡히 반짝이고 있어 밤하늘의 어둠마저 사라져버린 듯 했다. 수많은 반짝임들과 함께 개구리 소리인지 풀벌레 소리인지 모를 소리들이 합쳐져, 마치 별들이 와글거렸던 밤이었던 것 같다.

 공원 벤치에 앉아 다시 쳐다 본 하늘에는 별이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 와글거리는 소리도 없었다. 어디선가 들리는 두런거리는 말소리, 누군갈 부르는 취한 소리,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들 사이에 존재하는 잠시동안의 정적을 메우는 바람소리만이 있었다. 예전에는 가장 빛나던 별들의 희미한 흔적만이 밤하늘에 삼각형을 남겨 놓고 있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꿈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생각해보면 어린 때 친구들 하나, 둘, 죄다 멀어져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이제는 별조차 사라진 하늘 아래에서 나는 만 이십육년 사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온 것일까? 이제는 밤을 세워 울던 벌레들도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으로 자취를 감춰버린 것일까? 부끄러운 이름을 씻으며 거울을 본다. 얼룩진 거울 속에 남아있는 얼굴은 씻어도 씻어도 어떻게 이다지도 욕될까? 불꺼진 방구석에서 홀로 삭아드는 피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은 내가 우는 것일까, 피골이 우는 것일까, 아름다웠던 혼이 우는 것일까?

 하지만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보람된 날에 다시 한 줄의 참회를 쓰기 위해선,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를 권해야 한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야 한다. 그때 쓰게 될 참회의 글이 다시 부끄럽지 않도록, 나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인생은 살기가 어렵다는데, 글이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오늘 밤에도 별은 바람에 헤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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