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음악

루비살롱 전국투어 LIVE in DA INTERPLAY on 2009.06.06

파란선인장 2009. 6. 1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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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108번!


 108번이 적힌 티켓을 가져가는 나를 친구들은 어이없게 쳐다봤다. 딱히 무슨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우리가 받은 티켓이 104번부터 109번까지였고 그 중에서 108번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이 티켓이라면 요즘 108번뇌에 휩싸인듯한 내 상황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꿈꾸었던 건 아니었나 하는....건 개소리일까. 


 드디어 입장이 시작되었다. 그런대로 앞쪽 번호였던지 이른 순서로 입장을 하게 되었다. 두 달 전 찬의 제의로 예매한 후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던가. 드디어 그 공연의 입장이 시작된 것이다. 지하에 위치한 '인터플레이'는 공연을 위해서인지 홀에는 탁자가 없었고 입구 반대쪽에 작은 무대가 있었고 입구 근처에 작은 바가 있었다. 우리는 신체적 나이를 고려해서 아직까지 사람이 많지 않은 무대앞쪽 자리보다는 바 근처에 있는 의자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기로 했다. 의자에 앉아서 한 손엔 맥주병을 가볍게 들고, 한 손으론 박자를 맞추며 몸으로 음악을 느낀다. 그게 바로 시크한 멋이지. 라는 내 개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친구들. 쯧, 차가운 도시인들이란.

 대충 자리를 잡은 후 나와 찬은 사이좋게 손을 잡고 화장실로 갔다. 비움을 위해선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화장실은 1인용이었는데 문 앞에서부터 몇 사람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 누군지 몰라도 뭔가 큰 일을 꾸미는 듯 했다. 오랜 시간후 누군가 나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씻지를 못해서. 라며 후다닥 계단을 내려간 그는 바로 검정치마의 보컬이었다. 비록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지만 치약냄새를 풍기며 사라진 그가 밉지는 않았다.

 이윽고 '검정치마'가 무대에 오르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검정치마의 노래는 전체적으로 밝고 흥겨운 분위기였다. 내가 아는 노래라고는 '좋아해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노래외에는 가사가 잘 들리지 않기도. 하지만 노래는 좋았다. '강아지'라는 노래와 '안티 프리즈'라는 노래가 특히 좋았던 듯. 처음 본 검정치마는 동생들이라 그런지 모두들 귀엽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 매력에 반한 것인지 검정치마 팬들이 좀 있었는데, 그 중에 인상깊은 팬도 있었다. 'I♥검치'라는 문구를 티셔츠에 새긴 그는 빙의된 듯 온 몸을 음악에 맡기고 있었다. 과한듯도 한 그에게 자꾸 눈이 가고 찾게 되었다. 나같은 촌놈에게는 좀 재밌는 모습이기도 했고. 하지만 우습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무언가에 한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길 수 있는 사람일테니까.


 검정치마 다음으로는 '국카스텐'이 올라왔다. 내가 이 공연을 보러 온 이유. 다른 게스트는 공연 며칠 전에 알았다. 그 전에는 오로지 국카스텐 때문이었다. 악기 조율을 마치고 모든 멤버가 자리를 잡았다. 보컬인 하현우씨가 손을 들고 인사를 했다. 하이~. 나도 높이 손을 들고 흔들며 하이~라며 인사를 했다. 옆에 있던 원이 내게 그게 시크한거냐며 뭐라고 했다. 물론 난 시크하다. 하지만 이건 하나의 예의라고나 할까. 상대방이 인사를 하는데 안 받아준다면 그건 무례한거니까. 잘생긴 베이스씨가 교통사고가 났단다. 저런. 첫 곡으로 '거울'을 연주했다. 가장 알려진 이 곡은 밴드음악에 관심이 없는 원도 알고 있고 좋아하는 노래이다. 음악이 시작되자 온 공간이 음악으로 가득찼다. 앞의 검정치마의 음악은 조용한 편이었다. 너무 시끄러웠지만 그게 또 매력적이었다. 온 공간을 가득채운 음악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달까. 물론 귀가 멍멍해지긴 했다. 특히 하현우 씨는 노래 부를 때 표정이 서울에서 공부중인 친구 균과 너무나 흡사해 예전부터 친근하게 느껴지던 터였다. 그날 공연을 본 친구들도 이부분에 대해서 동의를 했었다. 국카스텐이 그날 연주했던 곡중에 몇몇은 처음 듣는 이들에겐 난해할 수도 있는 음악이었지만, 싸인받을려고 씨디까지 챙겨온[각주:1] 나는 그저 신나고 좋았다. 그래도 마지막 곡으로 분위기를 신나게 띄우고, 그들은 아쉽게도 무대를 내려갔다.


 공연의 반이 끝난 시점에서 우린 이미 지쳐있었다. 돈을 모아 맥주를 사서 마셨다. '남자라면 버드와이저'라는 내 의견과는 무관하게 '카프리'가 동이 나서 우린 모두 버드와이저를 마셨다. 깔짝깔짝댄 것도 나름 움직인거라고 힘이 들었던지, 맥주는 정말 달고 맛있었다. 쉬면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4일이 지난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두들 각자의 방법으로 음악을 즐기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런 소규모 클럽에서 하는 공연은 작지만 밴드와 가깝다는 것이 좋은 것 같았다. 아까 화장실에서도 마주쳤지만, 그들은 수시로 우리들 근처를 배회했다. 화장실에도 들락거리고 같이 공연도 보고. 촌놈인 나에게는 뭔가 신기하면서도 재밌었다.  

 이번에 루비살롱에서 영입한 외국인 밴드 'RUMY'의 무대가 이어졌다. 우린 이미 그들을 알고 있었다. 공연전에 나와 찬과 원 셋이서 만나서 위닝도 하고 저녁도 먹었는데, 그 때 돌아다니던 그들을 봤었다. 외국인들이라 그런지 지나다니면서 몇 번 봤던 그들이 공연장 근처에도 출몰하더니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디카로 찍을 때부터 우린 그들이 RUMY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공연장에 들어 온 그들은 관객들 속에서 음악을 들으며 사진도 찍고 환호성도 질러댔다. 공연 시작전 우리가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을 때 그들 중 한명이 의자를 못 찾겠다고 하는 대화를 들을 수도 있었다.[각주:2] 밴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외모와 옷을 입고 있었기에 그들이 설마 RUMY일까하고 있었는데, 떡하니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는게 아닌가. 우리를 더 놀라게 한 건 그들이 말로만 듣던 뉴요커라는 사실. 우리가 놀라든말든 그들은 연주를 시작했다. 검정치마와 전체적으로 약간 비슷하다고 해야하나. 흥겹고 리드미컬한 음악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방방뛸 필요가 없는 그런 음악덕에 우린 음악도 즐기며 맥주도 마시는, 애초의 의도처럼 시크하게 앉아서 공연을 즐길 수가 있었다. 노래를 맺고 끝지도 않고 메들리로 들려주어서 우리는 좀 더 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공연을 보는 도중에 찬이 내게 말했다.
 
 "기타 긱스 닮은 듯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드럼 크라우치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보컬 테베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베이스만 축구선수 닯으면 짱인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베이스 하그리브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들의 사진을 찾을 수 없는게 아쉬울 뿐이다. 애초에 그들을 두고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저들이 RUMY인 것 같은데 전혀 미국인처럼 안 생겼다고. 약간 아일랜드인처럼 생겼다라고. 이런 내 말에 미국인 처럼 생긴 건 어떻게 생긴거고 아일랜드인처럼 생긴건 어떻게 생긴거냐머 친구들은 따졌었다. 하지만 역시 뉴요커라기 보다는 아일랜드계에 더 가까운 외모임이 틀림없었다. 아, 테베즈빼고.

 '약'으로 시작해서 '강'으로 끝내는 우리나라 밴드의 곡 구성과는 달리 '흥겨움'으로 시작해서 '차분함'으로 곡 구성을 한 RUMY덕에 국카스텐이 한껏 끌어올렸던 분위기는 다시 약간 진정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무대만이 남은 상황. 아마도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멤버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우리가 앉아있는 의자뒤의 바에서 루비살롱 대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무대 세팅이 다 끝났는데도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강렬하고 화끈한 이들에게도 무대에 오르기전에는 떨리는구나, 뭔가 진정을 하고 준비를 단단히 하기 위해-물이라도 한잔 마시기 위해-거기에 계속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어떤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려던 그 순간에 갑자기 바 위로 올라가더니 괴성을 지르는 게 아닌가. 바로 그 앞에 앉아있던 원과 효정이가 놀라든말든 그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무대위로 뛰어가 노래를 부르는게 아닌가. 나도 놀랬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웃겼다. 신선하기도 하고. 그렇게 시작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무대는 정말 내 저질체력이 한스러울 정도로 신나는 무대였다. 아까 소리지르신 분은 눈까지 뒤집으시면서 희번덕거리는 눈빛을 쏘아대시기까지 했다. 노래 중간중간 하는 말도 웃겼고.

효정이랑 원은 이정도로 놀랬었던듯^^;;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홀 한가운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서로를 밀치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했다. 어떤 이는 의자위에서 웨이브를 타기도 했고 어떤 이는 제자리에서 방방뛰며 머리를 흔들기도 했다. 아니면 우리처럼 앉거나 서서 박자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들기도 했다. 이 날 나는 카메라는 들고 갔지만 필름을 사지 않았었다. 사진찍는데 신경쓰다가 공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기념으로 핸드폰으로 찍기만 했다.[각주:3] 하지만 조명 아래에서 필에 꽂혀 긴머리를 흔드는 어떤 여성을 보았을 때, 그래도 필름은 사놓을 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앵콜곡을 들으면서 우리는 클럽을 나왔다. 10시만 되면 자야하는 직장인 효정양이 10시가 넘자 급격히 수척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효정양뿐만 아니라 나머지도 몸이 힘든 상태였다. 우린 도대체 이런 체력으로 어떻게 살아가는걸까. 그래도 모두가 이렇게 공연을 같이 보러 온 게 처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게다가 훌륭한 밴드들의 좋은 음악도 들을 수 있었고. 공연중 찬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우리가 나중에 나이 먹고도 이런 곳에 올 수 있을까. 체력적인 문제도 있고, 또 그날 그 곳에서도 우린 이미 꽤 상위클래스였다.
 





그냥 오면 되지 뭐.

 이게 찬의 대답이었던 것 같다. 하긴. 그냥 오면 되지 뭐. 음악이 있는 한 그것을 즐기는 건 어디까지나 자유니까. 대신 체력은 좀 길러야 할 듯.

영광의 108번 티켓.




 써야지써야지 하면서 4일이 지났다. 4일이 지난 상태에서 쓸려니 기억도 안나고, 쓰다보니 기억이 나는 것들은 억지로 끼워넣거나 안 적어서 내용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다. 경험담임에도 불구하고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밝히는 게 왠지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밝힐 것은 밝히자. 본 글은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임을 밝힌다.

 
  1. 물론 당연하게도 싸인은 못 받았다. [본문으로]
  2. 용케도 듣고 해독할 수 있었다. 아, 12년 공교육이 허사는 아니었구나. [본문으로]
  3. 불행히도 핸드폰엔 어떤 사진도 저장되어있지 않았다. 아악~~~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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